여동활 넷포터

굵고 깊은 상처 봉합하자는 박근혜대표

여동활 2006. 5. 31. 08:19

테러 발생한 지난20일부터 29일 대전유세까지
"박대표 굳건함과 의연함 유지"여동활씨 밝혀

5월20일 토요일

달력을 보니 투표일이 이제 1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오후7시반부터 박대표 피습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했다.난 깜짝 놀라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서울 박애단식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후7시20분쯤 서대문구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던 오세훈시장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는 순간 50대 남성이 주먹으로 얼굴을 폭행했고
이어 다른 남자가 컷터용칼로 박대표 얼굴을 그었다는것이다. 급히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마 2006년 5월 20일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다시 한 번 치욕의 날로 기록 될 것이다. 차기 가장 강력한 대통령 후보에 대한 정치 테러. 사건 유형과 상황를 보면 암살에 가까운 행위이다.

조금만 더 칼날이 윗쪽으로 이동 되었다면 3분 이내에 뇌가 마비되고 안면 근육이 모두 마비가 되는 것은 물론 지혈을 해도 25분 내에 목숨을 잃을수 있었던 끔찍한 살인 행위가 수 많은 관중이 보는 앞에 백주에 일어난 사건이다

◇ 5월20일 갑자기 테러당한 박근혜대표가 상처난 볼 주변을 압박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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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영상은 poll인터넷 방송국에 의하여 촬영되어 SBS를 통해서 각 언론 매체로 퍼져나갔다. 초등수사와 경찰및 검찰에서 수사현황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 처음부터 예상된 짜맞추기식의 일편적인 각본에 의해서 진행되는 느낌을 확연히 받을 수 있다.

서대문 경찰서장의 성급한 기자화견을 봐도 과히 경찰서장으로써 밝힌 사건의 본질과 내용은 너무 창피한 수준이었다. 어설픈 기자 회견으로 국민은 더욱 신뢰감이 상실된 경찰을 질타하였고 검찰 역시 자기 자리를 걸고 공정수사를 하겠다고 발표한 것과는 달리 너무 허술한 수사내용을 발표하였다

사건현장에는 분명히 보안과 정보과 수사관들이 분명히 배치가 되었을 것인데도 현장이 일어난 순간 40여분 동안은 대한민국 치안은 증발되었다

범인 지충호를 체포한것도 경호원과 일반 시민들이었다. 범인이 사용한 흉기도 박애단의 회원인 NO11(닉네임)이 취득하여 경찰에 인계하였다. 40여분이나 늦장 출동한 경찰은 인근 파출소를 거쳐 서대문 경찰서로 압송하여 수사를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서대문 경찰 서장은 술취한 지충호의 단독 범행이라면서 각본에 짜여진 수사 현황을 발표하였다. 그날 밤 음주측정 결과 범인은 당뇨병으로 술은 먹지도 못하였고 0.00의 측정결과로 완전 날조된 성급한 기자회견은 박대표를 지지하는 인터넷 카페회원들에게 분노의 불씨를 제공하였다
◇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된 박대표가 입은 상처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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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밤부터 범인이 압송된 서대문 경찰서 앞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카페회원 약 200명과 전경 약 2,000명의 대치는 시작되었다
분노에 쌓인 회원들은 그냥 도로를 검거한 체 경찰서장의 잘못된 기자회견을 성토하면서 질서를 지키며 시위를 하였다

편도 4개 차선중 2개 차선을 점거하여 시위를 하여도 지나가는 시민들은 누구하나 불평을 하는 분들이 없었다.
개인 택시기사분은 고생하는 회원들에게 우유를 잔뜩 사주었고 어떤 시민은 음료수와 음식물을 제공해주고 어떤 분들은 약간의 금품도 주고 가는 모습은 바로 이 천인공로할 백주테러에 대한 분노의 표시가 아니겠는가?

밤이 새도록 그냥 아스팔트 바닥에서 밤을 꼬박새운 회원들은 스스로 지도부를 편성하여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질서있게 시위를 하는데도 일부 격한 회원의 선동으로 전경과 몸싸움을 하면서 편파적인 발언을 한 경찰 서장에게 사과를 요구하면서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는 죽창과 돌과 흉기를 든 사람은 없었다
◇ 박대표의 쾌유를 비는 카페회원들의 현수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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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아스팔트에서 밤을 지세운 시위는 줄기차게 계속 되었다
정오부터는 기자들 출입이 차단되었다.

