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박정희대통령처럼 경부고속도로 같은 미래 내다보는 혜안이 없다

여동활 2011. 11. 2. 10:27

경부고속도로 같은 미래 내다보는 혜안이 없다
복지는 권리가 아니다…국민을 잘못된 길로 끌고가는 한국 정치
2011-10-30 송원근(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이다.
이 말을 듣고 박정희 시대가 떠오른 연유는 무엇일까? 박정희 시대를 개발독재 시대라고들 한다.

박 시장의 말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그 시대는 소수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정권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시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개발독재시대 대한민국은 달콤한 시혜보다는 성장을 통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했다.

만약 이 시기에 복지가 권리라는 말이 실현되었다면 지금 한국경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개발독재 시대 정부가 추진했던 대표적 사업 중 하나가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는 야당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반대했다.

“재정에 큰 부담을 준다” “지역편중 정책이다” “고속도로 건설은 부유층만을 위한 것이다”

 등의 반대 이유는 다 그럴듯했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추진되었고 이후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가능케 한

국토의 대동맥이 되었다.

야당과 국민, 심지어 정부 내에서 반대도 심했던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대중의 요구가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 시스템 하에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시는 빈곤의 문제가 훨씬 심각했고,

국민의 대다수는 농민이었다.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코로나 승용차와 그 옆을 걷는 시골 할아버지(1970년 7월).

박정희 시대는 달콤한 선심성 정책이 없어 인기 없고 반대가 심했어도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미래의 길’을 깔아놓았다. ⓒ 자료 사진

따라서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같이 미래를 위한 정책보다는 빈곤층에 대한 분배,

정부수매 가격 인상과 같은 곳에 재정을 우선 배정하는 것이 훨씬 더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만약 경부고속도로 건설처럼 인기 없는 정책 대신 대중의 요구에 부응해 선심성 정책을 남발했다면

 한국은 아르헨티나나 필리핀의 전철을 밟지 않았을까?

소득 수준이 높아진 이제는 복지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런 의견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서 그리 낯설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우리 정치권의 화두는 복지다.

야권에서는 보편적 복지를, 여권에서도 선진복지 국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내용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정치권은 경쟁적으로 복지정책을 제시하고 있는 양상이다.

문제는 정치권의 이런 양상이 현재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선진국들의 경험에서

전혀 교훈을 얻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리스가 1980년대부터 연금, 의료 등의 부문에서 보편적 복지를 확대해 왔고

이것이 방만한 공공 부문과 더불어 지속 가능하지 않은 재정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럽에 비해 복지 혜택과 지출 규모가 크게 떨어지는 미국도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복지 지출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어 기존 복지 혜택을 축소하지 않고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

물론 스웨덴 같은 나라는 높은 복지 지출에도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스웨덴의 높은 과세와 복지 지출은 근로와 저축의 유인을 감소시켜 성장의 정체로 이어졌고,

성장 정체와 높은 복지 지출은 1990년대 심각한 재정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이후 스웨덴은 강력한 재정 준칙과 연금 개혁으로 정부 지출을 감축했고 부유세 폐지 등

감세정책으로 성장을 촉진시켜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였으며 감세정책 지속과 공공 부문의 민영화로

 복지국가에서 서서히 탈피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예에서 보듯 대규모 지출을 요하는 복지정책은 지출의 경직성과 고령화 등으로

 재정 건전성을 크게 악화시킨다.

문제는 한번 혜택이 주어지면 복지는 권리가 되어 재정 악화의 문제가 발생해도 개혁이 어렵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복지는 한번 주어지면 권리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권은 국민들을 선진국들이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에게 박정희 시대와 같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