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박정희 대통령 배우는 中國, 박정희 버리는 韓國

여동활 2010. 5. 7. 22:32

박정희 배우는 中國, 박정희 버리는 韓國

 

 

 

박정희의 모든 것은 새마을 운동에 있습니다. 

경제개발도 새마을 정신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자주국방도 새마을 정신으로 부터 나온 것이고,

산림녹화도, 농촌 개발도,,민족사관 확립도.. 교육헌장도..

전부 새마을 정신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한번 물든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인 것처럼

한번 물든 국민의 새마을 정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입니다.

이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새마을 정신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새마을 운동으로부터,

근면과 협동과 자조의 새마을 정신이라는 국민정신을 갖게 되었고,

이로부터 "잘 살아 보자 !" "우리도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과 의지을 가지고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1990년 초 중국의 등소평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발전 모델로는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삼고 배우기 시작하여

후진타오 정권에 와서는 지방 지도자들을 한국에 보내

새마을 운동을 적극적으로 배우면서 실천함으로써 현재의 강력한 中國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한국은, 김재규 덕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청렴, 검소 근면해야 할 새마을 추진본부에 동생 전경환을 앉혀 놓고

부정부패, 비리의 산실로 만들어 국민의 지탄을 받아 국민이 외면하게 만들므로 해서

10년 이상 국민정신을 개조했던 [새마을 정신]과 함께 [새마을 운동]이 소멸하게 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원수 대하듯하는 김영삼 정권에 와서는

국민소득 10,000$이 됐다며 선진국의 모임인 OECD 가입을 하고는

대한민국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방함에 따라

국민들이 해외관광을 위해 돌아다니며 $(달러)를 흥청망청 쓰기 시작하였고,

이에 해외로부터 '한국은 너무 샴페인을 빨리 터트렸다'며 비아냥을 받더니.

결국에는 4년도 안되어 IMF를 맞아 대한민국과 국민들이 쪽빡을 차게 되었습니다.

 

김영삼 정권 대동소이한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면에서, 실용주의이며 원칙주의자인 박정희 대통령과

위선적이고 허풍쟁이인 김영삼 대통령으로 대비할 수 있습니다.

자칭 실용주의자라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을 닮기는 커녕, 김영삼과 붕어빵이라고 봅니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  中國은 박정희의 모든 것을 배우고 있지만,

이에 반해 대한민국은 박정희를 배우기는 커녕,

모든 것을 철저히 배제시키며 짓밟아 왔습니다.

 

국방도 마찬가지이지만, 경제도 혹시나 하는 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서만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과학입니다.

대한민국 미래는  [자유민주주의 중심으로 국민단결과 부정부패 척결, 그리고 국민의 자신감]

이 3가지 요소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이는 바로 박정희의 새마을 정신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대한민국에는 [새마을 정신]을 부활시켜

선진국으로 만들 정치인은 없는 것일까요?

 

대한민국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을 이어받아

강대국으로 만들 정치인은 없는 것일가요?

 

딱 한 사람있다고 봅니다.

 

 

 

====

나에게 朴正熙를 설명해 주는 中國人
공서환

 

▲포항제철 준공식 박대통령의 결연한 의지가 보인다.(좌)박태준 전 회장 1973. 7. 3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북경에서 상해를 가는데 기차를 이용했습니다.
저녁 6시부터 시작한 기차여행은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장장 14시간 계속되었습니다.
기차는 같은 칸에 침대가 좌우로 2단씩 4개의 침대가 있었습니다.
북경 역에서 애인과 이별하며 서러워하던 아가씨와 나,
그리고 엉덩이가 내 서너 배는 됨 직한 미국인 한 명,
그리고 젊은 중국 청년 한명이 같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신화사 통신에 근무 한다는 청년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제게 물었습니다.
한국의 발전은 박대통령에 의해 그 단초가 제공되었는데
박대통령의 국가 발전의 핵심 전략이 무엇이었느냐는 것입니다.
남의 나라 기차간에서 박대통령의 국가발전 핵심전략이 뭐였냐는 질문에 진땀이 났습니다.
여러분은 아십니까?
새마을 운동 생각이 나서 그렇게 대충 설명 했더니
그 청년은 내가 무안하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 경제발전의 핵심전략은 '집중화(集中化)' 라는 것입니다.