경찰 서장이 허락하여 범인 조사 과정을 참관하게 된 본인과 한나라당 관계자 그리고 회원 1명은 취조실이 보이는 옆방에서 취조 전 과정을 똑똑히 참관하게 되었다. 범인이 요구하는 담배가 제공되고 범인이 소지하는 약을 복용케하고 아주 느릿하게 취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기가 막혔다.

범인이 수갑찬 손이 아프다고 호소하면 수갑도 태연히 풀어주었다.
경찰내부에서 아주 거물이 된 모양이다. 범인이 자해를 하거나 도주를 시도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려고 저러나 생각되었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범인은 태연하게 묵비권을 행사했다.
4시간동안 수사하는 중에 본인이 참관한 수사현장을 봐도 과히 살인미수에 해당하는 중죄인신분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수사중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쪽지 한 장..... 내용은 확실히 밝힐수 없지만 분명히 수사 지침이 상부에서 내려온 전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언론에서도 이런 과정을 전해듣고는 자기들 마음대로 취조실을 들랑날랑 거린다고 비아냥 기사를 뿌리고 있었다
◇ 비가 오는 날이지만 사건진상을 밝히라는 회원들의 시위는 끝없이 계속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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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부터 범인을 검찰로 이송시킬려는 경찰과 카페 회원들의 몸싸움은 간간히 전개되었다. 그러나 늦장출동과 경찰 서장의 성급한 단독 범행발표에 항의,경찰서장의 공식사과를 받으려는 회원들은 점점 격해지기 시작하고 범인 이송은 자연히 지연 되었다.
전경들은 계속 증강이 되고 시민,회원들은 사력을 다하여 경찰서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5월23일

몇일동안 이같은 강력한 항의가 먹혀들지 않자 애국투사들은 드디어 삭발을 강행하였다. 이들 이름이 “파란날개” “손건주” “칼칼” “사노라면” 그리고 또한분의 애국시민. 이상 5명은 많은 애국시민과 전경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의연하게 삭발을 거행하였다
◇ 시민들의 항의도 끊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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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머리카락이 툭툭 떨어지는것으르 보면서 그들의 가슴에는 박근혜 대표에 대한 사랑과 이 시대에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분명히 석연찮은 배후수사를 촉구하는 의지를 담은 항거의 정신이 담겨져 있으리라.

삭발을 하는 사람이나 이를 지켜보는 애국시민들은 분노의 눈물을 흘리면서 현 정부를 강하게 비난하고 질타했다.

범인을 이송하기 위하여 파견된 전경들이 숫적으로 엄청난 열세에 있는 카페회원들을 몰아내기 위해 고함을 지르면서 퇴로를 열어갔다. 몇몇 회원들은 경찰의 힘에 의하여 아스팔트에 내동댕이 쳐지고 순간적으로 기절하는 회원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애국 투사 “반공지사”는 전경의 힘에 의하여 넘어지면서 짖밟히고 채여서 근육이 파열되고 핸드폰이 두동강이 나는 부상을 입었다.

그는 지금도 온몸에 붕대를 감고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범인은 서부지검으로 이송이 되고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카페 회원들은 모두 지점앞으로 다시 달려갔다.

상당수의 일반 시민들도 참여를 하였고 여기에서는 특수 기동대가 출동하였다
서로 대치하는 도중 모 지검장이 자청하여 카페회원들 앞에 나서서 아주 친절하게 브리핑을 했다. 반드시 자기자리를 걸고 수사를 하겠다고 공약하였다
그러나 그 지검장은 저 유명한 “병풍”,“세풍”을 수사한 정치 검사였다
공정한 수사가 과연 이루어 질 수 있을까?
◇ 병원문을 나섰을때 카메라에 잡힌 박대표 상처를 감춘 흔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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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6일

그날 이후 계속 카페 회원들은 계속 담당 검사 교체 및 배후 세력 색출을 요구하는 시위를 장대비를 맞으면서 강행하고 있다. 애국충정에 불타는 이들은 지금 생업을 접어두고 현 정부와 공정한 수사를 시켜 나갈 것이다
그동안 국정 운영 능력이 마비 되다시피한 현 정권.

이번 지방선거때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 정권 하에서 발생된 제 1야당 대표에 대한 백주 테러는 어떠한 경우에서든 책임져야 될 부분이다.

허술한 수사 발표와 언론들의 동조속에 계속 이루어지는 늦장 수사발표는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받기 힘들겠다고 생각되었다. 이제는 국민들도 더 이상 언론 발표와 검찰의 단독범행쪽으로 수사진행 상황을 믿을 국민들은 없다.

