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박정희대통령 가까이서 보니까 옷이 닳았더라”

여동활 2011. 11. 12. 23:54

가까이서 보니까 옷이 닳았더라”

구봉서, 배삼룡, 김희갑, 남보원….

정치인이 아니다. 아무런 정치적 감정을 가질 까닭이 없는 자유 시민이다. 그리고 대중에게 낯이 익은 공인이다.

“한번은 (박정희) 대통령이 불러서 갔지 뭐야. 가까이서 보니까 옷이 닳았더라구. 참 검소하구나 싶었어.”(조선일보 2008-07-25)

구봉서의 말이다.

똑똑한 체하고 잘난 체하는 사람들이 코미디가 저질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코미디언 그들만은 서민의 친구였다.

구봉서는 지난 10월 31일 창사 50주년 특집 라디오 프로그램 ‘MBC와 나’에 출연해 박 대통령과 만난 일화를 또 공개했다. 당시 문공부장관의 지시로 TV 코미디 프로그램이 졸지에 없어지자, 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 “택시가 사람 하나 치었다고 택시를 없앱니까?”라고 읍소했다고 말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누가 없애라고 했어요?”라고 묻고는 “알았다”고 했는데, 구봉서는 이 일이 있은 후 곧바로 코미디 프로그램이 부활됐다고 전했다.

◇ 1965년 5월 31일 파월장병 위문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연예인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했다. 우측부터 위키리, 후라이보이 곽규석, 구봉서, 가수 박재란, 이미자씨 등. ⓒ 정부기록사진집


“국수 삶아줘서 먹었다”

MBC-TV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구봉서의 명콤비였던 배삼룡. 코미디 전성기에 방송국들이 배삼룡을 잡기 위해 대낮 납치 소동을 벌였는데 이때 박정희 대통령이 “배삼룡이 왜 안 나오느냐”고 물어봤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배삼룡은 이렇게 말했다.

“박 대통령이 (나를) 참 좋아하셔서 가끔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해서 만나뵈었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거냐?’,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것이 뭐냐?’는 등의 질문을 했고, 소박하게도 소면(국수)같은 것을 맛있게 잘 먹는다고 해서 국수를 삶아주곤 했다.”(노컷뉴스 2006-07-29)

성대모사로 유명했던 남보원은 박 대통령 목소리를 방송에서 똑같이 흉내냈다가 대통령 앞에 불려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발표한 걸 내가 기독교방송에서 흉내를 낸 거야. 생방송으로. 그랬더니 사회 보던 구봉서랑 후라이보이랑 질렸지. 큰일 났다면서. 기자들도 나한테 ‘이제 당신은 죽었다’고 하더라고. 박 대통령을 안양에서 만났는데 나한테 그러시더라고. ‘자네가 내 흉내를 냈다면서. 감히 누가 내 흉내를 내’ 그러시는 거야. 그래서 ‘죄송합니다’ 그랬지. 근데 ‘잘했어, 잘했어’ 그러시더니 한번 해보라는 거야. 그래서 했더니 ‘잘하는구먼’ 그러시면서 오히려 술을 한잔 따라주시더라고.”(신동아 2011년 2월호)

위의 ‘MBC와 나’ 방송에 출연했던 구봉서는 배삼룡이 말년에 “2~3년 동안 병원비가 없어 퇴원도 못하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오늘의 후배 연예인들이야 재주껏 큰돈을 벌기도 하지만, 그들의 시절엔 그게 불가능했다. 국가가 어렵고 국민이 어려웠다.

잘살아 보자고 허리띠 조이고 땀 흘리던 시절, 그들은 힘들게 사는 서민에게 즐거움을 주고 위안을 준 ‘웃음의 전도사’들이었다.

◇ 1961년 10월 14일 ‘한미(韓美)합동 교통정리 경기대회’에 나선 김희갑씨. ⓒ 정부기록사진집


국민 영화 ‘팔도강산’

“박정희 대통령의 제51회 생신을 축하하는 만찬회가 30일 저녁 영빈관에서 성황. …박 대통령은 시종 밝은 빛으로 환담. 축가를 노래한 어린이합창단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씩씩하고 착하게 자라라고 당부. 이날 밤 코미디언 김희갑 주연의 ‘속ㆍ팔도강산’이 여흥 프로로 등장, 한바탕 웃음 만개(滿開).”(경향신문 1968-10-01)

국책 홍보물로 보기 드물게 성공한 ‘팔도강산’ 시리즈. 1967년에 처음 나와 75년까지 5편의 영화와 TV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김희갑, 황정순 부부가 경제발전상을 배경으로 전국 각지에 사는 자식들을 찾아가는 ‘행복 여행’을 기본 줄거리로 깔아놓고 있다.

정부 홍보영상물이 대개 딱딱하고 재미ㆍ감동과는 거리가 멀게 마련이건만 ‘팔도강산’ 시리즈가 대중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홈코미디의 대중성을 곁들였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잘살아 보자는 국민적 열망이 뜨거웠고, ‘하면 된다’는 자부심, 꿈, 희망의 컨센서스가 대중을 사로잡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평가일 듯.

‘팔도강산’ 시리즈로 인기와 명성을 함께 얻은 김희갑은 박 대통령과 여흥 자리에서 어깨춤을 함께 출 정도로 가까웠다고 전한다.

“서거 소식에 미국 공연장 울음바다”

대통령 권위가 시퍼렇게 국가사회를 지배하던 그 시절, 서민의 친구였던 코미디언들이 ‘서민 대통령’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이따금 전하고 있음은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대통령이 창졸간에 역사 속으로 모습을 감추게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코미디언 허참은 미국 위문공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은 교민들이 눈물바다를 이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고(MBC-TV 황금어장-무릎팍도사 2008-03-12), 국민MC 송해는 박 대통령에 대한 매도가 극성을 부리고, 추도식조차 금지당하고 있던 1980년대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국립묘지를 찾아 박 대통령 묘소에 참배했다(동아일보 1983-10-26).

정치 현실과 거리가 먼 이들이 박 대통령과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은 왜일까. ‘웃음의 사나이’들은 서민의 친구였고, 서민 사랑이 남달랐던 박 대통령과 친서민적 기질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 1972년 11월 28일 문공부에서 마련한 ‘예술인을 위한 만찬’의 참석자들. 우측부터 구봉서, 양석천, 한 사람 건너 송해씨 등. ⓒ 정부기록사진집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아는 진정한 ‘광대’

웃음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은 서민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면서 나 혼자 잘먹고 잘살자가 아니라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모범을 보였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연예계가 대마초사건으로 크게 술렁거릴 때도 거기게 연루된 코미디언들은 없었다.

‘웃음의 사나이’들은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성금도 내고, 거리에서 교통정리ㆍ구두닦이도 했으며 장병 위문공연ㆍ새마을 공연 등 공익에 봉사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모범을 보였다.

특히 구봉서의 경우는 6.25전쟁 전후 세번이나 입대해서 군 연예대에 복무한 진기록을 갖고 있어 국가보훈처가 그의 공로를 평가해 국가유공자 증서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진정한 ‘광대’의 모습이 그러했던 것이다.

글/김인만 작가

----------------------------------------------------------------------

이 글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모임(http://www.516.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