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종학계 거목 聖木 박교수 박사 |
- 에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유토피아 열매를 쏘는 과학자 !과학대국 코리아의 힘 ! |
팍스월드, 2009-11-04 오후 08: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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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한평생을 유전자원과 생명과학을 기초로 하는 유실수 연구에 몸 바쳐온 聖木 박교수박사. 이제 그는 세계적인 생명공학 분자육종학의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그동안 내놓은 연구성과는 과실을 맺는 시기를 단축하는 축시법을 비롯해 줄기세포 유전자 복제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화를 가능하게한 극성교정분화학설, 복합다원적 분자육종기술인 멀티게놈 육종학 창시, 신품종인 유토피아 나무 개발 등은 이제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멀티게놈 육종법으로 생산력을 수백배 높이면 자연자원 고갈, 지구환경 파괴, 자연 대재앙의 지구 3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구 확장 이론’도 발표, 큰 성과을 거두었다. 그의 연구성과는 60, 70년대를 거치면서 활발히 적용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과학대국 코리아를 만들어가는 데 초석이 되고 있는 셈이다. 역사를 움직인 육종학자 탄생 배경에는 박교수 박사의 집념, 열정, 통찰력을 가늠할 수 있는 놀라운 사실들이 숨어 있다. 그가 지금은 과학 대국 한국이라는 배를 이끌고 블루오션을 항해하고 있지만 오늘의 ‘나무박사 박교수’가 가능했던 초기의 스토리는 한국이 써내려 가는 과학대국 코리아의 역사 중에 백미가 아닐까 싶다. 그 속엔 반복된 ‘배짱과 진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그의 이름이 더욱 알려진 것은 지구의 3대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자원고갈, 자연환경 파괴와 오염, 자연 대재앙의 극복을 위해 1천 년 수명의 ‘유토피아나무’라는 신수종(新樹種)을 개발하면서부터. 유토피아나무는 현재 경기도 양평에 있는 섬 파랑도에서 가꿔지고 있다. 이른바 ‘팍-유토피아 트리(Park-utopia Tree)’로 명명된 이 나무는 ‘크리아일리노엔시스(Cryillinoensis)’라는 학명으로 불린다. 약 2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희귀종으로 직경 350cm, 높이 38~58m에 수명은 1천 년을 헤아리는 장수 거대목이다. 바이오 에너지를 비롯해 성인병 원인 제거, 피부 노화 방지 및 회춘, 면역 및 신경 강화 등과 관련된 물질을 만들어내는 ‘유토피아나무’는 토양 정화 및 산소 배출 기능이 탁월하고, 견과류인 열매는 혈액순환 기능 강화 및 심장 질환 예방과 치료 기능이 있다. 50여 종의 서로 다른 열매를 마음대로 열리게 해 화장품이나 식품, 의약품 원료로도 사용한다. 이런 신비한 나무의 복원 및 보급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의 ‘멀티게놈 육종법’을 비롯한 줄기세포 유전자 복제 기술이다. 파랑도에서 쏘아 올린 희망의 불씨 학문적 업적으로 본다면 박교수 박사는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국내 몇 안 되는 세계적 석학으로 꼽힌다. ‘인간 승리’, ‘절망은 없다’, ‘종자의 기적’ 등의 TV 프로그램으로 소개된 바 있으며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유명 인사다. 1974년 일본국 제1호 외국인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72년 이미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고, 2001년 홍조근정훈장을, 2005년엔 ‘21세기 한국인상’을, 2006년 4월에는 제8회 장영실과학문화상과 무궁화대상을 수상하고 ‘인간 상록수’로 추대되기도 했다. 아울러 동국대학교 산림자원학과 교수, 생명과학연구소 소장, 국무총리실 경제과학심의위원회 차관급 위원, 총무처 기술고등고시위원, 국회 중앙위원회 과학기술 분야 최첨단 분과위원장, 중앙농업산학협동평가 전문 교수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유실수과학원장, 월드유토피아 아카데미 총재, 중국 과학기술대학 석좌교수로 활동 중이다. “나는 우리 국민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다면 충분히 1등 국민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국민의 저력은 대단합니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고 근검절약하며 협동정신이 투철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과학적인 인프라가 끼치는 영향이 지대할 것인 바, 그동안 내가 비축해온 여러 가지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서 과학 강국의 초석을 다지는 데 열과 성을 다할 것입니다.” 