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5.31 03:17
17년 전 미 해군 정보국 소속이었던 김씨에게 백동일씨,
北해군 정보 부탁 들통나 9년간 수감… "크고 고마운 빚진 분 마중"
"크고 고마운 빚을 진 분을 마중 나왔습니다."
30일 오후 5시쯤 인천국제공항에서 로버트 김(72)씨를 기다리는 백동일(64·국가수호
출입문이 열리고 머리가 하얗게 센 김씨와 아내 장명희(69)씨가 카트를 밀고 나오자,
김씨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2008년 이후 4년 만이다. 오는 6월 3일이 자신이 교도소에
30일 오후 5시쯤 인천국제공항에서 로버트 김(72)씨를 기다리는 백동일(64·국가수호
정책연구소 소장)씨는 긴장한 듯 손수건을 꺼내 손의 땀을 닦았다.
17년 전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하던 백씨는 "북한 해군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데
도움을 달라"고 미 해군 정보국 컴퓨터 분석관이던 로버트 김씨에게 부탁했다.
이듬해인 1996년 9월 김씨는 북한 잠수함의 강릉 침투 사건 관련 정보를 한국에 제공한
혐의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9년간 미 연방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출입문이 열리고 머리가 하얗게 센 김씨와 아내 장명희(69)씨가 카트를 밀고 나오자,
백동일씨는 달려나가 두 팔로 김씨를 끌어안았다. 김씨는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라며 백씨의 등을 두드렸고, 백씨는 "더 건강해보이십니다"라며 웃었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김씨의 아내 장씨는 감정이 복받친 듯 반대편을 보고 눈물을 훔쳤다. 백씨의
첫 인사와는 달리 김씨는 오랜 수감생활 끝에 얻은 고혈압으로 고생하고 있고, 최근엔
의사로부터 "췌장암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김씨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2008년 이후 4년 만이다. 오는 6월 3일이 자신이 교도소에
있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 기일이다. 김씨를 비롯한 5남매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김씨가
26세 때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처음이다.
- 30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로버트 김(오른쪽)씨와 백동일 국가수호정책연구소장이 반갑게 얼싸안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김씨는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내 고향에서 열리는 세계박람회를 보겠느냐"고 했다.
김씨와 백동일씨는 17년 전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한국 안보에 대한 걱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로버트 김씨는 종북 성향 인사들의 국회 진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백동일씨가
"오늘 국회가 개원했는데 큰일이다.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정체성이 모호한 이들이 국회에
들어간다. 이들이 법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말하자, 김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센스다. 이런 종북 인사들이 국회에 들어간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몸서리쳐진다"고 했다.
김씨는 "이들이 국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표를 던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했을지는 몰라도 아직 안보 의식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로버트 김씨를 마중나온 것은 백동일씨뿐만이 아니었다. 백씨가 1975년 UDU(해군첩보부대)
장교로 근무할 때 대원이었던 UDU 전역 동지회 회원 8명도 플래카드를 들고 나왔다.
UDU 동지회 서승석(58) 회장은 "모국을 위해 희생한 분이 아직도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라도 로버트 김씨 귀국을 환영하기 위해 꽃다발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마중 나온 지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아내와 함께 여수로 가기 위해 공항을 나서는 김씨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백동일씨는 아쉬운 듯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백씨는 "김씨가 수감 생활
하면서 병을 많이 얻었다. 다 내 잘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