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 땅에 과학기술의 씨를 뿌리고 발전의 견인차 역을 맡았던 송곡(松谷) 최형섭 박사 5주기 추도식이 지난 5월 29일(금) 오전 11시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에서 거행되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주관으로 진행된 추도식에는 KIST 임직원과 동문, 박승덕 과우회 회장, 마경석 한국엔지니어클럽 명예회장 등 30여명이 참석하여 고인을 기렸다.
ⓒ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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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박사는 일찍이 원자력발전 15개년계획을 수립, 원자력 발전의 기틀을 닦았으며,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ㆍKIST) 초대 소장을 맡아 해외 한국인 과학기술자의 대규모 국내 유치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최 박사를 주축으로 연구진이 밤 늦도록 연구소에 불을 밝히고 있었던 시절, 연구원들이 귀가하다가 통금시간에 걸려도 경찰이 “수고하신다”며 단속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최 박사를 위시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연구진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조선시대 장영실 뒤에는 세종이 있었고, 최형섭의 뒤에는 박정희가 있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제가 공직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 박정희 대통령만한 분이 없습니다. 박 대통령은 정말 성심성의껏 과학기술을 도와줬습니다. 저에겐 꼬박꼬박 ‘최 박사’라고 부르며 우대해줬지요. 그만큼 과학자들을 아꼈습니다. 제가 과학기술 정책에 관해 건의한 내용의 90퍼센트 이상을 들어주셨어요.”
생전의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최 박사는 과학기술처장관 재임 7년 6개월이라는 최장수 국무위원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과학기술은 꾸준히 일관성있게 추진해야만 결실을 볼 수 있다는 평범한 지론에 따라 박 대통령이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최형섭 과학기술처장관을 바꾸지 않은 것.
최 박사는 과학 메카로서의 대덕연구단지를 구상, 이를 착공케 하는 등 일생을 과학기술 발전에 헌신한 공으로 과학자로는 두번째로 국립현충원에 묻혔다.
고인의 묘비에는 그가 후배들에게 남긴 ‘연구자의 덕목’이 비문으로 기록돼 있다.
ⓒ 대덕넷
후배 과학자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는 이 덕목은 과학기술의 외길을 간 고인의 생활신조이기도 했다. ◎
[좋아하는 사람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