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제2연평해전 참전후 10번째 현충일 맞는 두 영웅]

여동활 2012. 6. 6. 23:48

[제2연평해전 참전후 10번째 현충일 맞는 두 영웅]
당시 중상 입고 응사한 곽진성씨 - 오른팔에 2발 '영광의 상처'
某회사 면접때 흉터 보더니 "그런 팔로는 일 못한다"
파편 박힌 팔로 분전한 고정우씨 - 제대하고도 나라 지키는 일
계속 하고싶어 방산업체 취직… 매년 두차례 꼭 현충원 찾아

2002년 제2연평해전 참전 용사인 곽진성(33)·고정우(고경락에서 개명·31)씨는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제2연평해전에서 침몰된 참수리 고속정 357호가 전시된 평택 2함대를 찾았다.

두 사람은 침몰 10년이 지나면서 벌겋게 녹슨 참수리호의 298개의 총·포탄 자국을 말없이 바라봤다. 곽씨는 갑판에 올라 기관총 거치대 앞에 섰다. 제2연평해전 당시 하사였던 그가 북한 경비정을 향해 기관총을 쐈던 곳이다.

그는 "여기서 적 총탄에 팔을 맞고 제가 튕겨져나갔는데, 그때 부사수였던 서후원 중사가 기관총을 대신 잡았다"고 했다. 곽씨는 거치대의 방탄판에 뚫린 아기 주먹만한 구멍을 보고 얼굴이 어두워졌다. "서 중사가 기관총을 잡은 직후 적 포탄이 날아와 방탄판을 뚫고 서 중사 가슴을 관통했어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쓰러져 있던 서 중사에게 외쳤습니다. '일어나! 같이 싸우자!'"

제2연평해전에 참전했던 곽진성(33·왼쪽)씨가 5일 평택 해군 2함대에 전시된 참수리호 앞에서 전우인 고정우(31)씨와 함께 북 총탄에 맞은 자기 팔의 상처를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곽씨는 또 다른 전사자인 황도현 중사의 하얀 운동화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당시 황 중사는 적 포탄에 맞아 얼굴 형체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며 "그가 신었던 하얀 운동화를 보고 그가 전사한줄 알았다"고 했다.

곽씨는 당시 오른팔에 총 두 방을 맞고, 오른쪽 엉덩이에는 포탄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다. 세 차례 수술을 거쳐 오른팔은 거의 제 기능을 회복했지만, 지금도 좁쌀 크기의 파편 수십 조각이 계속 피부 속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곽씨는 "북한군 때문에 생긴 몸의 상처보다 당시 우리 사회 분위기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더 깊었다"고 했다. 그는 "뉴스에선 월드컵 4강과 미선·효순이 사건이 훨씬 중요하게 다뤄졌다"며 "대한민국에서 제2연평해전을 숨기려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고 했다. 곽씨는 제대 후 구직활동을 할 때 모 기업 면접관이 약 20㎝가량 꿰맨 팔의 상처자국을 가리키며 "그런 팔로는 우리 회사에서 일 못한다는 말을 했을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제2연평해전 당시 제대 14일을 남기고 있었던 고씨는 "북한군의 비장한 얼굴 표정이 보일 정도로 두 함정이 가까이 있었다"며 "북한군이 설마 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소총 사수였던 고씨는 오른팔에 파편이 박힌 상태에서도 북한 경비정을 향해 계속 사격을 했다.

연평해전·천안함서 잇따라 전우 잃어… 2001년 당시 하사였던 곽진성씨(가운데)가 참수리 357호 위에서 박경수 상사(왼쪽), 황도현 중사와 함께 찍은 사진. 황 중사는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교전 중 전사했고, 박 상사는 2010년 천안함 폭침 때 실종돼 시신을 찾지 못했다. /곽진성씨 제공

고씨는 "지금도 전사한 전우들이 꿈에 자주 나타나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며 "정신적인 고통이 심해 한때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지만 이 사실을 숨겨 왔다"고 했다. "몸이 불편한데 정신병자라는 꼬리표까지 붙어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는 것이다.

곽씨와 고씨는 전역 이후 방산업체인 LIG넥스원을 함께 다니고 있다. 곽씨는 휴대용 대공유도무기 '신궁'을, 고씨는 214급(1800t급) 잠수함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방산업체에 취직한 이유에 대해 "민간인이 되어서도 나라 지키는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오는 29일은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 지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당시 참수리 357호에 탔던 생존 전우 18명은 매년 현충일과 6월 29일 '357 전우회'라는 이름으로 대전국립현충원과 참수리호를 찾고 있다.

전사한 정장(艇長) 고(故) 윤영하 소령과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의 전우를 기리기 위해서다. 이들은 "우리만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유족에게 죄송스럽다"며 "우리에게는 매일매일이 현충일"이라고 했다.

곽씨는 "제2연평해전 이후에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당하고 제대로 응징을 못한 게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고씨는 "북한 때문에 우리 군인과 국민이 그렇게 피를 흘렸는데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북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