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첫 출전 이후 16번 우승, 40년 ‘기능강국’ 전통 이은 젊은이들
오늘의 ‘경제강국’ 대한민국은 산업현장으로부터 왔고, 거기에는 40년간 ‘기름밥’을 먹으며 땀흘린 청춘들이 있었다.
산업현장의 기술개발이 화려하게 꽃피우던 박정희 정부 시절, 그들은 안으로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착실히 뒷받침하면서 밖으로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발휘, 대한민국 블루칼라의 지존(至尊)을 과시했다.
지난 9월 7일 노동부(장관 이영희)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사장 유재섭)은 캐나다 캘거리에서 막을 내린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한국위원회 회장 유재섭)에서 우리나라 대표선수단이 2007년 일본 시즈오카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종합우승의 영광을 안았다고 발표했다.
총 47개국, 45개 직종에 2천여명(선수 962명, 심사위원 895명 등)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 40개 직종에 걸쳐 45명의 선수를 출전시킨 우리나라는 금 13개, 은 5개, 동 5개, 우수상 12개를 획득해, 금메달 7개를 획득한 스위스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국제기능올림픽은 2년에 한번씩 열리는 만 22세 이하(통합제조 및 메카트로닉스는 만 25세 이하) 젊은 기능인의 잔치로 연구개발의 성과를 제품으로 구현하는 숙련기술과 일부 서비스업의 세련미를 겨루는 종합대회이다.
우리나라는 1967년 제16회 스페인 대회 이후 올해까지 총 25번 출전해 16번 종합우승을 달성함으로써 기능강국 코리아의 명성을 전세계에 다시 한번 과시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 온 CNC밀링이나 선반, 자동차 차체수리, 금형 등과 같은 기계와 제조업 종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조적이나 철골구조물, 타일 등 건축 관련 직종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외에도 모바일로보틱스나 실내장식, 요리, 귀금속공예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기능 분야에서도 골고루 금메달을 획득해 앞으로의 기능올림픽 전망을 더욱 밝게 했다. 특히, 요리직종은 79년 대회에 처음 참가한 이후 첫 금메달을 따고, 공업전자기기 직종도 79년 금메달 이후 30년 만에 금메달 사냥에 성공해 선수단 관계자들의 벅찬 감동을 이끌어냈다.
또한 타일 직종도 2001년 서울 대회 이후 5차례 출전해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랐다. 타일직종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수원하이텍고등학교의 김정구(20) 선수는 금메달 수상 소식을 접한 후 “1mm 오차마다 0.4점씩 감점되기 때문에, 4일간의 경기 내내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 것이 주요했다”고 말했다.
모바일 로보틱스 직종은 한때 일본의 견제로 뒤처지는 듯 했으나, 마지막에 공동 1위에 오르며 금메달을 따 감동을 더했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한국 대표선수들이 관중석을 향해 기쁨의 답례를 하는 모습. ⓒ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30년만에 공업전자기기 직종에서 금메달을 따낸 공군교육사령부 소속 허영환 하사. ⓒ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선수단에서 공업전자기기 직종의 허영환(20) 선수는 1979년 제25회 아일랜드 대회 이후 30년만에 금메달을 땄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경남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소속의 현역 군인(하사ㆍ정보통신특기)이어서 더욱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공군교육사령부 관계자는 “(허 하사가)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은 공군의 전문계 고등학교인 항공과학고 선생님들의 우수한 지도와 지원, 그리고 공군의 높은 기술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소감을 밝혔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대회에 총 4명의 선수를 출전시킨 현대중공업은 김준영(19)ㆍ이준하(20) 선수가 각각 철골구조물과 CNC밀링 직종에서 금메달, 판금 직종에 출전한 정태양(20) 선수가 은메달을 차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기업으로 꼽혔다. 현대중공업은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지금까지 금메달 42명을 포함 총 80명의 입상자를 배출했다.
