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976년 10월 20일 청와대 출입 기자단과 오찬

여동활 2010. 5. 13. 22:26

1976년 10월 20일 청와대 출입 기자단과 오찬

 
  중앙일보 梁泰朝(양태조) 기자의 파리특파원 발령 및 동양통신 葛天文(갈천문) 기자의 정치부장 승진 축하를 위해 마련된 자리.

  
  “통치에서 중요한 것은 養民과 敎民”
  
 
국산 야포의 조준경을 살펴보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양 기자의 특파원 전출을 축하합니다. 축배를 듭시다. 佛語(불어)는 할 줄 알겠지요? 근혜하고 불어로 말해 봐요.”
 

  ―대통령께서 프랑스 방문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초청이 와야 가지. 초청이 와도 못 가요. 파리는 사진으로 봐도 깨끗한 도시지.”

 
  ―방위산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탱크를 우리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소. 또 이와는 별도로 미군이 쓰던 M48 탱크에 105㎜ 포를 달고 있어요. 지금 ○○공장에서 일부 만들고 있는데 북괴가 가진 탱크는 문제도 안돼요. 독자적인 개발을 위해 서독의 기술을 도입하고 있는데 미국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막고 있소. 우리가 서독 기술을 도입하니까 이제 와서 M60 탱크를 주겠다고 합디다. 미국은 우리가 하면 못하게 하고 개발하면 주겠다고 심술을 부려요. 북괴는 현재 탱크를 1년에 40~60대 만드는 것 같소.”

 
  ―얼마 전에 프랑스 르몽드紙(지)와 기자회견을 했는데 어떠셨습니까.

 
  “그 친구(르몽드지 퐁텐 주필을 지칭) 만나보니 좀 좌경화한 지식인 같습디다. 서면 질문서를 낸 다음에 보충 질문을 하겠다고 해서 만나 주었더니 이것저것 막 물어봅디다.

 
  서면 질문에서도 아니꼬운 질문을 몇 가지 뺐어요. 첫째는 김일성과 만나지 않겠느냐는 것이고, 둘째는 북괴와 미국이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냐는 질문이에요. 밉광스러운 질문을 하더군.

 
  또 金大中(김대중) 사건의 상세한 경위를 설명해 달라고 해서 ‘그건 당신들이 더 잘 알지 않느냐? 구라파 신문에서도 1년 이상 보도했는데 잘 알고 있을 것 아니냐?’고 말하고 ‘내가 얘기해 주겠다’고 한 후 설명해 주었어요. 일본에 있는 김대중을 어느 단체가 서울로 데려왔는데 외국에서는 한국 정보기관이 했다는 것이고, 우리는 잘 모른다는 것이며, 이 문제로 인한 韓日(한일) 간의 문제는 일단락된 것이다’라고 설명했어요.

 
  퐁텐 주필은 무엇이든지 우리를 북괴 식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어요. TBC(당시의 동양방송)의 奉斗玩(봉두완)씨가 퐁텐을 데리고 지방시찰을 했어요. 도중에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 운동회를 보여 달라고 해서 가 보니 마침 점심시간이라 떡과 과자, 밥을 쌓아 놓고 먹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이거 내가 온다는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해 놓은 것 아니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봉두완씨가 화를 내면서 ‘여기에 오는 것은 당초 스케줄에도 없던 것인데 무슨 소리냐?’고 쏴붙였다고 해요.

 
  내가 퐁텐에게 ‘북한 사회가 어떻더냐?’고 물었더니, 퐁텐은 ‘내가 보기에는 잘살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북한 주민은 그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대답합디다.”

 
  ―大豊(대풍)으로 쌀이 남아돈다고 하는데 쌀로 막걸리를 만들면 어떨까요?

 
  “그렇지 않아도 崔珏圭(최각규) 농수산부 장관에게 연구해 보라고 했어요. 막걸리를 만들어도 문제가 있어요. 다음에 쌀이 모자랄 경우 막걸리를 못 만들게 하면 정부가 朝令暮改(조령모개)라고 비난을 받게 될 거요. 쌀로 막걸리를 만들면 1년에 190만석이 소비되지요. 대신에 밀가루 수입이 줄어들고 또 농민 건강에도 좋을 거요. 지금 시판하는 막걸리는 배탈 나기 좋지.”
 

