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총선의 네가지 '왜'
152석. 지난 4월11일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받아든 성적표다. 역대 총선 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46.1%)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 뉴타운 바람 등에 힘입은 18대 총선 때보다 1석밖에 적지 않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127석을 얻는 데 그쳤다. 선거 직전까지 전문가들은 두 당이 원내 제1당 자리를 놓고 130~140석 싸움을 벌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빗나갔다. 새누리당의 완벽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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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놀라운 반전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선거를 치르기 전 민주당은 투표율이 60%를 넘어야 이길 수 있으리라 전망했는데, 실제 투표율은 54.3%로 집계됐다. 2004년 17대 총선(60.6%)보다는 6.3%포인트 낮았지만, 2008년 18대 총선에 비하면 8.2%포인트 오른 수치다. 하지만 지난 두 번의 총선 투표율과 단순비교해 이번 투표율이 높았거나 낮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현실적으로 이번 투표율이 60%를 넘기기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서 교수의 분석은 이렇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불었던 17대 총선에서도 유권자 10명 가운데 4명은 투표를 하지 않았다. 야권의 대선 참패 여파가 강하게 작용한 18대 총선 때는 기권자가 더욱 늘었다. 지난 8년 동안 투표권을 가진 사람 가운데 두 번 모두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이 40%는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선거에서 두 번 연속 기권한 사람이 세 번째 투표에 참여할 확률은 매우 낮다. 더구나 2004년 이후 투표권을 갖게 된 유권자의 투표율이 100%가 될 수도 없다."
이렇게 보면 투표율 54.3%는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야권 연대와 무상급식 등 복지 의제로 야권이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낸 2010년 지방선거 투표율(54.5%)과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즉, 새누리당 승리 또는 민주당 패배의 원인을 투표율에서 찾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걸까? <한겨레21>은 19대 총선 결과에 이변을 일으킨 '네 가지'를 짚어봤다.
1. 정권심판론은 왜 파괴력이 없었나
일반적으로 유권자가 지지 후보 또는 지지 정당을 결정하는 과정은 두 단계다. 첫 번째는 '집권세력 평가'다. 집권세력이 잘한다고 판단하면 그들을 선택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간다. '야당이 대안으로서 자격을 갖추었느냐'를 평가하는 것이다. 즉, 야당이 선택받으려면 대안으로서 합격점을 받아야 한다. 집권세력이 아무리 인기가 없어도, 무능해 보이는 야당은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2년 영국 총선이다. 당시 영국은 존 메이어 총리의 보수당이 집권했는데, 선거를 앞둔 여론조사에서 내내 닐 키넉이 이끄는 노동당에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임 총리인 마거릿 대처가 토지·건물 등의 소유주에게 부과하던 고정자산세를 폐지하는 대신 18살 이상이면 재산·소득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세금을 내도록 한 주민세를 도입하자 영국 국민은 거세게 반발했다. 대처가 물러나고 메이어가 총리직을 이어받았지만, 10%에 육박하는 실업률과 걸프전 참전 결정 등으로 보수당의 총선 패배는 현실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총선에서 노동당은 보수당을 이기지 못했다. "유권자들은 키넉이 영국을 이끌어갈 적임자라고 생각하지 않았"(<파워게임의 법칙> 딕 모리스 지음, 세종서적 펴냄)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진 노동당의 새 당수가 된 토니 블레어는 "1992년 총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걱정한 것은 노동당의 변화 여부가 아니라 그런 변화가 피상적이라는 점이다. (중략) 이 총선에서 노동당이 패배한 이유는 그 이전의 3차례 총선과 마찬가지로 간단하다. 사회가 변했는데, 우리는 그에 발맞출 만큼 제대로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앞의 책)이라고 분석했다. 블레어의 '노동당 우경화' 논란과는 별개로, 이런 분석은 야당이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지 못하면 정권심판론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이번 총선 결과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민주당은 줄기차게 정권심판론을 제기했고, '이명박근혜'라는 말을 만들어내며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똑같은 심판 대상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정책이 실종됐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선택받을 대안으로서 민주당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정권심판론에만 의존했고, 공천 잡음과 '김용민 막말 파문' 등으로 되레 '역심판론'으로 역공까지 당했다.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등 미래지향적 의제와 정책을 주도해 승리한 2010년 지방선거,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와는 크게 달랐다. 서복경 교수는 "선거 기간 내내 민주당은 네거티브만 열심히 했을 뿐,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투표일 직전까지의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부동층의 4분의 3가량이 야권 성향인데 이런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2. 강원·충청은 왜 야당을 외면했나
영·호남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지역적 기반이라면, 강원·충청은 상대적으로 실리, 즉 '어느 세력이 우리에게 이익을 주는가'를 따지는 지역으로 볼 수 있다. 보수 성향이 강하고, 충청의 경우엔 '지역 맹주'가 되고 싶어 하는 정당이 있는데도 그렇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이 지역 광역단체장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이다. 강원은 2010년 지방선거와 이듬해 보궐선거에서, 충청은 남·북 모두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인 이광재·최문순 도지사와 안희정·이시종 도지사를 선택했다.
