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혁명정부는 김지태를 반성할 줄 모르는 어쩔 수 없는 부패경제인으로

여동활 2012. 10. 24. 09:15

정수장학회 “헌납의 다이아몬드 반지”
혁명정부는 김지태를 반성할 줄 모르는 어쩔 수 없는 부패경제인으로
최종편집  2012.10.23 07:44
김동일 기자 (press@frontiertimes.co.kr)기자의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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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회 헌납의 다이아몬드 반지

故김지태 씨가 자기 소유의 부산일보와 부일장학회에 대한 양도 각서에 지장을 찍었던 것은 1962년 5월 25일 형무소에서였다, 며칠 전에는 김지태의 측근이 면회를 와서 김지태의 공석으로 기업 경영이 엉망이 되고, 산하 기업체들도 고통을 겪고 있으며, 수천 명의 종업원이 실직할 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차라리 경영권에서 손을 떼는 것이 회사를 살리는 길이라고 조언을 했던 터였다.

고민을 거듭하던 김지태가 5월 25일에 결정을 내렸던 것은 하루 전인 5월 24일에 김지태에게 징역 7년이라는 구형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김지태는 감옥에서 바깥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보며 눈치를 굴리다가 형량이 높게 구형되자 즉시 '타협'에 나서 석방과 포기를 교환하는 '딜'을 했던 것이다, 딜이 완성되자 김지태는 공소취하로 석방되었다.

김지태가 감옥에 있었던 이유는 관세법 위반과 외화관리법 위반 혐의였다, 김지태는 부산일보의 고속 윤전기 도입을 빙자하여 유럽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때 사용했던 여행 경비 1만 달러가 서독에 숨겨 두었던 모 상사의 도피자금이었다, 그리고 귀국하면서 김지태의 부인은 서독제 고급 카메라 1대와 7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들고 온 것이 포착됐기 때문이었다.

5.16혁명은 1950년대의 낡은 체제를 송두리 채 흔들었다, 5.16혁명이  기존의 수구적 체제에 대해 메스를 들이대었던 곳에는 기업도 있었다, 탈세와 밀수, 탈법과 불법을 일삼는 '기업의 탐욕'에 징벌을 가해 기업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진정하고 정의로운  '경제민주화'의 시초야말로 5.16혁명이었다.

5.16혁명 당시 삼성의 이병철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이 부정축재자로 체포되었던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러나 혁명 세력은 기업가들이 경제를 부흥시켜야 된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관대한 처벌을 내리고 석방해 주었다, 이들 기업가에는 김지태도 끼여 있었다, 김지태는 부정축재처리법 위반과 재산 해외도피 등의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당시로선 어마어마한 5억4천5백여만 환의 벌금을 내고 석방 되었다.


▲=5.16후 혁명정부의 경제재건 목표에 발맞추어 경제재건촉진회를 구성했던 이병철(삼성), 이정림(대한양회), 박흥식(화신) 등 기업인들은 1961년 8월 16일 제1회 임시총회에서 한국경제인협회로 명칭을 바꿔달고 초대 회장에 이병철을 선출했다. 사진 출처=전경련 홈페이지

이렇게 정부와 경제계가 새로운 물결을 타고 활발히 움직이고 있을 때 김지태의 비자금으로의 해외여행과 호화물품 밀수가 터졌던 것이다, 김지태에게는 개선의 정이 없었다,  이 때 혁명정부는 김지태를 반성할 줄 모르는 어쩔 수 없는 부패경제인으로 낙인찍었음이 틀림없다, 특히 김지태 부인의 6천5백 달러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는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는 적격이었다.

당시에 서민들은 보리 고개에 풀뿌리를 캐먹는 사람들이 허다했던 시절이었고, 군대에서는 굶주린 병사들이 수채 구멍에서 콩나물 대가리를 주워 먹던 시절이었다, 혁명 전의 박정희 장군의 쌀독에도 쌀이 떨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탐욕에 찬 기업가들은 탈세와 밀수로 호화생활을 즐기며 국민들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이런 자들에게 철퇴를 내리는 것은 혁명의 당연한 임무였다.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은 김지태 부인의 반지를 이렇게 변호했다, "한국의 대재벌 부부가 함께 외국에 가서 외국재벌의 초대를 받았을 때, 부인의 손에 반지가 없었다고 하면 그 얼마나 수치이겠느냐" 이에 젊은 검사는 이렇게 반박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가난하다는 것은 세계 재벌가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가난한 나라의 재벌이 없는 사람을 돕느라고 미처 부인에게 다이어 반지도 못 사주었다고 말했다면 그 얼마나 존경을 받았겠습니까"

4.19때에는 친일과 부정부패 대명사 김지태의 자택과 부산일보에는 돌맹이와 화염병이 날라 들었다, 동아대생 수백 명은 트럭과 버스를 타고 부산일보에 난입하여 기자들을 폭행하고 기물들을 닥치는 대로 부셔버렸다, 이 사태로 신문 발행은 정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구해준 것은 부산지구 계엄사무소장이었던 박정희였다.


▲=故김지태 회장의 친일 흔적과 5.16후 부정축재자로 몰려 재산을 헌납한 것을 대서특필한 D신문.

김지태의 재산은 친일이라는 자궁에서 탄생했다, 김지태가 일제수탈기관인 동양척식회사에서 근무할 때 맞선을 보았다, 중매를 섰던 사람은 남녀 양쪽 모교의 일본인 교장들이었다, 그리고 동척에서 퇴사했을 때 동척은 김지태에게 울산의 거대한 땅을 '거져 주는' 정도로 불하해 주었다, 김지태가 조선 백성의 고혈을 최대한 빨았기에 일본인에게도 어려운 특혜를 준 것이다, 김지태는 '불량선인'이 아니라 '천황의 충직한 신민'이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김지태의 재산이 헌납이던 강압이던 그 문제는 차치하고, 그 재산이 공익재단 형태로 존재하게 된 것은 '정의의 실현'이다, 노무현도 친일파들에게 재산을 몰수했다, 그것도 초헌법적인 법률로 재산을 빼앗았다, 그리고 삼성에 사회적 여론의 압력을 가하여 재산을 헌납받기도 했다, 노무현은 되고 박정희는 안 된다는 주장은 순전히 정치공세이고 선거판의 어거지 주장이고, 빨갱이들의 궤변이다.

정수장학회는 정수장학회의 것이다, 그것은 민주당도 손 댈 수 없고, 박근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정수장학회에 재산을 내놓으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김일성뿐이다, 남에게 재산을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것은 공산당 세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박근혜는 공산당 좋아하는 부류들과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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