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0.01 03:02
홍릉 KIST 찾는 베트남 지도자들… 한국 산업의 '씨'를 보고 돌아가
가난하던 시절 美가 선물한 연구소… 이제는 우리가 베트남 도와줘
못살아도 의욕 넘쳤던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역사 외면하고 퇴행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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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갑식 선임기자
그들이 보고 싶었던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남겨놓은 위대한 유산(遺産)이었다. 1966년 만든 박 대통령의 작품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에 산업의 ‘씨’를 뿌려 오늘날의 기적을 부른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였다.
프랑스 식민 지배, 대미(對美)전쟁을 치른 베트남은 하루빨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여러 나라가 훈수를 뒀지만 흡족하지 않았다. 베트남 실정과 동떨어졌던 것이다.
4년 전 KIST를 맨 먼저 찾은 부데탕 베트남 개발전략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비로소 파트너를 만났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베트남 경제를 살리려면 한국의 경험을 배워야 하는데 그 원동력이 KIST였습니다.”
그때부터 베트남 고위 인사들은 한국에 매달렸다. 한국·베트남 관계를 ‘사돈의 나라’로 규정하는가 하면 특별법 제정을 통해 각종 편의를 봐주고 8만평의 땅까지 내놓겠다고 하더니 급기야 ‘최후의 카드’까지 내밀었다.
베트남 발전의 지도를 그릴 기관명을 ‘V-KIST(Vietnam-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즉 우리 국명(國名)을 넣겠다고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매국노’란 소릴 들었을 것이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거기서 연구소설립협정에 서명한 대통령 흉중(胸中)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추억은 지금으로부터 48년 전 아버지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장면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또 한 명, 지하에서 박정희의 딸, 박근혜 대통령의 예방을 지켜봤을 호찌민도 착잡했을 것이다. 박정희가 호지명(胡志明)이라 부른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과 박정희는 500마일 밖에서 지략을 겨룬 희대의 맞수였던 것이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의 미국행은 앵벌이에 가까웠다. 월남전에 파병해 우리 젊은이가 흘린 피의 대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존슨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불쌍한 나라의 초라한 대통령에게 뜻밖의 선물을 내놓았다.
“종합과학연구소를 지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건물이 서자 이번엔 과학 두뇌(頭腦)를 채워넣으려 초대원장 최형섭이 나섰다. 그는 구멍 난 양말 차림으로 과학자들에게 호소했다. “가난한 조국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부(富)와 명예를 등지고 고국으로 돌아온 두뇌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렸다. 포항제철·삼성전자·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 같은 기업과 제철·기계·화학·반도체라는 비전을 던지자 국민이 목표를 향해 돌진한 것이다.
1990년까지 1000명이 넘게 귀국한 한국 과학자의 행렬을 보며 험프리 미 부통령은 “세계 최초의 역(逆)두뇌 유출 프로젝트”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번영은 바로 이런 토대에서 시작된 것이다.
최근 문길주 KIST 원장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V-KIST 설립 비화를 들었다. “지난달 8일 연구소설립협정에 사인한 김에 준공일을 2017년 9월 8일로 하겠다고 했더니 베트남 총리와 과학기술부장관이 아쉬워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총리와 장관 임기가 정해져 있어요. 안타깝게도 총리와 장관이 2016년 물러난다는 겁니다. 재임 시에 V-KIST 준공 테이프를 끊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어요. 그만큼 기대를 걸고 있다는 거죠.”
문길주 원장의 말을 들으며 베트남은 충분히 잘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시아의 굴곡 많은 역사 속에 중국이 지칭한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 중 지금 제대로 된 나라는 한국·베트남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한국·베트남 관계는 얼마나 피와 눈물로 얼룩졌는가. 월남전에서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수많은 젊은 넋이 사라졌다. ‘사돈의 나라’라지만 그 얼마나 많은 베트남 처녀가 못된 ‘한국놈’ 만나 얻어맞고 핍박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베트남 위정자들이 모르겠는가.
그런 굴욕과 원망을 딛고 오로지 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국민을 배부르게 만들겠다는 일념을 가진 지도자들이 있는 나라가 발돋움하려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히려 퇴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걱정스러워지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역사가 외면당하는 나라, 정확한 역사가 태연히 왜곡되는 나라, 아직도 흘러간 이념의 늪에서 국민이 갈라지는 나라, 서로가 서로를 향해 이를 부득부득 가는 나라, 아무도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나라, 그리고 그것이 당연시되는 나라…. 과연 40년 전의 못살았지만 의욕으로 가득 찼던 대한민국의 기백(氣魄)은 어디로 흩어져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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