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눈 덮인 대관령, 양떼들과 박정희의 꿈

여동활 2010. 2. 17. 20:34

눈 덮인 대관령, 양떼들과 박정희의 꿈
<그리운 나라, 박정희>
배고픈 국민에 고기 먹이려 양떼 들여와 목축
박정희 시대 저물자 면양사육 쇠락…전영대씨 체험관광으로 살려내
2010-02-14 김인만 작가

겨울 양떼목장이 더 좋은 이유

눈이 많이 오면 방송은 대관령 소식을 먼저 전한다. 하늘을 덮은 눈구름이 한반도의 지붕인 태백산맥에 부딪쳐 가장 많은 눈꽃을 뿌리는 곳이 대관령이다.
숨막히는 회색의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지는 휴일, 세파에 부대낀 심신을 겨울 전원의 평화로 위로받고 싶을 때 갖가지 설경을 연출하는 대관령의 유혹을 외면할 수가 없다.
긴 겨울 동안 대관령이 사람을 불러모으는 것은 눈꽃의 장관만이 아니다.

나들이를 나선 차들이 영동고속도로 횡계 나들목을 나와 대관령 옛길에서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듯 늘어선 자작나무 숲 사이를 지나 옛 대관령 휴게소 뒤편으로 올라간다.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14-104 양떼목장. 익히 알려진 대관령의 ‘히트 관광 상품’이다.

양떼목장이라면 푸른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제격이긴 하다. 양들은 긴 겨울을 축사 안에서 보낸다. 그러니 뭐 볼 게 있는가 생각하기 쉽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겨울의 양떼목장에서는 방문객 누구나 축사 안의 양들에게 직접 건초를 먹이며 만져볼 수가 있다. 양떼와의 스킨십은 겨울에만 가능하다. 겨울의 양떼목장이 더 좋은 이유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


▲겨울에는 축사의 양들에게 건초를 먹이는 ‘스킨십 관광’이 인기다. ⓒ 좋아하는 사람들

스킨십뿐이 아니다. 축사에는 탄복할 만한 모습이 따로 있다. 어미의 젖을 빠는 아기 양이 반드시 무릎을 꿇고, 또 어미가 된 그 딸은 늙은 아비 양에게 젖을 빨리며 이를테면 노후를 봉양하고 있다. 축사 안에서 양들은 부모와 자식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겨울의 행복이 따로 있다. 양들은 순박할 뿐 아니라 이렇게 다른 동물에서는 볼 수 없는 은혜를 아는 효(孝)의 아름다운 질서로 맺어져 있다. 그래서 옛부터 한국인의 심성에 가장 걸맞아선지 12지신 중 여덟번째인 양띠생이 있고, 윷놀이에서 ‘도’는 돼지, ‘개’는 개(犬)를 뜻하며 ‘걸’이 바로 양이다.


▲모녀 면양 축사. 아기 양은 반드시 무릎을 꿇고 어미의 젖을 빨아먹는다. ⓒ 좋아하는 사람들

그러나 양은 가깝고도 먼 동물이다. 소, 돼지와 달리 양은 흔히 볼 수가 없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양은 개 다음으로 가축이 되어 고려 때부터 사육했다고 하는데 농가에 소, 돼지가 있을 뿐 양은 없다. 소, 돼지는 한두 마리도 키울 수 있지만 양은 많은 수를 방대한 초지에 방목해야 하는 기업형 축산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청운의 꿈을 심어준 박정희 대통령”

필자가 양떼목장을 찾은 날, 목장주 전영대씨(59세)가 부재중이라 며칠 후 전화 통화를 했다.
우리나라에서 면양 사육이 축산업으로 성공하지 못한 이유부터 물어보았다.
“면양은 2, 3천마리씩 양떼로 사육을 해야 하는데 우리 농가에는 2, 30마리도 어렵다. 수입 고기가 넘쳐나 한우가 경쟁력에서 밀려나는 실정에 면양 사육의 경제성은 오죽하겠는가.”

우리 국토는 산지가 4분의 3이다. 양떼를 먹일 초지 개발이 충분하지 않겠는가 싶은데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산지는 전부 산림녹화가 되어 그 자연경관의 가치를 양떼 사육이 당할 수가 없다. 지금 북한이라면 된다. 헐벗은 산에 초지를 개발하면 얼마든지 가능해 북한 동포들에게 고기를 먹일 수가 있지만….”

전영대씨의 양떼목장은 양고기와 가죽, 털을 생산하는 기업이 아닌 관광업이다. ‘관광 축산’이라는 생소한 정체성을 궁금해하는 필자에게 그는 불쑥 박정희 대통령 얘기를 꺼냈다.
“고교 시절, 박 대통령이 남쪽나라 호주ㆍ 뉴질랜드로 떠나는 한국일보 기사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 배고픈 국민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나라를 살찌우려고 축산 선진국을 방문하는 것이다. 비행기 트랩에 오르는 대통령 모습의 사진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남쪽나라에서 면양이 들어왔고, 나는 양떼목장이 그려진 청운의 꿈을 갖게 됐다. 지금 우리 양떼목장의 양들이 그때 그 양들의 자손이다.”


