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朴정희 대통령과 첫 새마을의 날을 맞이하며.

여동활 2011. 4. 23. 19:33

朴정희 대통령과 첫 새마을의 날을 맞이하며.

   

 

새마을 운동은 1970년 초 당시 대통령 朴정희의 특별 지시로 보릿고개를 없애고, 대한민국 농촌의 현대화를 위하여 시작되어 범국가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운동으로 조국 근대화에 초석이 되었다. 즉 새마을 운동은 근면-자조-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하였으며, 새마을 운동은 농촌의 근대화-지역의 균형적인 발전-의식개혁을 그 목표로 하였었다.

 

1970년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은 ‘잘 살기 위한’ 운동으로, 우리나라의 범국민적 지역사회 개발운동으로, 1970년 4월 22일 특별시장 직할시장 도지사급 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故 朴정희 대통령이 처음 제창함으로써 시작되었는데, 정부는 1970년 5월 6일 새마을운동 추진방안을 수립하고, 그 첫 단계로 당시 정부는 정부가 1개 里-洞에 시멘트 335부대를 지원하고 이를 이용하여 농촌 주민 스스로가 환경개선 사업을 펴도록 하는 등 농촌환경정비사업을 시작하였으므로 처음은 정부주도로 이루어졌었다.

 

생각하여 보면 새마을운동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특히 1980년대 새마을운동의 정치적 변질과 악용은 아직까지도 치명적 상처로 남아 있다지만,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농민들이 숙명적 빈곤에서 벗어나고 농촌지역이 근대사회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 자체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렵고, 무엇보다 새마을운동은 당시 朴정희 대통령에 의하여 나름대로 독특한 방식으로 추진된 공공계획의 일대 개가였다고 하겠다.

 

즉 朴정희 대통령은 모든 농촌마을에 최초의 기회는 시멘트나 철근 정도를 동일하게 제공하되, 그다음부터는 스스로 노력하는 마을에 대하여서는 선별적-차별적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을 택하므로, 근면-자조-협동 등 무형 자원이 정책수단으로 사용됨에 따라 잘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선의의 경쟁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고, 바로 그것이 새마을운동의 발단이었다.

 

대한민국 건국 60년에 최고 업적으로 대중들은 새마을운동을 앞 다투어 꼽고 있는데, 한국의 保守-右派들은 이런 역사적 성취를 외면하고 심지어 국가기념일로 만들어 놓고도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려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스럽기가 그지없다고 하겠다.

 

지난 2월 국회 본회의에서 ‘새마을의 날’ 은 국회에서 국가기념일로 조용히 태어났는데, 표결 결과를 보면 재적 296명에 재석 209명에, 찬성 191명 반대 5명 기권 13명으로 결정된 사안으로, 다가오는 4월 22일은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지 처음 맞는 ‘새마을의 날’ 이다. 그렇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아는 사람들 또한 그날이 공휴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심하여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참으로 irony한 것은, 국회 표결에서 반대가 민노당의 몫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民主黨 소속 의원 가운데 상당수가 찬성한 모양새가 되었는데, 한국현대사 평가를 둘러싼 작금의 치열한 이념 갈등을 고려할 경우 참으로 이례적인 장면이 아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돌이켜 생각하여 보자, 金대중은 자서전에서 ‘새마을운동은 속임수였다’ 고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의원들은 새마을의 날이 국가기념일이 되는데 반대보다도 일조를 하였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하건데 민주당 의원들이 평소 그들도 내심 새마을운동을 이해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金대중의 자서전을 읽지 않아서일까, 아니라면 金대중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하는 여러 의문은, 민주당이 새정치국민회의 시절인 1995년에 당시 李해찬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서울시청에서 새마을기를 내리도록 지시하자 당시 趙순 서울시장도 이에 적극 동조하였던, 새마을운동에 대한 민주당계의 전력을 기억할 때 더욱더 풀리지 않는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도 새마을 조직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새마을운동의 국가기념일 제정에 與-野가 모처럼 뜻을 같이한 것으로 2012년으로 다가온 總選 때문일 것이다. 즉 새마을의 날은 4월 22일인데 전국적 기념식은 4월 27일이 국회의원 보궐선거일이기 때문에 일정 연기가 불가피하였다는 새마을운동중앙회측의 설명이나, 5월에 거행하려는 것도 새마을 유관단체의 정치적 영향력 탓인가, 결과적으로 정치적 생색과 눈치만 두드러지면서 국가기념일인 새마을의 날을 경축하는 것도 눈치를 보아야 하는가.

 

한국갤럽 조사는 새마을운동을 건국 60년 동안 우리 민족이 성취한 업적들 가운데 최우선 순위로 꼽았으며, 오늘날 새마을운동은 또한 지역개발과 농촌운동에 관련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브랜드인데도, 정작 새마을의 날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역사적 예우는 부실하기 짝이 없게 보이고 느껴진다. 즉 일반 국민은 새마을운동을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정책사업으로 기억하는 데 반하여, 특히 이른바 진보성향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새마을운동에 대하여 관제 국민운동이라는 낙인을 거침없이 찍었고, 민주화 이후의 시대정신은 그것과의 정서적 거리를 한참 벌렸던 때도 있었다.

 

새마을 운동은 이처럼 농촌 근대화운동으로 시작되었다가 도시-학교-공장을 불문하고 전국적으로 일어났고 이것은 경제 성장과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즉 새마을 운동은 단기간에 낙후되고 있던 농업 경쟁력을 향상시켰고 시민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통하여 자신감과 공동체 의식 및 자발적 참여 의식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그러기에 새마을 운동은 가정 직장 등 한국사회 전반에서 실시되었으나, 반면에 행정기관의 주도로 진행되었고 유신 독재의 바탕으로 진행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세계적으로는 농촌 개발의 모델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사실이다.

 

그래서 유엔은 아프리카 빈곤퇴치 프로그램의 하나로 새마을운동을 선택할 만큼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또한 아프리카의 유엔 산하기관에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배워볼 것을 권고하기도 하였고, 현재 해외 74개국으로 새마을 운동이 수출되었고, 후진국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배우겠다며 방한하는 해외지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생각하기에 안타까운 점은 소위 한국의 保守-右派세력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적 경험과 자산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활용하지도 않고 있다는 무기력함이 엄연한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8.15, 6.25, 2.28, 3.15, 4.19, 5.16, 10.26, 6.29 등 정치사적 변곡점만 주목하는 데 익숙하여져 있기 때문에, 이는 左派세력과의 비생산적 논쟁으로 귀결되기가 다반사이다.

 

생각하기에 우리가 이룩한 새마을 운동이 그런 것처럼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진정한 성취와 進步는 경제적 혹은 사회-문화적 측면에는 새마을 운동이 늘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기에 이 정부가 대한민국의 적통을 이어받은 保守-右派정권이 분명하다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이후 최초의 ‘새마을의 날’ 을 이렇게 맞을 수는 없다는 게 대다수의 우리 국민의 정서라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