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박정희대통령을 공과로 따져? 인과로 평가하라"

여동활 2012. 7. 8. 21:01

박정희를 공과로 따져? 인과로 평가하라"

<인터뷰>유신반대 선봉서다 박정희 좋아하는 모임대표된 최회원 씨
"진보는 박정희를 과거에 가둬놓고 있으며 보수는 단순히 찬양만..."
김소정 기자 (2012.07.08 10: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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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회원 회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대통령의 공과를 따지는 일조차 시기상조라 여겨질 정도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선 한쪽은 비판 일색 또 다른 쪽은 단순 숭모로 국민감정이 나뉘어 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국가의 성장시계를 4배 이상 빠르게 돌려놓은 장본인이지만 무려 18년을 장기 집권한 ‘독재자’ 오명을 벗어버리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끄러운 과거 ‘유신헌법’마저도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도 허당이다’란 신념으로 뭉친 걸출한 역사적 인물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재평가해보자는 제안은 어떠한가.

박정희 정권 때 대학생 신분으로 반정부 시위에 투신하다 강제 징집됐던 것으로 유명한 ‘71동지회’의 일원으로서 지금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모임’을 이끌고 있는 최회원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판단은 공과가 아니라 인과와 필연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박 대통령의 공과를 어떻게 볼 지는 내게도 어려운 숙제였다. 하지만 공도 있고 과도 있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시각으로는 설명이 안 되더라”면서 “결국 그 당시 경제발전을 떠난 현실정치가 가능했는지, 그래서 박 전 대통령이 행한 비민주적 절차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문제였다”고 했다.

지금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선 전문가라 자부할 수 있는 그는 “정치는 바로 현실이고 여기에 지고지순의 선택은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며 “가치논쟁으로 보면 한이 없겠지만 박 대통령에게는 적어도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신념이 있었다”고 평했다.

“사실상 무정부 시대나 다름없었던 장면 정권을 떠올리면 경제발전은 요원한 상황이었다. 물론 민주화를 유보한 것에 대한 비난은 있을 수 있겠으나 적어도 박 대통령에겐 나름의 소신과 철학이 있었다”는 것이 최 회장의 판단이다.

박 전 대통령은 그 시절 세계은행조차 우려스러워 했던 수출주도형 개발계획을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런 놀라운 리더십이 지금은 마치 반공시절 교과서처럼 부끄러운 과거로 묻혀버린 측면이 있다.

최근 세계은행의 피터 헐머(Peter Heller) 전 부총재는 “당시 한국의 야심찬 개발계획에 세계은행 부총재는 직접 편지까지 보내 우려를 표했다”며 “그러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최대한의 정치적 의지와 지지를 보여주며 독려했고 결국 이뤄냈다”고 밝힌 바 있다.

◇ 최회원 회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와 관련해 최 회장은 “나도 대학교 다닐 때 ‘수출주도형은 곧 망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탁상이론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도 많다. 자본도 기술도 없던 나라에서 수입대체도 힘들었지만 박 대통령의 결단이 있어 지금과 같은 경제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유신헌법이 탄생한 것에도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에 자주국방 계획을 세우고 중화학공업 발전을 밀어붙였다. 성공을 위해선 최소한 5~10년 이상 정치적인 안정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스스로 유신헌법을 지시했던 그였지만 막상 제출된 법안을 보면서 ‘이것도 법이냐’라며 자조했던 사실이 있다고 한다.

최 회장은 “눈부신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모든 절차를 민주적으로 했어야 한다는 후세의 비난도 분명 있을 수 있겠지만 산업발전에 세계적인 시기와 흐름이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었던 박 대통령으로선 ‘적기를 놓치면 가능성이 멀어지거나 더 오래 걸릴 수 있다’는 판단을 했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민주화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신념은 무엇이었다고 최 회장은 판단할 지 궁금해졌다. 최 회장은 한마디로 “그분의 민주화 신념은 잘 모르겠다”면서 “다만 민주화를 경멸하거나 반대한 흔적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해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1971년 박 전 대통령이 카이스트를 방문하는 길에도 학생들의 데모가 한창이었다. 심지어 대통령 관용차에까지 돌덩어리가 날아올 정도였다. 학교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학생처장 등 학교 관계자들을 불러놓고 한바탕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손에 흙 묻은 사람은 다 잡아들여’라고 해서 학교가 아수라장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 잡아들였다’는 보고를 받은 대통령의 다음 지시는 “다 풀어줘”였다고 한다.