60년대 당시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은
자원도 기술도 전무한 상황이라 경제발전의 단초 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산업이라는 것 자체가 전무라 해도 좋았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경제발전이란 눈사람을 만드는 일과 같다.
눈사람을 만들려면 먼저 주먹만한 눈을 뭉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주먹만한 눈 뭉치 조차 만들만 한 눈이 한국에는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청년은 눈 뭉치는 시늉까지 내며 내게 설명했습니다.
박대통령은 그래도 한국이 산업국이 되기 위해서는
없는 눈을 만들어서라도 눈사람을 만들어야 한다고 작심했습니다.
청년은 우리의 누나나 어머니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수출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누나의 머리카락이 당시의 우리 나라 산업의 기초 원자재였다는 게
저도 지금은 실감나지 않습니다.
어떻든 박대통령은 동원할 수 있는 국가자원은 모조리 동원했다는 것입니다.
청년은 여기서 박대통령의 능력이 놀랍다고 했습니다.
국가 자원을 총동원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게 아니랍니다.
능력이 없으면 있는 자원을 모으는 것도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현재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예를 들어 박대통령과 비교했습니다.
한국에 비해 자원이 넘치는 이들 나라가
지금은 한국의 반도 못 쫓아 가는 건 동원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당시의 박대통령과 한국민은 동일한 목표의 설정에 성공했고
그 합의는 "잘 살아 보자."였다는 것입니다.
청년의 설명은 계속됩니다.
이 총동원된 자원은 '재벌'이라는 창고에 쌓아두는 게
박대통령의 집중화의 핵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빈약한 자원을 여기저기 분산시키면 힘으로 작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원을 모아두는 저수지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재벌'이라는 것입니다.
박대통령의 계산은 간단했답니다.
저수에 물을 고이게 한다. 그래서 저수지에 물이 고이고 고여 넘치면
아래로 흘러가게 마련이고 이는 논과 밭으로 가게 마련이다.

그 물이 저수지에 고이는 데 한국은 20년 정도 걸렸답니다.
그리고 그 물이 흘러 넘치기 시작한게 80년대라고 청년은 설명했습니다.
20년 동안 한국인은 고생했답니다.
노동자가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였고
후세의 지금 당신들이 누리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박정희의 개발 독재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원칙적으로 독재는 나쁘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원칙을 핑계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물었습니다. 그럼 과거의 재벌은 나름대로의 기능을 했다고 치면
현재 한국의 재벌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하느냐고 했더니
그 청년은 그건 한국인이 무엇을 원하느냐에 달렸다고 대답했습니다.
아직도 큰 저수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든지 아니면
작은 저수지를 여러 개 파는 게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할 것이라든지
한국인이 판단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는 현재 중국의 경제 발전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중국이 지금 60년대의 한국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국가 자원의 집중화를 위해 재벌과 국가가 정경 유착을 인위적으로 조장하고
국가는 마스터 플랜을 재벌은 그에 따른 서브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그래서 한국처럼 단기간에 국가 경쟁력을 키운다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은 한국에 비해 천연자원과 인적자원이 풍부하여
한국보다 더 단기간에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며
만약 60년대에 중국에 박대통령 같은 주석이 있었다면 지금 미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한국의 민주화에 관해서 이런 평을 했습니다.
한국 민주화의 일등 공신은 박정희다.
경제성장과 정권의 독재는 역방향으로 움직인다.
독재적 경제 대국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날이 훤히 밝아오고 기차는 아주 긴 철교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정말 박대통령은 무엇을 꿈꾸고 있었을까요? 궁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