앞으로 어떻게 정국을 이끌어 나갈지 또 어떠한 사건들이 국민을 분노케 할지 많은 의문점만 제시하는 현 정권, 더욱 비참한 말로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아 착잡하였다.

비가 쏟아 지고 있었지만 우리들은 이번 사건에 대한 분노를 억누룰 수 없었다.
굵은 빗방울을 맞으며 구호를 외치고, 한잔의 커피로 추위를 달랜 우리는 동지였다.
◇ 박대표의 무사퇴원을 기뻐하며 눈물짓는 국민들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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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촛불 시위에 지칠때도 되었지만 날이 갈수록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나처럼 멀리 지방에서 올라 오신 회원들도 있고 연세가 높으신분들도 있었고 저분들이 도대체 왜 저렇게 해야 하는가 생각하니 맘속에서 말할수 없는 동지적인 일체감에 뜨거움이 솟아올랐다.

비옷을 꺼내입고 비를 막았지만 마음속에서 흐르는 복잡한 눈물은 막을수가 없었다.

5월 27일

경찰과 언론에서는 박대표 테러범 지충호(50)씨의 단독범행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검ㆍ경 합동수사본부는 지씨의 범행동기 및 각종 의혹을 밝히는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합수부는 지씨와 최근까지 같이 살았던 친구 정모씨를 참고인으로 소환, 대질신문을 통해 처음에는 지씨가 "오세훈을 긋겠다"고 말했는데 범행 당일 행적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범인은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를 범행 대상으로 정했다가 왜 박 대표를 공격한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지만 검찰도 속시원하게 밝혀주지 않은 상태에서 "한점 의혹도 없이 끝까지 수사하겠다"는 그들의 주장도 믿기 어렵고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을 풀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카페회원들도 몇일째 계속해서 사건진상에 대한 분명한 결과를 밝히라며 촛불시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 순식간에 8,000여명의 시민들이 운집한 첫 대전유세장에 선 박근혜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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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사건 발생 9일째.

세브란스병원앞에서 잛게 인사를 했다.
"제가 입은 상처보다 국민들께서 입은 더 크고 깊은 상처,이젠 봉합해 나가자"고 짧게 인사말을 마치고 퇴원했다.
이날 박대표는 사건 당일 입었던 옷을 다시 입고 나왔다.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잠시 연기되었을뿐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듯 했다.

그리고 오전내내 집과 대전을 고민하던 박대표는 전격적으로 대전행을 결심했다.
상처는 남았지만 건강한 육신이 있는한 이나라 국민을 위해 할일을 다해야 하겠다는 책임감 때문에 대전을 향했으리라.

젊은이의 거리 으능정이에 도착하자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었다.곳곳엔“박근혜대표의 퇴원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현수막이 걸려 었었다.
순식간에 8,000여 대전시민들이 운집한 으능정이 거리에는 푸른물결이 넘쳐 흐른 듯 했다.
도대체 누가 저들은 이곳으로 불러 모았는가?

박대표는 단상에 오르자 나지막한 목소리로“여러분의 염려와 걱정 때문에 이렇게 퇴원해서 여러분을 뵙게 되었다"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또 박 대표는 "제 심정은 여러분께 큰 소리로 인사드리고 호소드리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점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양해를 구했다.
◇ 지난10여일간 박대표의 사건과 퇴원등을 지켜본 여동활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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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박 대표는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박성효 대전시장 후보를 꼭 당선시켜 주시기 바란다"며, "제가 여러분께 보증하고 약속드리겠다"고 호소한 뒤,
"5월 31일 여러분의 선택을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1분도 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여기저기서 상처입은 모습으로 나타나 유세를 하는 박근혜 대표를 보고 정략적이니 자작극이니 하며 말들이 많다.나는 속으로 저런 마인드를 갖춘 사람들이 나라를 맡으니 나라가 이 지경이 된게 아닌가 생각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평범한 여성이라 할지라도 굴에 그토록 깊고 큰 상처가 났다면 외출을 삼가고 성형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어야 할 입장이겠지만 박대표는 상처난 얼굴이 일그러질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분골쇄신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온게 아닌가 말이다.

박대표의 그러한 굳건한 의지와 강인한 정신력에 존경과 찬사를 보낼 따름이다.

(고)박정희 대통령각하를 매도 하지말자 . 간판 주인 여 동활

(위의 기사는 여동활넷포터가 한나라당 박근혜대표가 테러를 당한
지난20일부터 퇴원한 29일까지 함께했던 기억을 정리한 것입니다)

[여동활 넷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