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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의 시국진단은 틀렸다. 대통령이 일부 국정운영을 잘못하는 것과 그 정권이 독재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민주냐 독재냐를 가르는 명백한 기준이 있다. 언론·집회·표현의 자유,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 삼권분립 등이다. 모든 기준에서 현 정권은 독재가 아니다. 대통령을 살인마라 부르고, 요란하게 광우병 선동 방송을 하고,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을 패고, 시위대가 마구 도로를 점거하고, 자유롭게 정권을 교체하며 삼권이 독립돼 있는, 그런 독재국가란 없다. 그런데도 왜 DJ는 반독재 궐기란 횃불을 드는 것일까. 더군다나 DJ는 인생 9회 말이다. 마지막 타석의 무리한 스윙이 그동안의 승부를 뒤집을 수도 있는데 DJ는 왜 이런 부담을 무릅쓰는 것일까.
혹시 그에겐 메시아 콤플렉스가 있는 건 아닐까. 현대사에 민주화와 남북 화해의 메시아 한 사람이 기록된다면 바로 자신이어야 한다고 DJ는 믿는 게 아닐까.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은 ‘독재의 다발’로 묶고 자신은 한 사람의 거인으로 반(反)독재 메시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전임자들은 대체로 남북 대결을 추구했으며 자신만이 본질적이고 효율적인 남북 화해의 메시아라고 믿는 게 아닐까. 그런 확신 속에서 노무현이 반(反)이명박 정서에 불을 지르고, 남북이 서로 포를 겨누는 이때가 바로 메시아가 재림(再臨)해야 하는 때라고 그는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DJ는 과연 흠 없는 메시아인가. 50년에 가까운 정치역정에서 그는 메시아가 지녀야 할 드라마적 요소를 겪었다. 외국의 수도에서 눈을 가린 채 납치됐고, 내란음모자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가족과 측근은 심한 고문을 당했다. DJ는 박해 받는 자였던 것이다. 이런 박해 없이 그저 남북 정상회담만으로는 노벨 평화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통 받은 세월이 모든 걸 정당화해주진 않는다. 그는 메시아이기 이전에 평범한 인간의 실수를 많이 저질렀다. 그는 대부분 투쟁과 반대의 길을 걸었다. 1960~70년대 경부고속도로를 반대하고 향토예비군을 거부했다. 경부고속도로가 없었으면 경제개발을 어떻게 했고, 향토예비군이 없었더라면 북한 무장공비를 어떻게 막았겠는가. 그는 이 대목을 사과한 적이 없다. 그는 박정희의 독재보다 자신의 민주화 투쟁에 정의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는 부귀영화 독재가 아니라 나라를 위한 개발독재였다. 설익은 민주화와 개발독재 중에서 무엇이 국민을 가난과 혼란에서 구했는가.
DJ는 역사를 수용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돼서 제2의 건국을 외쳤다. 건국이란 한번뿐인 것인데 제2의 건국이라니…. 전임자의 축적을 무시하는 오만이었다. 이승만·박정희부터 김영삼까지 전임자들은 역사의 맥을 이어왔다. 그 맥을 끊고 DJ는 자신을 상해 임시정부와 바로 연결하려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의 잘못된 역사관을 배웠다. ‘메시아’는 성급하기도, 순진하기도 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후 며칠 만에 그는 “더 이상 한반도에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2년 후 북한은 ‘핵 동결 제네바 합의’를 깨부쉈다. 그러곤 핵개발로 치달았고 지금은 남한에 전쟁을 위협하고 있다. 공산주의자와 회담할 때는 테이블 밑의 발을 보라 했다. 남한의 메시아는 혹시 손만 본 게 아닐까. 그가 “내 몸의 절반”이라고 했던 노 전 대통령도 발을 보지 못했다. 선임자의 탓이 크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