박교수박사의 강한 의지다. 주변을 보면 간혹 남들이 할 수 없었던 일, 하고 싶어도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던 일을 해내는 사람이 있다. 흔한 경우가 아니기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세상 사람들은 곧잘 ‘운이 좋다’는 표현으로 그를 치부한다. 굳이 폄훼할 이유는 없지만 내 능력 밖의 일이기도 하기에 ‘나보다 상황이 좀 좋았을 뿐’임을 적당히 인정하는 것으로 위안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면 ‘운’보다는 분명 남다른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흔히 ‘판세를 읽는다’고 하듯 세상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방향을 제시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과를 얻는 사람이다. 현상을 보는 눈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나라 과학자중에 이런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학자가 한 명 있다. 육종학자의 대가 박교수 박사이다. 한평생을 유전자원과 생명과학을 기초로 하는 유실수 연구에 몸 바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생명공학 분자육종학의 권위자 박교수 박사. "'솔라바이오테크사이언스'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아 산소권과 UPOV 지적재산권을 확보함으로써 우리나라가 바이오에너지의 기술주도국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역사를 써내려가는 육종학자 그는 1960년대부터 축시지공법, 역위접목법, 극성 교정분화설, 난쟁이 품종 육종법, 줄기세포 유전자 복제기술, 멀티게놈 - 멜티 압축경영법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연구 성과들을 내놓았다. 특히 유근역위접목법의 경우 미국과 캐나다 등의 세계적인 전문지에 소개되는 등 국제적으로 화제가 됐다. 육종연구의 신기원으로 평가받는 이 접목법을 활용하면, 결실에 십수 년이 필요한 밤나무가 1년 만에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또 호두는 20년에서 3년, 은행은 35년에서 4년, 잣은 30년에서 3년으로 결실 시기를 각각 단축시킨다. 박교수 박사는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와 유전자 복제 기술을 이미 40년 전에 실용화한 인물로 꼽힌다. 1960년대 초 발표한 ‘극성 교정분화설’이 바로 그것. 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새마을운동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핵심 인물이다. 정신문화연구원 창설과 새마을금고 탄생도 박교수 박사의 아이디어였다. 그가 설립한 유실수과학원의 최대 후원자도 박 전 대통령이었고, IMF 때는 외국 투기자본 공격에 대한 국부유출 방어망 구축에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온 그의 노력 끝에 70 평생 나무와 함께 외길 인생을 걸어온 그를 가리켜 육종 학계의 산증인이라고 한다. 박교수 박사는 올해 70을 훌쩍 넘긴 나이다. 그러나 그를 만나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유행어를 실감케 한다. 실제 모습도 나이를 짐작키 어려울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나서기 싫어하고 돈 욕심도 없이, 내 하는 일에만 전념해 왔다”고 자신의 삶을 요약하는 그. 그가 가장 기쁨을 느끼는 때는 자연과 함께할 때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그곳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의 심정을 어떨까? 두려움과 호기심, 그리고 뿌듯함... 여러 감정이 교차할 것이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미지의 과학기술에 도전하는 과학자의 심정도 그러하리라. 박교수 박사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모두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어렵지만 그만큼 자부심도 크다. 37.5도 체온을 가진 남자 그를 가리켜 주변에서는 일벌레라고 일컫는다. 목표를 세우면 쉬지 않고 정열적으로 일하는 성격 때문이다. 밤을 새워서라도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집념이 강하다. 공직에 있을 때나, 교단에 있을 때나, 연구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지금이나 일요일이 따로 없이 일에 빠져 있다. 