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나환자들은 온전한 손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 손을 덥석덥석…

여동활 2009. 5. 15. 08:10

왕조시대에 태어나도 왕비였을 것”
나환자들은 온전한 손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 손을 덥석덥석…
2009-03-25 여영무(뉴스앤피플 대표ㆍ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나는 육영수 여사를 눈여겨보았다.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함께 새마을운동 시찰차 지방출장을 몇 차례 다녀오기도 했다.
육영수 여사는 국가를 위해 애국심을 갖고 ‘청와대 안의 야당’으로서 박 대통령을 충성스럽게 보필해온 현모양처형 출중한 인물이었다.

그분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도 깍듯이 정중하게 대했으며, 늘 부드러운 미소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육영수 여사는 해마다 연말이면 청와대 출입기자(당시 20명) 앞으로 예쁜 다이어리를 아무개 ‘기자님’이라고 직접 이름을 적어서 기자실로 보내곤 했다.
한번은 내 한자이름 끝자를 잘못 쓴 일이 있었다. ‘성할 무(茂)’인데 ‘호반 무(武)’로 쓴 것이다. 이런 사실이 우연히 육 여사에게 알려졌고, 그는 청와대에서 나를 만날 때마다 “내 참 미안해서…” 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보니 내가 오히려 더 미안할 때가 많았다.

육영수 여사는 그 정도로 체통 있고 품격 높은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 국민이 그의 별세를 슬퍼하고 지금까지 그의 덕을 우러러 존경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번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함께 지방출장 중 경북 구미 근방 나환자촌에 들렀다.
그때 나는 또 한번 놀랐다.
육 여사가 일렬로 죽 서 있는 나환자들의 손을 덥석덥석 겁없이 잡으면서 악수를 하는 게 아닌가. 나환자들은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등 온전한 손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바싹 다가가 손을 잡고 친절하게 악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역시 대통령 부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비범한 데가 있구나’ 절감하고 감동했다.

육영수 여사는 말씨, 예절, 자태, 옷차림 등 어느 면을 보아도 대통령 부인 사주로 태어날 분으로 느껴졌다. 그분은 왕조시대에 태어났더라도 왕비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어느 해 정초 청와대 출입기자단 세배 때 육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육영수 여사는 다림질할 때는 항상 라디오를 켜놓고 특히 은방울자매가 부르는 ‘마포종점’을 즐겨 들었다고 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소녀시절 프랑스에 유학 중 육 여사가 돌아갔다. 박 전 대표는 프랑스에 있을 때 어머니에게 대사관 파우치로 안부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그 편지가 박 전 대표가 육 여사 돌아가고 귀국 후 도착했다고 들었다. 얼마나 더 슬펐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

출처 : 관훈저널 2009년 봄호 / 여영무-고독한 언론 외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