▲1968년 9월 15일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호주ㆍ뉴질랜드로 떠나는 모습. ⓒ 국가기록원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참으로 막막했다.
박 대통령의 호주ㆍ뉴질랜드 방문으로부터 현재 전영대씨의 양떼목장까지 40년 너머 긴 세월의 놀라운 인연은 컴퓨터 압축폴더로 툭 던져주는 것처럼 속사연을 알 수가 없었다. 압축폴더를 풀어 그 세월을 늘어놓고 타임머신을 타고 번쩍번쩍 여행을 해야 납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긴 세월 동안 대중의 가슴에 흐르고 있는 망향의 노래가 있다.
“남쪽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노래에 나오는 십자성은 한국에서 보이지 않는다. 남태평양에 뜨는 별이다. 그래서 ‘남쪽나라 십자성’이다. 월남파병 용사들이 십자성을 보며 이 노래를 불렀고, 사모아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던 우리 원양선원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 호주와 뉴질랜드에 가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정겹고 애틋한 망향의 상징이 역시 십자성이다.

원수같은 가난에서 벗어나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고, 남에게 얻어먹지 않는 떳떳한 나라를 만들어 보자고 땀과 눈물을 쏟던 60년대에 남태평양에서 먹을거리 두가지가 들어왔다. 참치와 우유다.
길거리 가게에 흔하게 쌓여 있는 참치 통조림의 참치가 사모아의 원양어업에 의해 그때 들어왔고,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의 호주ㆍ뉴질랜드 방문 이후 본격 시작한 축산업에 의해 우유가 일상의 식품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때 함께 들어온 것이 면양이다.

푸른 초원과 양떼를 노래하던 목가적인 풍경

앞서 뉴질랜드에 갔던 박 대통령은 목초가 지천으로 널린 목장의 양떼를 보고 영양결핍의 우리 어린이들을 떠올리면서 “우리 아이들이 저 배부른 양떼들보다 못하다는 말이냐”고 탄식했었다고 한다. 면양 도입은 쇠고기를 먹을 형편이 못되는 대신 육질과 맛에서 전혀 손색이 없는 양고기를 먹어보자는 절박한 소망과, 호주ㆍ뉴질랜드의 축산 선진기술에 감탄한 박 대통령의 “우리도 축산을 제대로 해보자”는 열망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정부는 대관령에 초지를 조성하고, 전북 운봉의 지리산 바래봉 일대에 국립면양종축장(정식 명칭은 국립종축원 남원지원)을 세웠다. 당시 우리는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호주 정부가 ‘콜롬보 프로젝트’라 불리는 대 한국원조계획에 따라 면양 도입과 기술지도를 적극 도와주었다.
2백만평에 이르는 지리산 운봉 종축장에 수천, 수만의 앙떼가 풀을 뜯고, 그 양들은 번식에 번식을 해서 각지로 분양되었다.

“시원한 밀짚모자 포플라 그늘에, 양떼를 몰고가는 목장의 아가씨….”
“뭉게구름 저편 산너머로 기러기떼 날으고, 양떼를 몰고오는 언덕길에 초생달 빛을 뿌리면….”
더불어 목가적인 대중가요가 크게 유행했다.
이 노래들은 소위 박정희 권위주의 정부가 만든 건전가요가 아니다. 대중가요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푸른 전원을 향한 꿈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호주ㆍ뉴질랜드로부터 귀국한 직후인 1968년 10월 30일 대관령 초지조성 지대에서 양들을 직접 사진촬영하는 모습. ⓒ 국가기록원

그러나 박정희 시대가 끝나고 그 꿈은 시나브로 시들어꼬부라졌다. 곳곳에 골프장을 만들고 그린벨트를 허물어 당대의 환심을 사기에 급급한 근시안적인 정책에 밀려 면양이 살아갈 초원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면양 사육은 찬밥 신세로 전락, 운봉의 면양 종축장은 1988년 문을 닫고 말았다.

실패를 건네받아 성공으로 바꾼 대관령 양떼목장

온국민이 서울올림픽에 열광하던 그해 1988년, 홀로 대관령에 올라 목장의 꿈을 이루리라고 결심한 30대 후반의 남자가 있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직장생활의 회색 도시를 벗어나 전원에서 푸른 인생을 다시 설계하기로 한 그가 찾아간 곳은 운봉의 면양 종축장.
종축장에 남아 있던 양들을 마지막으로 분양받았다. 2백30마리를 떨이로 헐값에 샀다.
종축장 사람들은 마지막 양들을 처리해주는 그가 매우 고마우면서도 걱정스런 말을 했다. 목축의 ‘목’자도 모르는 사람이 양떼목장을 하겠다니, 까놓고 말하면 정신나간 짓이라는 것이었다.

그 정신나간 사람이 바로 전영대씨.
그의 꿈은 초원에서 양떼와 함께 살고 싶은 것,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어…”라는 그의 젊은 시절 파월 청룡용사 출신의 인기 정상 국민가수 남진의 노래가 그려 보이던 오직 그것이었다. 그렇게 살면서 삭막한 도시를 잠시나마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원의 평화와 휴식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전영대씨의 양떼목장은 대관령을 대표하는 관광 상품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2백마리부터 3백마리 안쪽의 양들이 살고 있는 양떼목장은 그리 큰 규모가 아니다.
겨울철 양떼목장의 매력은 양들이 모여사는 축사의 체험관광 외에도 1∼2시간 정도 둘러볼 수 있는 산책길의 낭만을 빼놓을 수가 없다.
햇빛에 난반사되는 눈밭의 풍광이 일품이고 영화촬영 소품으로 지은 오두막이 또한 정감을 주어 이곳을 찾는 가족과 연인들의 오붓한 사랑을 눈꽃으로 장식해 주고 있다.


▲양떼목장 명물의 하나인 산책길의 오두막. ⓒ 좋아하는 사람들

대관령 양떼목장의 이미지는 그것뿐이 아니다.
‘관광 축산’이라는 새로운 말을 탄생시킨 곳이다.
실패를 건네받아 성공으로 바꾼 주인공이 청운의 꿈을 이룬 곳이다. ◎

[좋아하는 사람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