박교수 박사가 커다란 보람으로 여기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 속에 새마을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보릿고개를 해결하고 민둥산을 가꾸는 데 일조한 것. 녹색혁명의 주역으로서 자신의 역할이 국가적인 기여는 물론 나아가서 지구촌 환경 위기나 자원 고갈 문제 해결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에도 긍지를 느끼고 있다. 박교수 박사의 체온은 보통사람 보다 살짝 높은 37.5도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생명존중의 마음이 그렇다는 말이다. 지구 환경 3대 위기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남들 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함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진정한 과학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박교수 박사의 37.5도 R&D스토리에는 특별함이 있다. 높다란 밤나무를 작게 만들어서 누구든 쉽게 실컷 따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수확까지 십 수 년 걸리는 밤나무를 몇 년 안에 다 키워서 큰 열매를 맺도록 하는 일 이런 꿈을 꾸던 소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이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고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소년의 꿈이 하나씩 이루어졌다. 박정희정부는 가난한 농어촌의 소득증대방안으로 신품종 밤나무를 채택하게 됐고 1960년대 농가의 소득증가에 크게 이바지 하면서 보릿고개를 해결하는 디딤돌이 됐다. 그러니까 새마을운동이라는 새바람을 일으키고 민둥산에 녹색혁명을 일으킨 바탕에는 박교수라는 인물이 있었던 것이다. 1970년대에는 밤나무의 수정 개발로 식량부족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이젠 유토피아나무의 품종 개발로 한 나무에 여러 종류의 열매가 열리도록하는 나무를 연구하면서 식량난 같은 위기를 극복하는 연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유토피아 나무, 유토피아 숲을 가꾸면서 어린 시절의 소중한 꿈들을 현실 속에 실현해온 주인공, 바로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장인 박교수 박사이다. 유토피아 나무는 박 박사가 50여 년 전 미국 미시시피강 하류 일대에 번식하는 ‘크리아일리노엔시스’ 나무를 국내에 들여와 품종 연구를 한 끝에 우리 기후와 풍토에 알맞게 개발한 신품종이다.‘유토피아 나무’는 높이 40~60m에 직경 3.5m, 수명 1000년인 장수 거대목으로 뿌리가 깊어 자연대재앙의 방재기능이 탁월하고 온실가스 흡수와 산소방출력 등의 환경 정화 기능도 뛰어나다. 유토피아 나무는 감, 밤 등 50여 종의 다양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분자육종이 가능해 의약품이나 화장품, 바이오에너지, 식품자원 등의 원료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게 박 원장의 설명이다. 유토피아 나무는 국제식물신품종육종가보호연맹(UPOV)에 특허권보호를 신청한 상태다. 키 작은 슈퍼 유실수에 꿈을 담다 “금강물이 굽이 쳐 돌아가는 길에 삼각산이 12개가 쌓여있고 수천만 평이 금강 변에 비옥한 땅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아름드리 밤나무, 대추나무, 호두나무, 감나무가 가득 하늘을 찔렀어요. 위에 보면 하늘이 안보여요. 회색 가지밖에 안보입니다. 겨울에는... 그런 말도 못하는 경관에서 살았지요.” 박교수 박사는 1936년 충청남도 옥천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한국전쟁 와중에 사경을 헤맨 아픈 기억과 함께 건강을 회복하면서 다시 찾은 인생은 보릿고개를 넘기고 굶주림 없는 세상을 만드는 육종학자가 되겠다는 꿈으로 바꾼 것이다. “외할머니가 유진갑 여사인데 유성룡씨 후손이예요. 충북 청원군 현도면에 가면 노솔리라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한학자들이 많이 배출이 되고 그런 곳인데 외할머니가 옥천으로 시집을 오셨어요. 시골에다가 서당을 만들어줬어요. 저를 위해서, 그래서 3살 때부터 저녁이면 싸릿가지로 종아리 맞아가면서 한학을 배웠어요.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다 띄었어요. 그러다보니 동양철학이라는 것이 환하게 보입디다. 세상이. 마음을 읽는 투시력을 갖게 된것같았어요. 그렇게 해서 학교를 다녔는데 공부할게 없어요.(하하) 안호상 박사가 초대 문교부장관인데 당시 월반 제도가 있어서 월반을 했어요.” 그가 유실수를 육종하는 데 몰두하게 된 계기는 열두 살 때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 비롯되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트럭에 치여 의식을 잃었다 1주일 만에야 깨어났다. 10개의 트럭 바퀴가 짓누르고 간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왼쪽 대퇴부는 부러졌고 뼈가 으스러져 있었다. “그때는 갓 초등학교를 마치고 나면 중학교 6년제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일정시대에 농업중학교 하나밖에 안만들었어요. 