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의 한국 경제를 열정적으로 이끌어간 경제부총리 장기영은 시도 때도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하기로 유명했다. 1966년 3월 6일, 일요일에 집에서 쉬고 있던 청와대 정보비서관 권상하에게 전화를 걸어 좀 만나자고 했다.
권상하가 그때의 이야기를 대구사범 동창회보에 공개한 바 있다. (사기회보 제39호)
장기영은 한국일보 사주(社主)이기도 하고, 권상하는 대구일보 기자 출신에다 대통령 박정희의 대구사범 동기생이다.
두 사람은 부총리실에서 만났다.
장기영은 한국일보가 조성한 남한강변의 포플러 단지 이야기를 꺼냈다.
“대통령께서도 큰 관심을 갖고 계신 사업인데 나무들의 성장이 아주 좋아 한번 보여 드리고 싶소.”
그러니 대통령의 의향을 물어달라는 것이었다.
한국일보는 1964년부터 황량한 국토를 푸르게 가꾸기 위한 캠페인으로 포플러 심기 운동을 벌여 자체로 조림단지를 조성하고, 장기영은 사재를 털어 묘목을 사 지방에 보내주는 등 포플러를 적극적으로 보급해서 산림녹화를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대통령과 죽이 잘 맞았다.
“마침 일요일이고 하니 저와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 말씀을 드려 봅시다.”
권상하의 권유대로 청와대에 들어가니, 대통령이 막내 지만이와 국수를 먹고 있었다.
“어이, 잘 왔소. 먹을 복이 있는 양반들이구만.”
함께 국수로 요기를 하면서 권상하가 말을 꺼냈다.
“각하, 오늘 오후 일정이 어떻게 되십니까?”
“안 그래도 야외라도 나갈까 하는데.”
보름 전에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박정희는 여독(旅毒)도 충분히 풀려 활력이 넘치는데 한가한 일요일을 무료하게 보낼 참이었다.
“그러면 좋은 코스가 있습니다.”
포플러 단지 시찰을 건의하자 반색을 했고, 세 사람은 곧 점퍼 차림으로 지프차에 올랐다.
검은 안경을 쓴 대통령이 운전석 옆에 앉고, 두 사람은 뒷자리를 차지했다.
민정 시찰을 겸한 이른바 대통령의 잠행(潛行)이다. 잠행을 할 때는 항상 검은 안경에 점퍼 차림을 했다.
암청색으로 선팅한 차창 밖으로 시가의 정황을 샅샅이 살피며 지프는 시내를 벗어나 팔당, 양수리, 양평, 이천, 여주를 거쳐서 남한강변의 포플러 단지에 도착했다.
한겨울 추위를 견디고 봄눈에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한 포플러가 큰 무리를 지어 일행을 반겼다. 이탈리아 원산의 포플러였다. 국토가 너무 헐벗어 빨리 자라는 나무가 최고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임목육종연구소가 1961년에 도입해서 증식한 것을 한국일보가 한국포플러위원회와 손잡고 대대적인 보급운동에 나서고 있었다.
박정희는 쭉쭉 뻗은 나무들을 두루 살피고는 두 팔에 안아 보고, 흔들어 보고, 매달려 보면서 무척 흡족해했다.
“대성공이오. 우리 국토에 쓸모없는 땅이 많으니 이런 속성수(速成樹)를 빨리 보급해서 수익성 있는 국토 녹화를 해야겠소.”
“각하께서 힘을 실어주시니 성과가 빠릅니다.”
대통령의 치하에 장기영은 감사의 말로 답했다. 1965년 2월1일 대통령은 한국일보에 성금을 보내주면서 “이 운동은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치산녹화사업을 촉진할 뿐 아니라 가난한 농촌을 부흥시키는 첩경이 될 것”이라고 격려했던 것이다.
시간이 훌쩍 지나 4시 반경이 되었다.
3월인데 먼 산에는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고, 옷깃을 파고드는 석양의 강바람은 쌀쌀해서 으슬으슬 추웠다.
귀로에 오른 지프가 여주의 한적한 길에 접어들자 허름한 주막이 나타났다.
아니나 다를까, 박정희가 차를 세웠다.
“좀 들렀다 가세.”