박 대통령 “내가 순방하고 왔을 때보다 더 크게 환영해 주라”
중화학공업의 성장 신화를 만든 ‘블루칼라 전성시대’
우리나라와 국제기능올림픽의 인연은 제16회 스페인 대회부터였다. 1967년 스페인 대회에 첫 출전했던 우리 젊은이들은 스페인, 일본, 서독에 이어 종합 4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산업입국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던 박정희 정부가 기술개발과 기능올림픽에 쏟은 정성은 대단했다. 속속 공업고등학교가 신설되고 대대적인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1977년 네덜란드 대회에서 마침내 첫 우승을 따낼 수 있었다.
기능올림픽 선수단에게는 대대적인 카퍼레이드, 시민 환영대회, 대통령 주최 축하연 등이 풍성하게 베풀어졌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 김포공항에서 국립묘지까지 대형 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내가 순방하고 왔을 때보다 더 크게 환영해 주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를 듣고 모두 감격했다.”
1977년 라디오ㆍTV 수리 분야 금메달리스트 김동호 선수의 말이다.
▲기능올림픽 첫 우승 젊은이들의 청와대 방문. 1977년 7월 18일 박정희 대통령은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사상최초로 우승한 젊은이들을 서훈하고 다과를 베풀어 격려했다. ⓒ 국가기록원
▲이후 한국 선수들은 79년까지 내리 3연패를 달성해 블루칼라 전성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 한국무역협회
당시 공고생들은 교복에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는 리본을 달고 다녀 부러움을 샀고, 산업현장의 ‘기름밥 청춘들’은 최고 기술자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른바 블루칼라 전성시대였다.
이후 1979년 한국은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내리 3연패를 달성, 이러한 저력 위에 중화학공업의 성장 신화가 만들어졌고, 외국에서는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기술인력에 대한 관심과 이공계 우대 분위기는 1980년대까지 이어지다가 1990년대부터 3D 업종 기피 현상과 이공계 홀대 분위기로 하락 반전했다. 이공계를 지망하는 학생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젊은이들은 괄세받는 기술자가 아닌 의사나 약사, 판검사가 되는 길을 선호하고 있다.
‘이공계 위기론’이 국가적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선진국을 지향하는 말은 무성하면서도 정작 선진산업의 근간인 기술인력에 대한 정책은 딱히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 뒤를 잇는 국가경영의 비전과 진지한 열정의 리더가 없기 때문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분명한 것은 블루칼라와 함께가 아니고는 결코 선진 고도산업사회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의 우승은 1967년 스페인 대회 이후 40년 기능강국 코리아의 전통을 재확인했다는 점과, 특히 이공계를 홀대하고 기피하는 세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산업현장을 지키고 있는 ‘기름밥 청춘들’의 쾌거라는 점에서 더없이 고맙고 미안하기도 한 마음에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 대표선수단장 “기능인에 대한 국민의 관심 필요”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입상자에게는 순위에 따라 훈장과 포상금이 지급된다. 1위(금메달) 동탑산업훈장 5천만원, 2위(은메달) 철탑산업훈장 2천5백만원, 3위(동메달) 석탑산업훈장 1천7백만원, 우수상 산업포장 8백만원이 각각 지급되며, 국가기술자격 산업기사 자격시험 면제, 병역대체복무(산업기능요원 편입)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 역할을 담당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캘거리 현지에서 한국전통기능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홍보관을 설치 운영하여 우리나라 기능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대회 기간 동안 한국 홍보관에서는 서광수 도자기 명장 등 4명의 기능인들이 시연행사를 펼쳐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국산업인력공단 측은 밝혔다.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16번째 종합우승의 쾌거를 거둔 한국 선수들. ⓒ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유재섭 대한민국 대표선수단장(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개최지인 캐나다를 비롯해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들과 브라질 등 개도국들이 기능올림픽을 대하는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며, “'기능강국 코리아‘라는 국가브랜드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기능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이 매우 필요하다”고 밝혔다.
종합우승을 이끈 대표선수단은 오는 11일 오후 5시 30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할 예정이다. 다음 대회는 2011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며, 2013년 제42회 대회는 독일 라이프치히 유치가 확정됐다. ◎
[좋아하는 사람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