그 당시 6년제 중학교를 간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였습니다. 엄청나게 어려웠지요. 지금의 대학가는거랑 똑같습니다. 3수, 4수씩 했으니까요. 그래서 중학교를 들어갔는데 6.25사변이 났어요. 금강물이 흐르는 절벽에, 일정시대에 경부 국도를 만든 것이 차 하나밖에 안되요. 그런데 학교 갔다가 집에 오려고 보니까 미국의 군인 트럭이 미공군을 실어 출격하려고 올라가더라구요. 수원쪽으로. 그런데 마지막에 전차가 있을때 급커브에서 지나가는데 산 안쪽으로 풀을 잡고 메달려 있었어요. 그런데 이것이 뽑히면서 진공상태가 되면서 빨려 들어갔어요. 벌렁 넘어진거죠. 찻길로. 그러니까 뒤에 오는 차가 지나가 버렸어요. 완전히 죽은 거지요. 왼쪽다리 가운데가 뼈가 부러져 버리고 오른쪽 다리 무릎있는데가 살이 푹 패어져 나가버리고. 덜렁덜렁하고. 뇌출혈이 되가지고 완전 죽은 상태였다고 해요. 일주일이 지난 것도 모르고 눈을 떠보니까 사람들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어요. 대전 도립병원 원장과 의사들이 내려다보더라구요. 그런데 다리를 보니까 왼쪽 부러진 다리가 전부 가지색이였어요. 팔뚝같이 굵은 주사기로 계속 죽은 피를 뽑아내더라구요. 저쪽가서 얘기들을 하더니, 자르자는 얘긴가봐... 그래서 지금도 한쪽다리가 5미리 정도가 짧아요.” 의사로부터 살기 위해서는 썩어 들어가는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죽기를 작정하고 단식했다. 며칠을 굶었을까? 다시 병원 침대에서 깨어났을 때 의사는 구세주 같은 처방을 냈다. “그래서 어쨌든 살아났는데, 어쨌든 죽을려고 했는데 죽을수도 없고 굶어서 죽어야겠다고 해서 굶었어요. 팔다리는 깁스해서 묶여있는 상태에서, 또 2번째 쇼크 상태로 들어갔어요. 제가 인생을 3번 산거에요. 3번 난거고. 어머니한테 나고, 쇼크 상태로 일주일 만에 살아나고 죽을려고 굶었다가 또 살아난거죠. 살아났죠. 또 살아났죠. 난 염라대왕도 만나봤어요.(하하) 그때에 프랭클린이 발견한 페니실린을 호두에 기름에 용해시킨 오일 페니실린이 처음 나왔어요. 6.25사변이 나서 미군을 위해서 이걸 구해왔더라구요. 의사가 나보고 이거 한방이면 끝이 아니고 살릴 수 있으니 나를 믿고 따르거라. 잘 먹어야 빨리 다리가 아물지 그렇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그거 가지고 살아난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다리 잘렸습니다. 그래서 과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때에 나는 무얼 할 것인가 앞으로 살아나면 굶어죽는 사람을 위해 우장춘박사같이, 그분은 채소육종을 했지만, 나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 산을 뒤덥는데에 작은 열매를 빨리 맺게 하는 유실수를 개발해서 이것을 심게 된다면 최소한도 기아현상은 해방이 될거다.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두 번째는 돈 없고 어려운 사람들, 내가 돈 받을거 뭐 있느냐, 의사가 되가지고 불쌍한 사람들 구원하는 쪽으로 평생을 살거다하는 두 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두 가지만을 위해서 연구하고 공부를 해서 그런 일을 하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하루에도 하나님한테 매일 한 번씩 기도를 했어요. 이왕 내가 죽지 않고 내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고 일할 수만 있게 된다면 내가 그렇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그런 신앙심이 스며들더라고, 종교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가장 어려울 때 인간의 무능함, 인간의 한계점에서 극복하기 위한 희망이 종교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인생의 원동력은 고향이다 죽음에서 살아난 순간 그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자신을 살려낸 의사처럼 다른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칠것인가? 아니면 가난 때문에 굶어 죽는 사람들을 위해 우장춘 박사 같은 학자가 되어 그들을 기아에서 구할 것인가?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4만석 소작을 받는 농지를 충북 보은군, 청원군 등지의 박호산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호산서원(壺山書院)의 농지를 소유했던 영해 박씨의 후손인 우리 집안이 해방 후 토지개혁으로 하루아침에 몰락했어요. 그때 닥쳐온 지독한 가난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우리 가족도 그랬지만 주변에 영양실조로 부황이 들어 누렇게 뜬 얼굴로 죽어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죠.” 