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12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유럽 순방에 나섰다. 독일과 프랑스·이집트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독일밖에 가지 못했다. 비용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는 대통령 전용기가 없어 해외 순방에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다. 정부는 유럽 순방을 위해 여객기를 일주일간 전세 내려 했지만 50만 달러라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독일 정부가 일본 도쿄~독일 본을 운항하던 루프트한자 항공기를 서울에 임시 기착시켜 박 전 대통령의 순방이 이뤄졌다. 청와대는 자존심이 센 것으로 알려진 드골 대통령에게 한국이 독일보다 프랑스를 경원한다는 인상을 줄 것을 우려해 본에서 열기로 한 유럽공관장회의를 파리로 옮기는 방안까지 추진했지만 결국 돈 문제로 무산됐다.
전세기 비용 못 대 독일만 방문
1961년 완공 당시의 주한 프랑스대사관 건물. 로제 샹바르 프랑스대사 소장 사진.
8대 대통령 선거를 3개월 앞둔 71년 박 전 대통령은 또 한 번 프랑스 방문을 추진했다. 청와대는 프레데리크 막스 주한 프랑스대사와 접촉해 3월 중 프랑스 공식방문을 타진했다. 당시 한국은 프랑스의 아시아 세 번째 교역국가였다. 학생들의 80%가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선택할 만큼 양국 관계는 가까웠다. 하지만 이번에도 방문은 성사되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4월로 예정된 한국의 대통령선거가 코앞이라는 점에 부담을 느꼈고,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의 라이벌이던 김대중 신민당 후보가 프랑스를 방문하기로 예정돼 있던 점이 영향을 끼쳤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18년 재임기간 동안 프랑스를 한 차례도 방문하지 못한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이런 외교 비사(秘史)는 한 공무원이 프랑스에 남아 있는 외교문서를 뒤져 새롭게 밝혀내며 드러났다. 정상천(50) 통일부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팀장이 주인공이다. 정 팀장은 프랑스·한국 외교사료를 기반으로 쓴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부제:프랑스 외교사료를 통해 본 한불관계비사)』라는 책에 이런 내용을 담았다. 외교부에서 15년간 근무한 정 팀장은 외규장각도서 반환에 기여한 프랑스통. 이번 책은 파리 유학(94~95년)과 박사과정(2000년) 기간 중 프랑스 외교부 고문서실을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외교문서를 연구한 걸 기반으로 쓰여졌다. 정 팀장은 3200여 쪽에 달하는 프랑스 외교사료를 복사해 왔다고 한다.
이 책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프랑스에 대한 동경과 사랑은 특별했다. 어릴 때 탐독한 나폴레옹 전기 영향으로 장군이 되는 걸 동경했던 그는 제1·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드골 프랑스 대통령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다고 한다. ▶핵 재처리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73년 프랑스와 원자력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한 점이나 ▶팔당댐 건설에 프랑스 자본을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나폴레옹·드골 동경한 박정희
정상천씨가 펴낸 책.
한국을 사랑해 경남 합천 해인사에 안장된 로제 샹바르 주한 프랑스 대사 이야기도 흥미롭다.
샹바르 주한 대사는 해인사 묻혀
광복 후 초대 주한대사로 발령받아 59년부터 10년간 근무한 샹바르 대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가까웠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을 추진한 실무자이자 팔당댐 수력발전소에 프랑스 자본과 기술 을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샹바르 대사는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한국 해인사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겼고 82년 타계 후 해인사 산자락인 ‘소리길’에 잠들었다. 그의 손자인 올리비에 샹바르도 프랑스 외교부의 아프리카-인도양 담당 부국장으로 근무 중으로 차기 프랑스대사로 거론되고 있다.
그 밖에도 책에는 외교사료를 기반으로 처음 공개되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프랑스 정부에 서한을 보낸 안동군수 권재중 ▶잊혀진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파리 주재 북한 민간무역대표부 설립 등의 내용은 저자가 특별자료열람 신청 등 프랑스 자료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하는 내용이다.
정원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