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거기에 못 들어가서 야단인데”
제가 박 대통령을 모신 것은 18년 중 후반부 9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가 후반부에 들어가서 박 대통령에게 배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예로, 71년의 대통령 선거 후에 개각을 하면서 김종필 내각이 출범을 했습니다. 그때 저를 청와대로 데려간 사람이 제 대학 선배이자 언론계 선배이신 윤주영 수석이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격으로 청와대에 갔는데, 이 분이 김종필 내각이 출범하면서 장관으로 입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어 저 혼자 외톨이로 있게 되었는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청와대에서 일을 할 기질이 못 되어서 그만 두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저의 원래 직장인 동양통신에 찾아갔습니다. 그때 사장이 김성곤씨였는데, 김성곤씨에게 가서 동양통신으로 돌아오려고 하니 자리 하나만 내달라고 했더니, “남들은 거기에 못 들어가서 야단인데, 거기에서 나오겠다고 하는 것이 제정신이냐”면서 그냥 청와대에 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청와대 나가고 싶은데 “불평 말고 있으라”
그러고 있는데 대통령께서 불러서 올라갔습니다. 말씀하시기를 “<牧民心書>라는 책을 읽어봤느냐.”고 하시기에 못 읽어봤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나면 읽어보라. 거기에 너무 어려서 출세를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쓰여 있다. 그러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라”는 것이었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하시기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는가 했더니, “대통령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부처보다 직급을 하나씩 내려야 한다. 그래야만 권력이 깨끗해지는 법이다. 수석비서관도 앞으로 전부 차관급으로 내릴 것이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만두고 나갈 생각만 하고 있는데, 붙들어놓고 차관급으로 낮출 테니 불평하지 말고 있으라는 이야기를 하시니 앞뒤가 도저히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가 하고 있었더니 “윤 장관 후임으로 자천, 타천으로 여러 사람의 이름이 내 앞에 와 있는데, 나는 임자를 쓰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기다리고 있으라. 그 대신 5년동안 내 밑에서 일하다가 그 다음에 다른 데 갈 생각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와서 비서실장에게도 말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으면서 이게 무슨 수수께끼 같은 소리인가 하고 있었습니다.
문공부에 판공비도 없는데 출입기자들 “한턱 안낸다”고 투덜투덜
그 후 5년이 지나고 개각을 해서 최규하 내각이 들어설 때 그날 아침 대통령께서 부르셨습니다. 갔더니 응접실 옆에 백두진씨와 이효상씨가 함께 있었습니다. 개각에 대한 내용을 미리 설명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불러서 창가로 가더니 종이를 꺼내주시면서 “개각 명단인데 나가서 발표를 하라. 그 안에는 임자 이름도 있으니 그렇게 알고 가서 발표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종이를 펴보니 문화공보부장관에 제 이름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서 “각하, 저는 못합니다. 제가 이 장관직을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사람의 가슴을 들여다보는 데에도 천재적인 눈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다 알아. 여기에 있으면 편해서 그러지. 나가서 고생 좀 해. 나가서 발표해”하시는 바람에 꼼짝없이 나가서 발표를 하고 들어왔습니다.
눈앞이 막막해졌습니다. 문화공보부장관이라는 자리를 제가 옆에서 봐서 알지만, 이 자리는 매 맞는 자리이지 어떤 행세를 하는 자리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담당하는 부서가 언론계, 종교계 등 시끄러운 사람들만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중앙청 출입기자단에서 인사를 왔다고 해서 만나보니 언론계 후배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만, 이 사람들이 농담 겸 “출세를 했는데 저녁이라도 한 끼 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하는데 가슴이 철렁하는 것이었습니다. 20여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무슨 돈이 있어 저녁을 살까 싶어서 총무과장을 불러서 물었더니 기밀비도, 판공비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여기저기서 청와대에 있다가 내려왔다고 목에 힘이나 주고 예의도 차리지 못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권력 가지고 재물 탐내는 것 절대 안돼”
그러던 중 처음으로 결재 서류를 들고 청와대에 갈 일이 있어 들어갔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서류에 사인을 하시더니 “그 자리는 돈이 필요한 자리인데 돈이 안 생기는 자리야. 그렇다고 여기저기 손 벌리고 다니지 마라. 필요하거든 나한테 와서 달라고 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제가 어떻게 대통령한테 가서 돈을 달라고 하겠습니까. 알겠다고 하고서 서류를 들고 나오려고 했더니 책상 위에 있던 돈이 든 봉투를 주셨습니다.
얼핏 생각나는 것이 언론계 친구들이어서 그날 저녁을 당장 샀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욕하는 소리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여기저기 손 벌리고 다니지 말라고 했던 대통령의 말씀이 보통 말씀이 아닌 것이었습니다. 빈털터리 문공부를 맡아서 돈을 써야겠는데, 돈은 없고, 그렇다고 공금을 축낼 수도 없으니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돈을 주시면서 쓰라고 하셨지만 그 돈을 다 쓰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대통령께서 또 불러서 갔더니 “우리나라는 아주 잘못된 것이 있어.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재물을 탐낸단 말이야. 절대로 그러면 안 돼. 그래서 내가 임자한테 여기저기 다니면서 손 벌리지 말라고 한 것이야. 장관이면 권력에 속하는 것이야. 돌아다니면서 손 벌리지 마라. 또 한 가지, 우리나라에서 잘못된 것이 있어. 재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넘본단 말이야. 이따위 짓 하면 안 돼. 그러니 임자 앞으로 무슨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넘보는 이야기를 한다든가 시늉을 할 때에는 엄중하게 경고를 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재물을 탐하지 말고, 재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넘보지 말라는 것이 박 대통령의 생활신조요 정치철학이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고 이 분은 정말 따라야 할 스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을 9년 동안 모시면서 제 머리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 말씀이었습니다.
잘 산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유있는 생활, 품위있는 생활, 문화적인 생활. 우리나라 중산층의 모델을 박 대통령은 그렇게 정해서 모든 국민을 그런 식으로 잘 살게끔 해줘야겠다고 생각한 것과 또 하나인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재물을 탐내지 말고 재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넘보려고 하지 말라”는 두 가지는 제가 정부에 있으면서 항상 제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