이조시대 정일품 벼슬인 태사(太師)를 지내신 호산(壺山) 할아버지께서 호산서원(壺山書院)을 운영하신 덕분에 어릴 적부터 한학을 공부해온 수재형(秀才型)으로 머리가 영특한 박 박사는 박제상의 후손 영해 박씨의 집안이다. 부지런한 성미로 야생마처럼 동네를 활보하던 열두 살 소년의 가슴에 평생 뿌리내릴 씨앗은 이때 뿌려졌다. 당시 산에는 밤나무와 호두나무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고 한다. 또 집집이 감나무나 대추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이 열매를 팔아 버는 돈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사람들이 산을 통째로 입도선매하는 바람에 돈은 전부 그들 몫이었다. 어린 박교수의 꿈은 이런 것이었다. 국토의 70%에 이르는 산에 아름드리 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따면, 적어도 굶어 죽을 가난은 면하지 않을까? 이왕이면 고추나무처럼 나무 키를 작게 하고 총총이 심는 초밀식방법(超密植栽培)으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하면 누구라도 쉽게 많은 과일을 배불리 따먹을 수 있지 않을까? 옥천농업중학교에 다니던 그는 그런 꿈을 실현할 기회를 우연하게 잡을 수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원예학을 가르치던 교수가 한국전쟁 통에 피난 와 있었는데, 그로부터 접목법을 배웠던 것이다. 그 후 친구집 복숭아 과수원 2,000평을 연구소 삼아 접붙이기에 나선 그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감나무 한 그루에 여러 종류의 감이 열리게 하는 ‘아접’에도 성공하자 그는 고향마을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충북대 농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온기도 없는 자취방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공부에 매달렸다. 이루고자 하는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었기에 배고팠지만 그 시절은 즐겁고 행복했다고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연구에 아무도 선뜻 자금지원을 하지 않았고 박교수는 불효자식 소리까지 들으면서 고향에 있는 수 십억원의 선산까지 팔아 연구자금을 동원했다. 졸업 후 모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은 후, 연구시설이 세계적이고 연구위원 대우가 국립대학 보다 수배에 가까운 특별대우를 하는 농촌진흥청 임목육종연구소(현재는 산림청 산림과학원 내 임목 육종 연구소)에 근무하게 되었고, 근무할 당시에 그는 극심한 견제와 질시를 받았다. 기능성이 있는 특용수와 유실수를 연구하겠다고 연구팀장으로 들어갔는데 수십 개 연구팀 전부를 특정 명문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텃세와 따돌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연구비를 타는 방법조차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만 2년이 지나서야 연구소 생리를 터득했고, 어릴 때부터 희망하던 ‘고추나무 키만 한 유실수’에 맞먹는 ‘난쟁이 나무’를 개발했다. 이를 필두로 수많은 연구실적을 쏟아내며 입지를 다져 나갔다. 이 시기 그의 연구가 새마을운동과 연결된 것이었다. 이 때 과일열매 맺는 시기를 단축시키는 축시법을 발명시켜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다. 줄기세포의 유전자 복제기술과 밤나무 신품종을 키우는 접목기술로 그는 살림녹화와 보릿고개를 이겨내는 데에 그는 큰 몫을 담당했다. 그의 머릿속은 마법의 상자 그의 머릿속은 마법의 상자와 같다. 축시법? 줄기세포? 극성? 세포화학? 조직화학? 해부학? 발생학? 생화학? 유전화학? 분자생물학? 양자생물물리화학? 식물번식학? 유전육종학? 세포레벨육종? 분자육종 및 유전자육종? 특수 식물번식학 및 새로운 접목법 등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박교수 박사의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다. 찬사와 존경, 명성, 적지 않은 돈을 버는 잘나가는 박사, 그리고 60년대 그의 연구는 세계 육종가 보호연맹의 UPOV라고 하는 신품종 육종의 특허와 줄기세포 이용, 유전자 복제 기술을 이용하여 내충성 신품종 육성 등 지적 산업시대를 이끈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수십 년간 명예와 돈과 행운을 외면한 채 이들을 모두 다 새마을 운동에 환원시킨 바보 중의 큰 바보였다고 한다. 어느 동료 교수는 그가 안 보이는 곳에서 Dr.박교수는 7부도 못되는 덜 떨어진 사람 같다는 귀띔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반면 초대 김영진 산림청장과 조한욱 산림차장은 대단히 현명하고 책무에 열적인 분들이었다. 