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35>경제개발의 길목에서
정보보고 읽고 정국 난기류 실감
朴대통령 “헌법 바꾸고 물러날 것”
법률특보 통해 개헌작업 물밑추진
1979년 1월 12일 대통령 경제담당특별보좌관으로 발령을 받았다. 새로 임명된 특별보좌관은 서종철 신직수 함병춘 김경원 박진환 씨 등이었고 박정희 대통령은 특보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수석특보가 된다고 말했다. 내가 부총리를 거쳐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특기할 점은 법률특보 자리가 새로 생겨 검찰총장을 지낸 신직수 씨가 임명됐다는 사실이다. 법률문제 때문에 특보를 둔다는 것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후일에 알고 보니 신직수 씨는 헌법개정안을 연구하고 기초하는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있었다.
특보가 된 후 자연히 혼자 혹은 다른 특보들과 함께 대통령과 면담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육영수 여사를 흉탄에 잃고 나서 대통령은 무척 쓸쓸한 모양이었다. 저녁때가 되면 종종 대통령 만찬에 합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러면 김경원 특보는 “우리가 반찬이야” 하는 농담을 하면서 본관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대통령이 본 다음 내려주는 각종 정보보고(중앙정보부, 군 보안사령부, 경찰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읽는 것이 일과였다.
나는 비로소 정국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경제장관으로 일할 때는 정치상황은 내 소관도 아니었고 돌볼 겨를도 없었다. 자나 깨나 경제문제와 씨름하기에 바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통령 주변 이야기를 듣고 나서 흘려버리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고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대로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끝에 특보들끼리 대통령을 어떻게 보필해야 할 것인지 토론하기도 했다.
나는 먼저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어느 날 대통령과 특보들이 식사를 같이하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정국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봐도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법은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어? 헌법을 개정하고 나는 물러날 거야.”
나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리고 왜 법률특보를 임명했는지 짐작이 갔다. 신직수 씨는 같은 특보로 있으면서도 동료들에게 일절 함구무언이었다. 다만 그의 보좌관 김기춘 씨(후일 법무부 장관이 된다)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보좌관 정훈목 씨를 통해 법률특보실의 동정을 살피곤 했다.
후일 신직수 씨를 만났을 때 그 당시의 자료를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전부 소각했다고 대답했다. 그 당시 유신헌법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올라왔을 때 ‘유신’은 일본의 명치유신(明治維新)을 딴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김종필 국무총리는 역사학자에 따르면 신라시대에 그런 말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대답했고 내각은 별말 없이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국가원수 자신이라기보다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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