  ―忠孝(충효)사상에 관해 질문.

 
  “학교에서 배운 것은 모두 지키게 마련이에요. 우리가 5000년의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바탕이 있어요. 그냥 놔두면 미국의 풍속을 배워 충효사상이 퇴색합니다. 국민을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養民(양민)이고 둘째가 敎民(교민)입니다. 백성을 먹여살려야 하지만, 또 가르쳐야 하고 정신면에서 지도해야 해요.”

 
  ―컬러 텔레비전 방영은 언제쯤 시작될까요.

 
  “MBC, TBC 모두 컬러 방영이 준비되어 있지? 컬러 텔레비전을 방영 못해 안달이 났겠지(일동 웃음).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 농촌에는 흑백 텔레비전이 많이 들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바꾸면 농가 부담이 늘어요. 애들이 졸라서 안 살 수 없어요. 몇 해 지나면 자연히 가능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정책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이 컬러 텔레비전과 자동차예요. 자동차도 풀어 놓으면 너도나도 다 타고 다닐 겁니다. 지금 현대자동차에서 수출하고 있는데 실질소득보다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막아야 해요.”

 
  ―송효빈 한국일보 기자: 이번에는 改閣(개각)이 꼭 있을 것 같습니다(일동 웃음).

 
  “개각에 왜 그리 관심이 많소? 송 기자, 장관 시켜줄까? 문공부 장관 어때요? 그런데 문공부가 힘든 자리예요. 언론을 다루고 종교문제, 심지어 문화재 문제까지 다뤄야 해요.”

 
  ―문화재 보수사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문화재는 3, 4년만 있으면 거의 다 정화되고 내년에 중요한 것은 다 돼요. 콘크리트로 만들어야 오래 갑니다. 우리 조상들은 나무로 만들어서 後世(후세)에 가면 거의 없어져요. 지금 계란색을 칠하고 있는데 근혜 아이디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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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7년 3월 3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오찬

 
  박근혜 큰 영애 참석

  
  “카터의 인권문제 제기는 방법이 졸렬”
  
 
1976년 3월 1일 서울 명동성당에 참석했던 재야인사들이 ‘민주구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가두로 진출하고 있다. 이희호(왼쪽에서 두 번째) 여사의 모습도 보인다.


  ―시국 관련 구속자 석방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내무장관 보고가 ‘교회에 尹潽善(윤보선)씨 부인(孔德貴 여사-편집자 주), 또 李姬鎬(이희호·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편집자 주)씨 등이 모여 무엇을 한다고 하기에 막았는데 외신기자들에게 유인물을 주었다’고 해요.

 
  나에게 보내는 건의문을 뺏어 온 것을 보았는데 ‘박정희 귀하’라고 써서 나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모양입디다. 또 ‘귀하가 하는 정치는 나라를 망치는 정치’라고 썼습디다. 옛날 같으면 혼을 내라고 했겠지만 미친 사람들 하는 짓이라 웃고 말았소.
 

  문제는 외국에 기대는 事大主義(사대주의)입니다. 지금도 미국에 편지를 보내 고자질하고, 전화를 걸고 외신기자들을 집에 초청해서 헐뜯고 합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구속자들이 석방될 것이라고 축하파티를 열더니 안되니까 카터가 취임하면 석방될 것이라고 믿고들 있는데, 어림도 없어요. 카터가 압력을 넣을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인데 손톱도 안 들어갈 겁니다. 그들이 외국에 대해 우리나라를 헐뜯고 하니까 우리나라를 업신여기는 거예요. 미국이 자기들 조국인 모양으로 아는데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국력입니다.”

 
  큰 영애(박근혜): “지금까지 아버님이 하시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는 반대를 받더라도 하고 난 다음에는 잘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나는 當代(당대)의 평가보다도 후세 史家(사가)들의 평가를 염두에 둡니다. 당대에 영합하려다가는 아무 일도 못해요.
 

  KBS 연속극 ‘왕도’가 끝났는데 그 내용은 世宗(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의 얘기예요. 당시 集賢殿(집현전) 학자들은 모두 반대하고 申叔舟(신숙주)만 찬성했어요. 학자들의 반대로 한글을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무슨 글을 쓰고 있겠소.”