그리고 초대 농촌 진흥청장으로서 그리고 그 당시 농촌진흥청 온 산하 임목육종연구소(현 산림청 산하) 창시 및 고문직 겸임 현진규 박사는 매우 아끼고 뜨거운 사랑으로 감싸주며 박교수 박사를 전격 후원했다. 위 세 분은 큰 꿈을 그리며 연구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는 오직 애국자로서 책무와 헌신과 봉사정신으로 무장한 보기 드문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본다. 특히 현진규 박사는 80세가 넘어 운명하는 날까지 연구실 속에 묻혀 살며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박교수에게 매년 연하장과 격려편지, 그리고 신앙심이 두터워「다락방」이라는 신앙서적을 매월 보내주신 잊지못할 석학 대학자였다고 회고했다. 1975년도에는 유럽과 북미 등 선진국들의 많은 학회에서는 거대목의 장수화(巨大木長壽化) 방법으로 늙고 썩고 죽어가는 유서 깊은 문화지역 등의 귀중한 나무나 유실수 및 과수 등의「거목장수유전자 복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 국제 학회에서는 .박교수 박사의 줄기세포 유전자복제 기술 이용으로 단번에 이 문제가 해결되는 등 구세주가 찾아들었다고 환호성이 울렸다. 미해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생태학 및 원예학, 유전학, 육종학계, 생리학계 등의 난제였던 늙고 병든 다양한 나무들의 치료방법과 이들 우수한 유전자 복제품종 보존과 우수유전자 유전자원을 잃고 있었던 육종용 유전자 확보를 위하여 고심하던 중 학계에서는 60년대 초에 이미 개발된 줄기세포의 유약성(juvenility)과 전능성(全能性/totipotent)을 활용한 박교수 박사의 탁월하고 심오한 원인을 과학적인 규명과 그 해결 치료 방법의 탁월하고 뛰어난 바이오테크 기술개발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단 하나밖에 없는 유전자원 박 박사는 1960년대부터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을 이야기했던 과학자다. 그의 예측이 현실화되는 지금 박 박사의 ‘유토피아’ 숲 건설의 성과는 그를 지켜야하는 진정한 이유다. 파랑도 섬에는 박교수 박사가 평생동안 연구한 나무 육종학 자료를 토대로 '멀티게놈 육종'에 성공, 다기능 식물 '유토피아'가 자라고 있다. 파랑도에 다시 자리 잡은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은 1960년 박교수 박사에 의하여 경기도 수원에 처음 설립되었다. 그 후, 1965년도에 박교수 박사의 연구의 탁월성과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감화되어 박정희 대통령은 적극 후원했다. 즉, 이 연구원의 최고 후원자는 고 박정희 대통령. 연구기관이라면 국가연구소가 전부였던 시절,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는 민간 연구소가 절실하며 무엇보다 농업과 산림에 관심이 많았던 박 대통령은 이 연구원을 전격 후원했다. 유실수과학원은 민간 연구소이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중앙정부정책수행연구기관으로 설립되어 ‘재특(재정자금특별회계)자금에 의한 15년 상환’이라는 파격적인 융자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이 연구원에서는 유실수와 특수 품종의 원종을 세계 각국 대학 및 전문 연구기관에서 도입해 재배하고 유전자은행을 만들어 신품종 육종 연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40여년의 세월동안 멀티게놈육종학을 창시하고 신품종인 유토피아나무를 개발했다. 박 박사는 미국 미시시피강 하류 일대에서 이 나무를 발견해 지난 50여 년 동안 계속 품종을 개량해왔다. 유토피아 품종은 지구 3대 위기 구원의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요 이들 치료 기구와 수목Dr.이며, 줄기세포 접목법은 지구3대 위기 극복의 유토피아 나무 등 거대장수목의 유전자복제 기술로 미래 지구환경의 대체할 준비가 된 유전자은행이요 마술적인 타개 대책이다. 2만 년 전 지구가 빙하기에서 벗어나면서 육지의 판(板)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때 이 지역에 난대성 식물이 뿌리를 내렸다. 그는 원래 열대성이던 이 식물이 지구 북쪽으로 퍼져나간 사실을 처음 알아내고 변이품종을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아냈다. 그 후 50여 년 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복합 다원적 다기능 신품종으로 육종한 것이 ‘유토피아’라는 설명이다. 이 이름은 그가 지상낙원(地上樂園)을 그리며 직접 붙인 것이다. 이 나무는 거대 장수목(巨大 長壽木)의 강인한 유전적 특성을 지니어 가혹한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명력으로 차세대 고즈넉한 문화지역 보호수로서도 손색이 없는 장수거목 유전자복제에 의해 급속한 지구 변화, 병충해 등에 버틸 튼튼한 나무로 다 자라면 직경 3.5m, 키는 38∼58m에 이르는 거대목이 된다.