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박정희와 이병철의 대화

여동활 2010. 5. 10. 09:41

박정희와 이병철의 대화 
2004.10.15 

 


삼성물산 사장 이병철은 1961년6월27일 박정희 부의장과 나눈 대화를 상세히 기록해두었다. 


<그는 부정축재자 11명의 처벌문제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었다. 
나는 부정축재 제1호로 지목되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말문을 열 것인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박 부의장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좋으니 기탄없이 말해주십시오"라고 재촉했다.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 앉았다. 소신을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부정축재자로 지칭되는 기업인에게는 사실 아무 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 부의장은 뜻밖인 듯 일순 표정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 나 계속했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탈세를 했다고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러나 현행 세법은 수익을 훨씬 넘는 세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 전시 비상사태하의 세제 그대로입니다.
이런 세법하에서 세율 그대로 세금을 납부한 기업은 아마 도산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만일 도산을 모면한 기업이 있다면 그것은 기적입니다". 

박 부의장은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액수로 보아 1위에서 11위 안에 드는 사람만이 지금 부정축재자로 구속되어 있지만 
12위 이하의 기업인도 수천, 수만명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 사람들도 똑 같은 조건하에서 기업을 운영해왔습니다. 
그들도 모두 11위 이내로 들려고 했으나 역량이나 노력이 부족했거나 
혹은 기회가 없어서 11위 이내로 들지 못했을 뿐이고 결코 사양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선을 그어서 죄의 유무 를 가려서는 안될 줄 압니다. 
사업가라면 누구나 이윤을 올려 기 업을 확장해나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업을 잘 운영하여 그것을 키워온 사람은 부정축재자로 처벌대상이 되고 
원조금 이나 은행 융자를 배정받아서 그것을 낭비한 사람에게는 죄가 없다고 한다면 
기업의 자유경쟁이라는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부정축 재자 처벌에 어떠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어디까지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박 부의장은 그렇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이렇게 대답했다. 

"기업하는 사람의 본분은 많은 사업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그 생계를 보장해주는 한편, 
세금을 납부하여 그 예산으로 국토방위는 물론이고 
정부운용, 국민교육, 도로 항만시설등 국가운영을 뒷받침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부정축재자를 처벌한다면 그 결과는 경제위축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장 세수가 줄어 국가운영이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오히려 경제인들에게 경제건설의 일익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 국가에 이익이 될 줄 압니다". 


박 부의장은 한동안 내 말을 감동깊게 듣는 것 같았으나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가의 대본에 필요하다면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이 정치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동안 실내는 침묵에 빠졌다. 

잠시 후 미소를 띤 박 부의장은 다시 한번 만날 기회를 줄 수 없겠느냐고 하면서 거처를 물었다. 

메트로 호텔에서 연금상태에 있다고 했더니 자못 놀라는 기색 이었다. 
이튿날 아침 이병희 서울분실장이 찾아오더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다른 경제인들도 전원 석방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그대로라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나와 친한 사람들일 뿐 아니라 부정축재자 1호인 나만 호텔에 있다가 먼저 나가면 
후일에 그 동지들을 무슨 면목으로 대하겠는가. 
나도 그들과 함께 나가겠다"고 거절했다>('호암자 부'). 


박정희는 최고회의 법사위원장 이석제를 불렀다. 

"경제인들은 이제 그만했으면 정신차렸을텐데 풀어주지" 
"안됩니다. 아직 정신 못차렸습니다". 

"이 사람아, 이제부터 우리가 권력을 잡았으면 국민을 배불리 먹여살려야 될 것 아닌가. 
우리가 이북만도 못한 경제력을 가지고 어떻게 할 작정인가. 
그래도 도라무통 두드려서 다른 거라도 만들 어 본 사람들이 그 사람들 아닌가. 
그만치 정신차리게 했으면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국가의 경제부흥에 그 사람들이 일 좀 하도록 써먹자". 


이석제는 박 부의장의 이 말에 반론을 펼 수가 없었다. 
다음날 이석제는 최고회의 회의실에 석방된 기업인들을 모아놓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차고 있던 큼지막한 리벌버 권총을 뽑아들더니 책상 위에 꽝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놓고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여러분들을 석방시키는 일에 반대했습니다. 
그런데도 박 부의장께서 내놓으라고 하니 내놓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원조물자, 국가예산으로 또다시 장난치면 
내 다음 세대, 내 후배 군인들중에 서 나 같은 놈들이 나와서 다 쏴죽일 겁니다". 


6월29일 아침 이병철 사장이 묵고 있던 메트로 호텔을 찾아온 이병희 정보부 분실장은 
기업인들이 전원 석방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이병철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이병철은 중앙 공보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후 
"국민을 빈곤으로부터 구하고 나라를 공산침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모든 재산을 바치겠다"고 다 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4일 전에 일본에서 귀국했던 그는 "이런 의사를 작년 11월경에도 많은 친지들에게 전했으나 
정부 당국에는 공식적으로 전달하지 않았으며 그 까닭은 부정 부패가 이승만 정권 때보다 더 심해서 
돈이 효과적으로 쓰여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서 "군사혁명 이후 정부가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자진해서 전재산을 혁명정부에 바치 겠다고 통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여러 기업체에 불입한 재산의 총액은 약 1백50억환이고 그 가운데 37-38%가 개인재산이라고 했다. 
이 돈을 "전부 국가에 바쳐 재건에 쓰도록 하겠다"고 한 그는 "해외에 재산을 도피시킨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박정희와 이병철의 만남은 조국근대화를 꿈꾸던 한 혁명가가 기업인들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뜨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가난 한 농민 출신이고 질박한 생활이 몸에 밴 박정희는 부자들에 대해서는 
생래적인 거부감을 가졌으나 그의 실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는 
그런 기업인들을 부려서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쪽으로 선회하게 만들었다. 

박정희는 그러나 대기업이 대자본을 바탕으로 하여 

권력에 도전한다든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드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박정희 시대의 정경유착은 국가가 철저히 대기업을 통제하여 
국가의 방향대로 몰고가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후대의 정경유착과 성격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