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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들고 온 탄피, 병원신세 지며 받은 수당 모두 '빚' 덜 쓰고 덜 먹으며 모은 거금 1억여원 기부
【서울=뉴시스】오종택 기자 = 베트남전에 참가한 한 참전용사가 40여년 전 조국에 진 빚을 갚기 위해 거액의 성금을 기탁해 화제다.
베트남 참전유공자인 강원도 삼척에 거주하는 권중석(67)씨가 그 주인공이다.
권씨는 1967년 군에 입대해 이듬해 맹호부대 운전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1년간 복무하고 귀국한 그는 1970년 제대했다. 3년간의 짧다면 짧은 군 복무 기간 동안 그는 국가로부터 많은 빚을 졌다고 한다.
당시 가난한 가정 형편 탓에 먹고살 길이 막막했던 권씨는 자원입대를 결심했지만 입대가 불가능할 정도로 몸이 약했다.
어렵사리 군에 입대한 그는 수당이라도 두둑하게 챙길 요량으로 1968년 베트남전에 참전했지만 몸이 안 좋아 수 개월을 병상에서 생활했다. 권씨는 병상에 누워있으면서도 당시 8만원이 조금 넘는 수당을 받았다.
또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105㎜ 탄피 100개를 몰래 들여와 부산에서 당시 7만원을 받고 고철업자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
이 일들은 40여년 동안 권씨에게 마음의 빚이 됐다. 열심히 종교활동을 하며 평생을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던 중 권씨는 지난해 한 언론에 난 기사를 보고 그 빚을 뒤늦게나마 갚기로 했다.
베트남에서 몰래 빼돌린 탄피에 대한 손해배상 차원에서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베트남 유학생 탄따이(24)씨의 치료비로 1000만원을 내놓았다. 당시 탄피를 팔아 얻은 7만원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고 거기에 이자를 더한 금액이다.
지난해 7월에는 베트남전 참전 당시 받은 수당의 현재 가치에 해당하는 1000만원을 미국 적십자사에 기부하기도 했다. 또 지역주민은 물론 아프리카 난민 돕기, 통일기금 기탁 등 지난해에만 6600만원이라는 거액을 내놓았다.
권씨의 기부활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도발 위협이 계속되는 등 안보상황이 심각해지자 5000만원을 국방부에 기탁하려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자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6·25 전쟁 기록 화보집' 제작에 써달라며 성금 1000만원을 냈다. 또 호국보훈 단체에 각각 나눠 도움을 주기로 했다.
권씨는 "1968년 맹호부대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또 다른 전쟁의 참상과 고통, 자유평화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됐다"면서 "자유롭고 풍요로운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준 유엔군 참전용사들에게 늘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8년 전 갑상선암 수술 후 건강도 좋지 않은 권씨는 그 흔한 휴대전화나 자가용도 없을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출가한 자녀가 주는 용돈과 연금이면 부인과 함께 생활하는데 충분하다는 그는 정부와 지자체에서 매달 지급하는 참전수당 20만원은 고스란히 모아 남을 돕는데 쓰고 있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라를 위해 고생하고 있는 장병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기부가 아니라 내가 진 빚을 뒤늦게 나마 갚는 것인데 무슨 할말이 있겠느냐"면서 "다만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ohjt@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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