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내뿜는 탄소동화작용과 물을 머금는 능력, 토양 정화 기능이 다른 나무들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한다. 또 한번 심으면 1,000년 이상 건재하며, 여기서 열리는 열매는 특히 혈액순환 기능강화와 심장질환 예방과 치료 기능을 갖는 특수 기능성분이 있고, 또한 피부 노화 방지와 회춘, 항생제 역할 등 면역계와 신경계 강화뿐만 아니라 필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필수 지방산·탄수화물 등 각종 영양소도 풍부하다고 한다. 특히 지방 덩어리와 콜레스테롤을 녹여주는 기능이 있어 업계에 비상이 걸린 것도 사실 보도하기엔 아주 조심스럽다. 그 맛 또한 달면서 고소함이 듬뿍 더욱이 중독성이 있어 맛에 푹 빠지는 신비한 열매이다. “세계적으로 단 하나밖에 없는 특수한 유전자를 가진 유전자원이 여기 파랑도에 숨겨져 있어요. 그리고 섬이기 때문에 누가 가져갈 수가 없어요. 가장 중요한 게 유전자원을 지킨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섬을 선택했습니다.” 유토피아 나무는 천년을 산다. 이 나무는 직경이 3.5미터, 둘레가 12미터, 높이가 60미터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일 년에 열매가 누에꼬치처럼 생기는데 한 5백 가마 이상을 수확할 수있고, 이 열매는 말도 못하게 부드럽고, 달고, 향기롭고, 지구상에서 태양에너지를 가장 적은 분자로 묶어놓은 덩어리라고 한다.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여러 가지 기능을 갖는 이 나무의 열매만 있으면 에너지라던가, 식량이라던가, 화장품이라던가, 노화방지나, 회춘이나 심장강화나 심장과 혈관의 질환에 대한 성인병이라든가 이런 것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그러한 식품이라고 한다. “원래 미국 처음에, 미시시피강 하류에 프랑스 이민자들이 살았는데 그것을 죽을 쒀먹고 사는 것을 봤어요. 이게 워낙 크고 사람들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컸어요. 무서워서... 잎사귀가 쌓여서 스폰지 처럼 돼서 오도가도 못해요. 너무 무서운거야... 열매는 좋은데... 그 당시에도 15달러를 줬대요. 나무 하나 없애는데... 나무를 잘라냈어요. 그 사람들은, 열대림을... 그래서 길도 닦고 집도 짓고 했는데, 그러고 나니까 지금은 가물어 가는 거죠. 태풍이 불어 큰 재난이 오는 거죠. “ 세계천재과학자회의, 천재과학자 그랑프리 영예 지금 파랑도에선 슈퍼 유실수인 유토피아나무가 다양한 품종으로 자라고 있다. 하지만 연구가 결실을 보기까지 힘겨운 일들은 수도 없이 닥쳐왔다. 기후차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가는 나무가 수백만 그루에 달했다고 한다. 박 박사는 하지만 이 유토피아나무의 생산력을 수백배 높이면 자연자원의 고갈과 지구환경 파괴, 자연 대재앙같은 지구의 3대 위기를 극복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같은 그의 역할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박교수 박사는 2007년 세계천재과학자회의에서 주는 천재과학자 그랑프리 영예를 수상하기도 했다. 앞서 그는 지난 2001년 홍조근정훈장과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과학문화대상 과학본상, 제8회 장영실과학문화상 수상에 이어 '인간상록수'로 추대되기도 했다. 경기도 양평 파랑도에 가면 유토피아나무를 가꾸는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장 박교수 박사의 꿈과 열정이 녹아 내려온다. 과학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고 했던가. 어린 시절 보릿고개를 몸소 경험하면서 헐벗은 이 땅을 어떻게 하면 푸르게 할까를 고민했던 소년은 마침내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초록청명의 주역이 되었다. 70평생을 유전자 연구와 생명과학을 기초로 하는 육종학 연구에 헌신해 온 박교수 박사는 이제 무한 청정에너지를 실용화하는 일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토피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류의 풍요와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박교수 박사는 유토피아를 만드는 게 꿈이다. 하나하나의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 모든 나무들이 곧고 튼튼하게 성장해야 숲이 건강하고 멋이 더하다. 지역과 국가도 다름 아니다. 우리는 가끔 그 당연한 진리를 잊고 지낸다. 하지만 이미 지역에서는 이러한 진리에 맞춰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달라진 대한민국을 만든다. “모든 과학자의 목표는 진리 추구입니다. 그건 과학자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늘 진리가 무엇인지 파고듭니다. 어떻게 작동하고, 작동하는 원리는 무엇인지 찾는 것이 진리 추구입니다. 