 
  ―미국에서 카터 행정부가 출범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카터가 취임한 지 한 달 좀 넘었는데 그가 도덕성을 부르짖고 있으나 미국 자체 내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요.
 

  소련(지금은 러시아)의 인권을 얘기했다가 반발을 받고 있는데 ‘SALT(전략무기제한협정)를 앞두고 상대국의 신경을 돋워서 일이 될 게 없어요. 인권문제를 얘기하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봐서 돌려서 얘기해야지 그런 식으로 하면 안돼요. 방법이 졸렬해요. 대통령이라기보다는 목사나 신부가 할 일입니다.

 
  인권 얘기를 하지만 왜 크메르(캄보디아-편집자 주)의 수백만 명 학살이나, 월남의 인권은 외면합니까. 공산국가라고 해서 못한다면 왜 공산국인 소련이나 체코 얘기는 합니까. 분명히 얘기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인권문제가 없어요
.”

 
  ―얼마 전 서울시에서 행정수도 건설 계획을 밝혔는데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직 후보지를 정한 바 없으나 여기저기 생각해 본 적은 있어요. 실무자 얘기로는 백지에 계획을 세워 후보지에 그대로 옮겨 건설하면 된다고 합디다. 계획을 세우는 데 2, 3년은 걸립니다.

 
  서울시청에서 그 계획을 밝힌 것은 서울시 인구가 매년 마산시만큼 늘어나 답답해서 숨통을 트자는 뜻에서 한 것이요. 심리적 효과도 있을 테고 또 장기적으로 보면 수도를 옮기는 수밖에 없어요. 서울 인구를 800만명 정도로 묶어 놓고 수도를 옮겨야 해요.
 

  올 봄에 임시국회가 열리면 법을 만들어 이 법으로 地價(지가)를 묶어 놓고, 나중에 후보지를 정해 이 법 공포 당시의 지가에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서 사들이면 돼요.

 
  후보지를 일반에서는 어디로 봅니까? 신탄진은 공장이 있고 주택들이 밀집해 있어서 안되고, 진천은 물이 없어요.

 
  행정수도를 세워도 한꺼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부처부터 들어간 후 나중에 청와대가 들어가면 돼요. 또 한곳에 모두 모일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건물을 지어 8차선의 하이웨이로 5분 정도의 거리로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어요.” 
  
 
육사에 입학한 큰 아들 박지만(왼쪽)씨와 만나는 박정희 대통령.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에서 새 수상이 들어서면 한 번씩 하는 얘기예요. 앞으로도 계속 분쟁거리로 남아 있을 겁니다. 일본 신문사 비행기가 오는데 격추시킬 수도 없어요. 비무장 비행기를 격추시키면 더 큰일이 돼요. 물론 일본 전투기가 오면 쫓아내야 하지만. 그래서 독도에 기관포를 설치해서 일본 비행기에 위협사격을 가하라고 했소.”
 

  ―지만 군이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는데요.

 
  “지만이가 육사에 들어가니 청와대 식구가 또 하나 줄었어요. 어제 육사에 가 보니 얼마나 규율이 엄하고 선배들이 당당한지 신입생들은 기가 죽어 있더군. 육사에서 4년 동안 배우면 일생에 큰 도움이 되겠지요.
 
  우리가 육사 2기인데 그때에는 한 반에 나이 많은 사람도 있고 해서 규율이 지금 같지 않았어요. 지만이가 육사 입교 전에 머리가 덥수룩해서 머리를 깎으라고 해 나중에 빡빡 깎고 왔는데 눈물이 좀 핑 도는 것 같습디다. 어제 내 옆에 와서 뭐라고 ‘꽥’ 소리를 지르던데 아주 달라졌어요(KBS 기자에게 육사 입교식 때 육사 생도 정장을 한 지만 군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

 
  ―지방순시에 대해 질문.

 
  “이번에는 전국을 죽 돌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 군데 돌고 올라와서 중앙의 일을 보다가 또 내려가는 식으로 하려고 해요. 이제는 예전과 달라서 죽 여행을 하면 힘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