누추하고 전깃불도 없이 컴컴한 주막이었다.
50줄 나이의 뚱뚱한 주모가 안내하는 대로 메주 냄새가 물씬 나는 방으로 들어가니 아랫목이 따뜻해서 몸을 녹이는 데는 안성마춤이었다.
박정희가 아랫목, 두 사람은 웃목에 마주앉았다. 박정희는 고향집에 온 듯 편한 자세로 퍼더버리고 앉았는데 버릇대로 안경을 벗진 않았다.
“날도 쌀쌀하니 막걸리 따끈하게 해서 한 사발 주시오.”
얼마 후 주모는 찌개 안주와 따끈한 막걸리를 가져와 손님들에게 한 사발씩 권했다.
“사장님, 술맛이 괜찮은데요.”
잠행을 할 때는 대통령 박정희가 아닌 ‘박사장’으로 행세하는 것이 관례여서 동행자들은 한껏 풀어진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손님들과 막걸리 사발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주모가 박정희를 요리조리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박정희의 무릎을 탁 쳤다.
“아이고, 이 양반이 꼭 박정희를 닮았네. 신문에서 본 그대로야. 똑같애.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지 몰라.”
순간, 동행자들은 긴장했다.
“주모! 내가 왜 박정희 닮아? 모두들 박정희가 날 닮았다고 하는데.”
박정희가 능청을 떨자, 비로소 킥킥 웃음이 나왔다.
주모는 손님들 눈치는 아랑곳없다는 듯 얼굴이 불콰해지도록 술상 앞에 꼭 붙어앉아 이것저것 참견하다가 고달픈 세상살이 불평 불만을 늘어놓더니 정부에 대해 욕사발을 퍼붓기 시작했다.
동행자들은 술기운이 싹 가시면서 안절부절못하는데, 박정희가 흥에 겨워 추임새를 넣어주니 잔뜩 기세가 오른 주모는 군수, 경찰서장, 지서 주임에서 아무개 순경까지, 또 면장과 면서기들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죄상’을 낱낱이 폭로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다시 박정희로 돌아왔다.
“박정희는 새까맣고 조그만 것이 어찌 그리 간이 큰가 몰라. 하도 단단해서 돌로 쳐도 안 죽을 거야.”
동행자들은 오싹해서 그저 주모의 입방정이 끝나기만 고대하는데, 박정희는 파안대소하며 연신 맞장구를 쳤다.
방안으로 어둠이 기어들 무렵, 마을 청년 한 무더기가 들이닥쳐 화투판을 벌이려 하므로 일행은 황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술값 3천원을 치르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차창 밖으로 서쪽 하늘에 저녁놀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으나, 입정 사나운 주모를 만나 호되게 당하고 보니 장기영, 권상하 두 동행자들은 대통령의 유쾌한 일요일을 망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불안한 침묵을 깨고 권상하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어, 무슨 소리야? 아주 즐거웠어. 그게 진짜 민심이라는 거야.”
다음날인 월요일 오전 11시에 그곳 군수와 서장이 청와대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주막에서 급히 자리를 피하는 일행을 이상히 여긴 마을 청년들이 주모로부터 말을 전해 들으니 영락없는 대통령인지라 소문이 금방 쫙 퍼졌다는 것이다.
군수와 서장은 바짝 쪼그라들어 죽을상이었다.
“어제 각하께서 오셨는데 전혀 몰랐고, 무식한 주모가 너무 방정을 떨어서 몸둘 바가 없습니다.”
백배 사죄하며 처분만 바란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권상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대통령에게 구두로 보고했다.
박정희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제 주모한테 민정을 잘 전해 들었고, 좋은 충고도 고맙게 받아들이겠다고 그 군수하고 서장한테 전해주게. 그리고 그 두 사람에게 그 주모를 잘 보살펴 주도록 부탁한다고 해.”
잔뜩 움츠러들었던 군수와 서장은 비서관으로부터 대통령의 말을 전해 듣고는 어깨를 펴고 돌아갔다.
검은 안경에 점퍼 차림의 박정희가 민생을 살피고 망중한(忙中閑)의 여백을 막걸리로 채우기도 했던 소탈한 모습은 그 시대에만 볼 수 있었던 대통령의 현대판 미복잠행(微服潛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