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감옥서 만두 한두개로 버틴 김영환은...
<이종철의 으라차차!! 대한민국 - story K 칼럼>
북에 중국 개방 따르라는 김영환에 국가위해죄라니
북에 중국 개방 따르라는 김영환에 국가위해죄라니
이종철 청년지식인포럼 스토리K 대표 (2012.07.25 09:03:54)
김영환 동지가 석방된다는 낭보를 듣자마자 인천공항으로 향하였다. 공항으로 가는 기차 안은 가슴으로 떨렸다. 뭉클한 가슴을 주체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소리치고 싶기도 했고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붉어져 오는 눈시울을 가누기가 어렵다. 그리고 공항철도의 역간 거리가 오늘 따라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지는지. 빨리 도착하여야 하는데. 그래서 먼저 가서 맞아야 하는데... 출구는 어느 출구일까... 인터넷을 뒤져 정확한 출구를 미리 체크해 본다...
다행히 비행기와 거의 비슷한 시각에 공항 엘리베이터를 뛰어 오를 수 있었다. 출구에서의 시간은 멈춘 듯이 초초했다. 일반 승객들이 모두 빠져 나간 후에도 한참을 기다린 후 저 멀리서 김영환 동지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유재길, 강신삼, 이상용 동지가 나란히 함께 걸었다. 수척한 얼굴이었지만 역시 김영환 동지와 그들은 강건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다.
김영환에 대한 강압적 연행과 수사...
김영환은 중국에 체류하던 지난 3월 29일 불시에 연행되었다. 동시에 유재길, 강신삼, 이상용 일행도 중국 당국의 무지막지한 강압 속에 끌려 갔다. 그리고 무려 넉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구금이 되었다. 변호사 접견은 물론 가족 접견도 없었고 한국 대사관의 영사 접견도 허용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 한 달 반이 지나서야 한국 영사관은 단 한 번 김영환만 면회를 할 수 있었다. 고문을 하지는 않았지만 처음엔 앉아서 자게 하는 등 고문 아닌 고문으로 사람을 괴롭혔다고 한다. 한 두 개의 만두와 국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이렇듯 중국의 후진적 형법 체계는 김영환을 왜 체포하였는지 왜 구금하였는지 전혀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채 비밀로 일관하였으며 나중에 알려진 사실은 중국 당국이 국가안전위해죄로 김영환 일행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영환에게 중국 국가안전위해죄를 덮어 씌운다는 것은 전혀 터무니 없으며 그야말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다.
김영환은 지난 10여년 간 많은 글을 써 왔으며 그의 글을 통해 그가 항상 이야기 하였던 바는, 중국의 눈부신 발전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과 북한이 중국을 본받아 중국처럼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시종일관 한중 우호관계의 발전을 추구하였다. 이런 김영환을 중국이 무지막지하게 체포하여 구금하고 강압적인 수사를 진행하며, 영문도 모른 채 넉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어둠 속에 가둬두었다는 것은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과 정부 및 각계의 노력에 감사
김영환의 석방을 위해 우리 국민들은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우리 정부도 많은 노력을 하였다. 정치권도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하여 김영환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상정할 예정이었다. 이 같은 국민의 관심과 정부 여당의 노력 앞에서 중국도 더 이상 김영환을 붙잡아둘 명분이 없는 가운데 기소도 하지 못하고 석방을 결정하였던 것이다. 김영환이 입국장에서 입장 발표의 맨 앞에 밝힌 것처럼 국민과 정부 및 각계의 노력에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환, 유재길, 강신삼, 이상용은 감옥에서 넉달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것이다. 북한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였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에 붙들려 가고 감옥에 수감되는 것이 우리가 잘 모르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동안 사실 김영환 일행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중국의 감옥에서 형을 살았다. 단지 탈북자 지원 활동을 한 것만으로도 구속 수감되기 일쑤였다.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북한 인권 운동
심지어 중국에서 북한으로 납북된 경우도 있다. 1995년 안승운 목사는 중국 옌지(延吉)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북한으로 납북되었으며 최근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0년엔 북·중 국경지대에서 탈북자 지원과 북한 선교 활동을 벌이던 김동식 목사가 북한에 납북되었으며 북한 공안기관의 회유를 거부하다가 이듬해 2월 중순 평양의 모처에서 숨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1년에 독침 피습 공격까지 받은 바 있는 강호빈 목사는 올해 5월 27일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주로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목사들이었던 면면에서 보듯이,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고 북한 인권과 관련된 어떤 활동을 한다는 것은 목숨마저 내놓아야 하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 되고 있다. 북한 동포들의 인권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인류 보편적 견지에서도 누구든 나서야 할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직접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인권 운동이 아무리 험난한 일이고, 과거 권위주의 시절 대한민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것 이상의 각오와 결의를 요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누군가는 그 짐을 지고 나서야 한다.