최 회장은 “박 대통령에 관한 일화를 살펴보면 그가 무척 세심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유신시절 제적당했다 강제 징집됐던 학생들은 이후 원칙적으로 복학이 금지됐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원칙만 세워놓고 전원 복학시켰다고 한다. 최 회장은 “이런 면을 볼 때 박 대통령은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증오를 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미움과 비난을 잘 알면서도 잠시 초월했던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 경제학자가 남긴 유명한 말을 전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일 수 없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경제가 발전하면 당연히 국민의 욕구가 올라가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커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독재자는 어느 정도 경제를 발전시키다가 장기집권을 위해 멈춰버리지만 박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제대로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최 회장은 “좌파나 우파 모두 박 대통령을 중립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면서 “소위 진보 세력은 과거의 사고틀 속에 머물고 있으며, 보수 세력은 박 전 대통령을 단순 지지하거나 숭모하는 정도”라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에 앞장선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행위에 대해 “화합과 화해를 위해선 피해자의 용서가 필요했다”면서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처음으로 집권한 노무현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을 보면서 나라에 진정한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최회원 회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특히 “집권 내내 이념대립을 심화시킨 데다 비리와 부패마저 다른 정부와 다를 게 없는 것을 보고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뤄낼 좋은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빼놓지 않았다. 우선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선 역사적 배경을 따져볼 때 “그가 이룬 농지개혁 덕분에 6.25 전쟁을 겪고도 대한민국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소작농들이 큰 불만을 품지 않았기 때문에 민중들이 대거 사상전향을 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에 대해선 “순수한 민주화 운동가가 아니라 정치가였고 민주세력을 아군으로 삼았을 뿐이다”라며 “두 분이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가 된 것은 맞지만 정신적 지도자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우리 민주화는 민중이 이룬 것으로 굳이 지도자를 꼽으라면 김수환 추기경이나 운동권의 원로그룹을 꼽아야 한다”고 평했다.

최 회장은 통합민주당 이전 ‘꼬마 민주당’에 몸담으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92년 대선 정책공약을 총괄한 이력도 있다. 최 회장은 “과거 정치에 잠깐 몸담았을 때에도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역적 기반에 둔 정치행위에 줄곧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위기가 닥치면 서로 손을 잡았다가도 금세 지역감정을 조장해서 대립하곤 했다. 이것이 바로 정치인으로서의 한계라고 본다”고 소회를 말했다.

◇ 최회원 회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마지막으로 최 회장은 현재 우리사회의 민주화 정도를 묻는 질문에 “외형적으로는 넘쳐나고, 내형적으로는 미성숙했다고 판단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정치·사회적인 측면에서 너무 방만한 민주화가 이뤄졌다고 본다. 떼법이 우선되고,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경우에 따라 불법이 자랑스러운 곳이 현 대한민국 사회”라며 “이런 현상이 바로 지난 민주화운동 시절의 잔재라는 평가가 있는 만큼 아직까지 진정한 민주화를 이뤘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덕목에 대해서도 “가장 우선 과제가 진보와 보수, 동과 서, 계층 간을 허물 수 있는 국민통합에 있다. 국민통합이라는 말이 막연하게 들리거나 힘들게 여겨질지 모르겠으나 실은 진심을 모으면 가능한 문제”라면서 “우리가 ‘관제’라는 딱지를 붙였지만 ‘새마을운동’과 비슷한 욕구와 열정, 희생이 있을 때에만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재도약을 위한 필연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데일리안 = 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