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박정희 대통령이야기】

여동활 2012. 6. 18. 23:00

 

박정희 대통령이야기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 우리나라는 보릿고개를 넘는 힘든 시기였다 그때 당시 나라의 발전을 위해 내놓은 것이 새마을 운동이었다. 우리나라는 먹는 것조차 해결되지 않을 만큼 힘든 상황이었고 농업과 낙농업의 발전이 시급하였다. 나라의 상황으로 보아 다른 나라의 원조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뉴질랜드 수상에게 회담을 제의했지만 이미 원조를 눈치 챈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답을 하지 않았다. 답답한 박대통령은 통보 후 무조건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이웃나라의 비행기를 잠시 빌려 뉴질랜드로 넘어갔다. 뉴질랜드 정부는 난리가 났다. 난처한 수상은 어쩔 수 없이 국빈 대접을 하기에 이르렀고 차를 타고 함께 관광을 하는데 박대통령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종일 어두운 안색으로 다녔다.

 

둘째 날도 아무 말 없이 다녔고 셋째 날 또한 박대통령이 한마디도 하지 않자, 오히려 궁금해진 수상은 창밖을 내다보며 한숨만 쉬고 있는 박대통령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장소에 내려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초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무리지어 놀고 있는 젖소들의 모습에 박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뉴질랜드 수상은 왜 그러냐고 물었고 박대통령은 가슴 저린 어투로

 

이 나라의 젖소들은 한가히 풀을 뜯고 있는데, 우리나라 농민들은 소 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배가 고파서 힘겨워하는 국민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집니다.”

 

라며 흐느끼다 못해 통곡을 하는 박대통령을 보고, 국민을 생각하는 그 마음에 진심을 느낀 수상은 도와주겠다며 스스로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는 소문이 났고 모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뉴질랜드 정부는 자진해서 젖소 1000마리와 함께 젖소관리사, 젖 짜는 기술자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필요한 도구도 함께 보내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역대 어느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 가서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국민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원조를 요청한 예가 있었는가. 이 이야기는 코가 찡하도록 감동스러웠고 귓가에 내내 맴돌았다.

 

그 후 낙농업이 크게 성장하여 먹고 사는 문제해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하여 2차 산업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자원이 없으니 또 다른 나라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이때 도움을 요청한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그 당시 유학생 한명이 자신이 다니던 학교 총장에게 도와 달라고 요청을 하였고 안타까운 사연을 총장으로부터 전해들은 독일 정부는 우리나라에

 

 

인건비를 선불로 줄 테니 한국 사람들을 수출하여 간병사나 광부 등 3D업종에 종사하게 해 달라.”

 

는 제안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타국으로 건너가 남들이 기피하는 힘겨운 일을 하게 되었고 그 수고로 인해 우리나라는 조금씩 2차 산업이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은 방문하여 그들을 한자리에 있게 되었고 연단에 올라가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박통은 마이크를 쥐고 10분 동안 말을 하지 못 했다고 한다. 타국에서 우리국민들의 까맣게 타고 고생으로 찌든 얼굴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너무 아파 한참을 울다가

 

"여러분, 여러분이 탄광에서 흘린 피와 땀이 그리고 간병한다고 받아낸 똥, 오줌이 지금 대한민국을 살리고 있습니다. 이 고통과 이 수고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정말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라고 하며 연단에서 내려가 일일이 교민들을 안아주며 지난 세월의 서러움과 고통을 눈물로 함께 달래 주었다고 한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독일정부는 국가를 생각하는 대통령과 한국 국민들을 보고 감동을 받았고 그 후 자진해서 돈을 빌려주어 우리나라의 근대화, 현대화에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월남전쟁에 파병을 하였고, 전쟁에서 흘린 수많은 국민들의 피의 대가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를 놓을 수 있었다. 미국이 쓰다가 남긴 물건이나 여러 가지 재활용 가능한 고철들을 실어와 포항제철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구걸하다시피 하며 나라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그 의지와 국민들을 위해 직접 발로 뛰며,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낮고 낮은 자세로 소임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

 

79년도 당시 호텔 총지배인으로 근무 할 때, 외국관광객 유치에 관해 고민을 하던 중,

 

경주 보문단지를 특수 관광단지로 만들어 세계에서 온 관광객, 특히 일본인들이 경주의 고적지를 관광하고 쇼핑도 하면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보면 좋겠다.”

 

란 생각을 하며 여러 가지 구상을 하며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삭막한 호수위에 오리와 새들이 날아오는 그림을 스케치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서

 

무엇을 그리고 있습니까?” 하고 묻기에

 

"보문단지를 활성화시켜 관광객들이 의미 있게 돈을 쓰고 맘껏 즐기다 갈 수 있게 바꾸고 싶어서 구상을 하던 중입니다. 호수가 너무 썰렁하고 구경거리가 없어서 철새들이 오고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좋겠고, 우선 스티로폼으로 만들던지 아니면 무엇으로 만들던 인공 오리를 물 위에 띄우고 오리 배를 만들고, 유람선을 띄워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식사와 음료도 즐기며 자연스럽게 돈을 쓸 수 있게끔 하면 좋겠고, 나아가 보문 단지 내에 라스베가스처럼 외국인 전용 자유관광지구를 개발했으면 좋겠다.”

 

고 하자, 그 분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어디에 근무하는 누굽니까?”

 

! 이사람 박정희 대통령과 참 많이 닮았네.” 라고 생각하며

 

○○호텔에 근무하는 지배인 정광호입니다.” 라고 하자

 

내가 스케치한 것과 구상한 계획을 상세하게 기획해서 줄 수 없겠냐며 자신은 조선호텔에 묵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던 차에 옆에 있던 경호원이 다가와

 

각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라고 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제야 지금까지 함께 대화를 나눈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이었다는 걸 알았다. 잠시 후 호텔로 돌아오니 이미 직원들은 모두 나와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을 알고 있었고, 나에 대해 다 알아보고 갔다며 그 사람이 정말 대통령인지 몰랐냐고 물어 보았다.

 

그분이 내려놓았던 선글라스와 그동안 모아둔 자료를 챙겨들고 호텔을 방문했다. 선글라스를 기념으로 내게 준다며 받지 않겠다고 했고 보문단지개발에 관한 내 생각에 바로 관심을 보였다. 나는 그동안 생각하고 있던 계획들을 짧은 시간동안 거침없이 쏟아내었으며 다음 약속을 하고 첫 만남을 마쳐야 했다. 그 후 약속한 만남이 있기 전, 저격사건이 있었고 아쉬운 만남은 그렇게 끝나 버렸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 때의 선글라스를 보관하고 있으며 아직도 가슴 속에는 그 분의 미소가 남아있다. 뉴질랜드, 독일 등을 찾아다니며 나라를 위해, 그리고 국민들의 나은 삶을 위해 온 마음과 온 몸으로 애쓰신 그분을 떠 올리면, 마음 한켠에 애잔함과 그 당시 느껴보지 못했던 잔잔한 고마움이 일렁인다.

 

오직 잘 살아보겠다고 경제와 자식교육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고속도로에서 잠시 내려와, 이젠 복지와 일자리창출, 소통과 화합, 안보와 국가관, 그리고 인성회복 등등을 생각하며 국도의 휘어진 아름다움도 돌이켜 보며, 차 한 잔의 여유와 빛명상과 함께 하는 건강과 행복의 소중함과,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 피어있는 사랑이야기도 나눌 줄 아는 그런 나라의 위정자가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