김영환은 입국장에서, 북한 주민들은 참혹한 독재에 시달리고 있으며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서 멀리 있는 나라들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마당에 같은 동포로서 이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어떠한 탄압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북한 인권을 위해서,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김영환 일행의 고초 기억해야…북한 인권 운동은 대한민국의 권리이자 의무
우리는 김영환 일행이 중국에서 겪은 고초를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헌신과 노력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 인권 운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고통 받는 북한 동포를 구원하는 것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어디 있는가. 김정은 세습 독재를 종식하고 북한 주민들을 해방하는 일만큼 더 중요하고 긴요한 시대적 과제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김영환 사건을 통해 지난 10여 년 간 이름도 없이 북한 인권을 위해 묵묵히 활동해 온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분투와 노력을 회고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국제사회가 움직이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북한의 실상을 올바로 알게 됨은 물론 북한 주민들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갖기까지 그야말로 바닥에서 조용히 역할을 해 온 많은 활동들과 그 시간들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북한인권법을 두고 온갖 정치적 공세가 난무하면서 진지한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 인권이면 인권이지 북한 ‘민생’ 인권을 거론하며 본질을 피해 가려는 이들의 문제점도 간파해야 한다. 김영환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북한 인권을 위한 더 적극적인 고민과 모색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그의 말처럼 북한 인권 운동은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리고 어떤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도 북한의 민주화는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그 노력이 계속 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글/이종철 청년지식인포럼 스토리K 대표(http://www.storyk.net)
다행히 비행기와 거의 비슷한 시각에 공항 엘리베이터를 뛰어 오를 수 있었다. 출구에서의 시간은 멈춘 듯이 초초했다. 일반 승객들이 모두 빠져 나간 후에도 한참을 기다린 후 저 멀리서 김영환 동지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유재길, 강신삼, 이상용 동지가 나란히 함께 걸었다. 수척한 얼굴이었지만 역시 김영환 동지와 그들은 강건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다.
김영환에 대한 강압적 연행과 수사...
김영환은 중국에 체류하던 지난 3월 29일 불시에 연행되었다. 동시에 유재길, 강신삼, 이상용 일행도 중국 당국의 무지막지한 강압 속에 끌려 갔다. 그리고 무려 넉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구금이 되었다. 변호사 접견은 물론 가족 접견도 없었고 한국 대사관의 영사 접견도 허용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 한 달 반이 지나서야 한국 영사관은 단 한 번 김영환만 면회를 할 수 있었다. 고문을 하지는 않았지만 처음엔 앉아서 자게 하는 등 고문 아닌 고문으로 사람을 괴롭혔다고 한다. 한 두 개의 만두와 국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이렇듯 중국의 후진적 형법 체계는 김영환을 왜 체포하였는지 왜 구금하였는지 전혀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채 비밀로 일관하였으며 나중에 알려진 사실은 중국 당국이 국가안전위해죄로 김영환 일행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영환에게 중국 국가안전위해죄를 덮어 씌운다는 것은 전혀 터무니 없으며 그야말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다.
