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왜 아직도 박정희인가? / 김의겸 | |
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 | |
김의겸 기자 | |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5·16 쿠데타 50주년 토론회에 들러봤다.
이철, 유인태, 이부영, 김근태, 이재오 등 박정희 시대를 온몸으로 항거했던 ‘전사’들이 청중석을 가득 메웠다. 토론자들은 때론 논리적으로 때론 격정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았던 더러운 역사를 고발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여전히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다. 토론회 내내 뭔가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건 그 현실 때문이었다. 그나마 “현재의 곤궁이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김호기 연세대 교수)이라거나, “민주·진보 세력의 혼미와 무능이 박정희 향수를 불렀다”(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는 짧은 진단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듯했다. 이때의 곤궁이란 상대적 박탈감에 가까울 것이다. 난 전셋값 대느라 헉헉거리는데 누구는 아파트값이 몇배로 뛰며 돈방석에 앉고, 난 애들 학원 하나 보내기도 벅찬데 누구는 자식들을 외국어고니 미국 대학으로 보내고, 똑같이 일하는데도 내 봉급은 누구의 반밖에 되지 않는 비정규직의 삶 등등. 가진 자와 힘있는 자들이 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초원에서 초식동물로 살아가야 하는 비애는 ‘도대체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낳게 한다. 이에 반해 박정희는 ‘보릿고개를 넘게 해줬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부동산값이 오르면 철퇴를 가했고, 전국적으로 고교 평준화를 단행했으며, 봉급은 적을망정 차별받지 않았던 직장 등등. 비록 독재를 했으나 시장의 강자들을 억누르고 약자들을 다독였다는 기억이 무덤 속의 박정희를 불러일으켜 세운 것이리라. 실제로 박정희 모델에 대한 향수는 그 어느 계층보다 고연령, 저소득, 저학력 등 서민층에서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은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의 자조적인 얘기를 듣기 원하는 게 아니라, 시장에 고삐를 채우는 강한 국가권력, 그리고 그 권력을 행사하는 초월적인 존재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토론회를 지켜보며 이런 단상들을 이어가고 있을 때, 전자우편이 한통 도착했다. 박근혜 의원의 지지율이 33.0%로 지난주에 비해 1.5%포인트 오르면서, 상승세를 이어갔다는 여론조사 결과다. 하늘과 땅 모두를 부녀가 석권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는 이제 아버지의 유산을 거의 다 단독 상속받은 것처럼 보인다. 천막당사, 세종시 공방, 이명박 대통령의 견제 등을 거치며 단련된 그의 정치력은 아버지의 강인함을 연상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요즘은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라며 적극적인 서민행보에 나서고 있다. 과거 국가보안법이나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하던 꼴보수의 이미지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의 손을 부여잡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더이상 불행한 가족사에 대한 동정이 아니다. 자신의 고단한 삶을 구원해 줄 지도자에게 바치는 헌화로까지 발전한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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