진리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그것을 과학자는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과학자가 진리를 밝혀내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최고의 과학을 연구할 수 없습니다.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나 식량, 에너지, 질병 등이 인류 공통의 문제로 부상을 하면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습니다. 흔히 '21세기의 국가경쟁력은 과학기술력'이라고 이야기 하는데요.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실험실 위주의 어려운 과학이 아닌 국민 생활에 가까이 다가서는 과학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고 합니다.“ 저서로는 「새마을운동과 그린혁명」이 있으며 문화공보부 국립영화제작소가 제작한 새마을 기술교육 영화 ‘축시지공법(縮時地空法)’도 그의 손을 통해 탄생했다. 여기에 ‘견과류 거대목 수확기’, ‘황금포도 꽃잎으로부터 천연 향료를 제조하는 방법’ 의 특허만도 10여 건에 이른다. 연구 외에도 박 박사의 활동 영역은 넓다. 한국 어머니 배구연맹 명예회장 등 각종 단체의 회장 직함만도 10여 개에 달한다. 최근엔 심양 농과대학교 중국 산림유전연구원의 원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서 중국 전역에서 그린혁명과 새마을운동 관련 강의를 펼치는 한편, 태국 방콕시와 각종 열대성 유실수 및 화훼작물 및 기능성 신품종 육종 연구에 관한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기독교선교단과 제휴해 이스라엘 키브스 그린산업 교육원을 통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일본과는 세계천재회의 석학들과 함께하는 그린혁명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UN 산하 세계대학생 평화봉사 사절단은 매년 파랑도를 방문하여 ‘세계환경포럼’ 교육에 임하고 있으며, 박교수 박사가 총재로 있는 월드유토피아 아카데미는 각종 NGO 단체와 그린혁명 추진을 위한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다. ‘월드팍 유토피아포럼’의 총재로서 세계적인 과학자들과 함께 지구 환경 3대 위기 해결을 위한 연구를 시작하며 박교수 박사는 양평의 파랑도를 연구의 메카로 설정했다. 필생의 숙원인 ‘지구의 3대 위기 해결’을 위한 연구에 여생을 바치겠다는 그는 “과거에는 국가경쟁력이 원심력(遠心力)에 의해 흩어졌다면 이제는 구심력(求心力)으로 집결시켜야 할 때이고, 그 과정에서 나는 ‘월드팍 유토피아포럼 & 프로젝트’를 통해 국가 발전에 기여 할 것”이라면서 오늘도 과학자로서 열정적인 행보를 늦추지 않고 있다. 박교수 박사는 유전자원과 생명공학을 기초로 하는 유실수 연구에 몸바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생명공학 분자육종학의 거목이다. 원로학자의 끝없는 열정, 70세 청년은 파랑도 10만평 동산에 유토피아를 심고 인생을 거머 쥐었다.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어느 한순간, 땅 위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우리 인간만이 이 같은 사물의 순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사물의 유한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 번뿐인 인생인 양 자기만의 것, 별나고 특별한 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기이하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항상 밝다. 얼굴엔 늘 웃음이 가득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그렇듯 즐거운 일만 있을 리는 없을 터인데, 그에게선 그늘진 표정을 보기가 쉽지 않다. 자연과 나무 환경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생명공학 분자육종학의 박사이다. “제 성격이 분명 낙천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해요. 하지만 제 자신은 스님 같은 스타일이라고 봅니다. 인생은 물론, 매사를 굉장히 신중하게 바라보고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연신 얼굴 가득 웃음이 넘쳐난다.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자신이 정한 길은 뒤돌아보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바로 나처럼 집념의 결과물이 신화처럼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웃음)” 그의 또 다른 도전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줄 수 있을 테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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