김영환은 지난 10여년 간 많은 글을 써 왔으며 그의 글을 통해 그가 항상 이야기 하였던 바는, 중국의 눈부신 발전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과 북한이 중국을 본받아 중국처럼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시종일관 한중 우호관계의 발전을 추구하였다. 이런 김영환을 중국이 무지막지하게 체포하여 구금하고 강압적인 수사를 진행하며, 영문도 모른 채 넉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어둠 속에 가둬두었다는 것은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죄 위반 혐의로 체포됐던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20일 오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민과 정부 및 각계의 노력에 감사
김영환의 석방을 위해 우리 국민들은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우리 정부도 많은 노력을 하였다. 정치권도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하여 김영환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상정할 예정이었다. 이 같은 국민의 관심과 정부 여당의 노력 앞에서 중국도 더 이상 김영환을 붙잡아둘 명분이 없는 가운데 기소도 하지 못하고 석방을 결정하였던 것이다. 김영환이 입국장에서 입장 발표의 맨 앞에 밝힌 것처럼 국민과 정부 및 각계의 노력에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환, 유재길, 강신삼, 이상용은 감옥에서 넉달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것이다. 북한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였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에 붙들려 가고 감옥에 수감되는 것이 우리가 잘 모르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동안 사실 김영환 일행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중국의 감옥에서 형을 살았다. 단지 탈북자 지원 활동을 한 것만으로도 구속 수감되기 일쑤였다.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북한 인권 운동
심지어 중국에서 북한으로 납북된 경우도 있다. 1995년 안승운 목사는 중국 옌지(延吉)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북한으로 납북되었으며 최근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0년엔 북·중 국경지대에서 탈북자 지원과 북한 선교 활동을 벌이던 김동식 목사가 북한에 납북되었으며 북한 공안기관의 회유를 거부하다가 이듬해 2월 중순 평양의 모처에서 숨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1년에 독침 피습 공격까지 받은 바 있는 강호빈 목사는 올해 5월 27일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주로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목사들이었던 면면에서 보듯이,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고 북한 인권과 관련된 어떤 활동을 한다는 것은 목숨마저 내놓아야 하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 되고 있다. 북한 동포들의 인권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인류 보편적 견지에서도 누구든 나서야 할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직접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인권 운동이 아무리 험난한 일이고, 과거 권위주의 시절 대한민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것 이상의 각오와 결의를 요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누군가는 그 짐을 지고 나서야 한다.
김영환은 입국장에서, 북한 주민들은 참혹한 독재에 시달리고 있으며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서 멀리 있는 나라들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마당에 같은 동포로서 이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어떠한 탄압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북한 인권을 위해서,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김영환 일행의 고초 기억해야…북한 인권 운동은 대한민국의 권리이자 의무
우리는 김영환 일행이 중국에서 겪은 고초를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헌신과 노력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 인권 운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고통 받는 북한 동포를 구원하는 것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어디 있는가. 김정은 세습 독재를 종식하고 북한 주민들을 해방하는 일만큼 더 중요하고 긴요한 시대적 과제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김영환 사건을 통해 지난 10여 년 간 이름도 없이 북한 인권을 위해 묵묵히 활동해 온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분투와 노력을 회고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국제사회가 움직이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북한의 실상을 올바로 알게 됨은 물론 북한 주민들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갖기까지 그야말로 바닥에서 조용히 역할을 해 온 많은 활동들과 그 시간들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북한인권법을 두고 온갖 정치적 공세가 난무하면서 진지한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 인권이면 인권이지 북한 ‘민생’ 인권을 거론하며 본질을 피해 가려는 이들의 문제점도 간파해야 한다. 김영환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북한 인권을 위한 더 적극적인 고민과 모색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그의 말처럼 북한 인권 운동은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리고 어떤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도 북한의 민주화는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그 노력이 계속 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글/이종철 청년지식인포럼 스토리K 대표(http://www.story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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