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나는 아직도 명예로운 박정희의 戰士이다

여동활 2009. 5. 21. 20:18

나는 아직도 명예로운 박정희의 戰士이다
<기고>
2009-05-18 김경만(본회 회원ㆍ대한싸이로 근무)
▲포연 속을 헤치고 진격하는 맹호부대 병사(1966년 7월 4일). ⓒ 국가기록원

1964년 9월 11일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제1이동외과(130명), 태권도 교관단(10명)이 첫 파월된 이후 우리 군은 1965년 3월 16일 건설지원단(비둘기부대), 그해 10월 해병대 청룡부대와 육군 맹호부대,1966년 9월 육군 백마부대가 차례로 증파됨으로써 최고 5만명의 병력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이 전쟁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가.
얻은 것은 첫째, 그동안 거론되던 주한미군의 철수를 유보시켜 한반도 전쟁 억지력을 담보받은 것을 들 수 있다.
둘째, 국군의 현대전 경험과 장비 현대화로 전력증강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북한군 전력과 비슷해졌다는 말이 나왔다.
셋째, 베트남 파병의 후속으로 기업들의 동남아,중동 진출 계기가됬으며 경제 특수로 산업화를 촉진했다는 것이다.
넷째, 주월 외국군(8개국)중 한국군이 전과와 대민 지원사업, 책임지역 평정율 등에서 신뢰도 평가가 가장 높게 나와 국위선양과 국익배양에 크게 기여한 것을 들 수있다.

그러나 잃은 것도 있었다.
첫째, 참전 결과 적 사살 4만1426명, 총기 노획 2만900정, 지역평정률 96%를 달성한데 비해 아군 전사 4,960명, 부상 10,962명, 실종 십수명(납북으로 추정)등 귀중한 인명손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10만8,730명에 달하는 고엽제 장병들이 가족과 함께 고통받고 있는 현실도 큰 아픔이다. 하루 하루가 고통스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전우들을 보면 가슴 아프다. 각종 단체들의 수억에 달하는 보상금에 고엽제 전우의 보상은 보훈병원을 찾는 교통비에 못 미치는 현 정부의 보훈정책에 실망하지 않을 수없다.
이것이 국가에 충성한 댓가란 말인가?

한국군을 미군과 똑같이 먹이고 무장시키고 월급을 주었다면 세계에서 최고의 강군이 됐을 것이라는 중론이었다. 재주많고 부지런하고 용맹하고 일사불란하다는 점에서 무엇인가 해낼 민족으로 그들은 경외의 시선으로 보았던 것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아들에게 보낸 경상도 벽촌의 어머니 편지가 전 장병들까지 달달 외울 정도로 친숙해진 문장도 잊을 수가 없다.
“창수야!, 니가 보낸 돈으로 산 돼지가 무럭무럭 큰데이. 니 장가 밑천으로 단단히 될끼니 제발 살아서 돌아오래이.”

그러나 모 기업이 주월 한국군 덕으로 부자가 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들이 파월 한국군 전후 처리에 이바지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전우애, 동지적 관계란 말은 기업과 상관이 없는 모양이라고 참전 전우들은 섭섭해하고 있다.

베트남전은 그 결과와 관계없이 무엇보다 우리 민족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 준 계기로 청사에 빛나리라고 자부한다. 따라서 얻은 것과 잃은 것 중 얻은 것이 훨씬 많았다고 생각한다.

우리 32만의 참전용사들은 고뇌의 결정을 내린 故 朴正熙 大統領을 아직도 그리워한다.
우리는 아직도 자랑스런 박정희의 戰士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