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서 鐵 얻고 경운기회사도 참여… 美 설계부터 반대
입력 : 2016.05.24 03:00
1978년 발사 첫 국산 탄도미사일 '백곰' 극비 프로젝트 공개
당시 국방과학硏 3명 책 출간… 朴대통령 서거 후 개발 중단
우리 군(軍) 최초의 국산 지대지(地對地) 탄도미사일인 '백곰'의 극비 개발 과정과 뒷이야기를 다룬 책 '백곰, 도전과 승리의 기록'이 23일 출간됐다. 당시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으로 개발에 참여한 안동만(67) 한서대 교수, 김병교(69) 전 한화종합연구소 기술 고문, 조태환(70) 전 경상대 교수 등 3명이 공동으로 썼다.
저자들은 "백곰 개발은 1971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메모로 시작됐지만, 미국이 설계 단계부터 반대했다"고 밝혔다. 1970년대 동서 화해 분위기를 조성 중이던 미국이 한국의 첨단 무기 개발을 용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사령관, 주한 미국 대사 등이 백곰 개발을 맡은 ADD를 찾아와 개발 중단을 요구했다. 미 국방부 차관보는 우리 정부에 "탄도미사일 개발 뒤에는 핵을 개발할 것이냐"며 거칠게 항의했다고 한다.
이런 여건 속에서도 ADD는 1978년 9월 26일 박 대통령 앞에서 백곰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프랑스와 미국 방산회사에서 기술자들이 극비로 기술을 이전 받고 자료를 입수했다. 당시 동체 가공업체에 경운기 제조 회사가 참여하고, 로켓 연소실 제작에 필요한 고강도 강철이 없어서 청계천에서 155㎜ 포신을 구해 사용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백곰 공개 발사 이후 미국 카터 행정부가 파견한 7명의 사찰단이 ADD에 찾아와 기술 출처를 캐물었다고 한다. 영국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아 추진하던 백곰 성능 개량 사업(백곰-2)에 대해서도 미국은 강력히 항의했다. 이때 축적한 기술을 토대로 탄도미사일 '현무'를 양산하게 됐으나, 1990년 미국은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180㎞ 제한 약속에 위배가 있는 것 같다며 모든 방산 부품의 한국 수출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1979년 박 대통령 서거 이후 ADD 연구 인력 3분의 1이 감축되는 등 미사일 개발은 사실상 중단됐다. 박 대통령이 지시했던 무인기 '솔개' 개발도 멈춰 섰다. 안동만 교수는 "전두환 정권이 미국의 인정을 받아내기 위해 미사일 개발 의지를 꺾지 않았더라면 일찌감치 자력으로 나로호를 쏘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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