하지만 4·11 총선에서 강원은 지역구 9석을 모두 새누리당에 몰아줬다. 특히 이번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가 나뉜 원주갑·을은 모두 민주당이 이길 것이라 예상될 정도로 '야도 강원'의 중심지로 주목받았고, 원주시장·원주 지역구 강원도의원 5명 등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기에 민주당으로선 뼈아픈 패배였다. 충청은 25석 가운데 절반에 이르는 12석을 새누리당이 차지했다. 그중에서도 의석이 8석인 충북은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전석을 석권했고 18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6석을 차지했지만, 이번엔 새누리당이 5석을 얻어 전세가 역전됐다. 이런 '중원의 선택'은 결국 전체 총선의 승부를 가르는 결정타가 됐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물론 민주당 인사들조차 "당 지도부가 충청·강원을 새누리당에 헌납했다"고 입을 모은다. 한 고참 당직자는 "명백히 공천 실패다. 새로운 인물로 교체하지 못했고, 지역공약을 개발하지도 못했다. 더구나 정권심판론 말고는 아무런 대안이 없으니 이 지역의 야권 지지층이 실망했다"고 말했다. 가령 충북 보은·옥천·영동은 자유선진당과 민주당을 오가며 5번이나 당선된 이용희 의원의 지역구였는데, 민주당은 이 의원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자 그 아들인 이재한씨에게 공천을 줬다. 또한 충청 현역 의원들 가운데 관료 출신으로 당 안에서도 보수적이라고 비판받는 이들 대부분을 경선을 거치지 않고 단수로 공천해 비판을 자초했다.
이 지역을 '잡은 물고기'라 여기고 당 지도부가 선거운동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강원 지역을 세 차례나 방문했고, 충청 지역 역시 여러 차례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충청만이 새누리당을 살릴 수 있다" "강원도민 여러분만 믿고 가겠다"는 식으로 낮은 자세를 취하며 유권자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이다. 반면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충북과 충남 지역을 각각 한 차례 방문하는 데 그쳤다. 무엇보다도 당 전체가 수도권과 낙동강 벨트에 올인하다시피 해 이 지역 유권자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낙동강 벨트 승리로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는 민주당 지도부의 선거 구호가, 역설적으로 다른 지역 주민들을 '정권 교체와 무관한 사람'으로 배제하는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 컨설턴트는 "모든 선거는 기본적으로 구도와 텃밭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물과 메시지도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며 "충청·강원 지역이 이전 선거에서 민주당을 선택한 건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싫어서였는데, 민주당은 이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오만하게 굴었다. 여기에 원래 보수 성향이 강한 이 지역의 특성상 박근혜 바람이 더욱 강하게 불어 민주당이 패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3. 수도권은 왜 고립당했나
4·11 총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수도권이 전체 판세를 좌우한다'는 오랜 공식이 깨진 것이다. 민주당은 수도권 112석 가운데 절반이 넘는 65곳에서 이기고도 총선 참패를 면치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결과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균열, 도시와 농촌의 균열, 20~40대와 50대 이상의 세대 균열이 중첩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선거 막바지로 가면 어느 후보와 정당을 지지할지 결정하지 않았지만 투표할 의향이 강한 '적극적 유보층'의 선택이 중요해진다. 투표 직전까지 지지 결정을 유보하는 이들에겐 선거 막판의 돌발 변수가 마음을 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고, 이 결정이 접전 지역의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숨은 표'라고 부르기도 하는 유권자가 바로 이들이다. 이번 총선의 수도권 고립 현상은 적극적 유보층의 분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조성대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선거 한 달 전부터의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하면, 선거 열흘 전만 해도 투표자의 40% 가까이가 적극적 유보층이다가 선거 사흘 전엔 20%가량으로 줄어든다. 그런데 이들이 분포하는 지역이 주로 서울이고, 세대로 보면 20~40대가 가장 많다"고 말했다. 조 교수의 설명을 참조하면, 적극적 유보층의 50% 이상이 수도권 거주자인 데 비해 경북이나 호남 등의 거주자는 5~8%에 불과하다. 각 지역 안에서도 도시에선 이 비율이 높은 반면, 농촌에선 낮아진다. 세대별로는 20~40대가 76%를 차지한다.
그런데 적극적 유보층이 최종적인 선택을 하는 데 영향을 끼친 변수를 따져보면 '김용민 막말 파문'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은 30% 미만이고, 정권심판론, 민간인 불법사찰 등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은 그 두 배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여당 표'가 3분의 1, '야당 표'가 3분의 2였던 셈이다. 이렇게 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농촌의 선거 결과가 판이했던 이유가 조금은 드러난다. 젊은 인구가 밀집한 서울 등의 도시에선 적극적 유보층이 많았기 때문에 민주당이 이길 수 있었던 반면, 고령층이 많고 적극적 유보층이 적은 비수도권이나 농촌에선 새누리당이 압승할 수 있었던 셈이다. 서울·도시의 20~40대가 주로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의 여론과 실제 선거 결과가 달랐던 것도 이런 적극적 유보층의 영향으로 풀이할 수 있다.
4. 박근혜는 왜 '선거의 여왕'인가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선거'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이번 총선과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서로 주고받는 영향력이 크다. 공천 신청자가 적어 신청 기간을 연장할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새누리당은 박 위원장의 '개인기'에 힘입어 단독 과반을 유지하게 됐다. 이재오·정두언 의원 등 살아 돌아온 이명박계는 두 자릿수가 안 되기에 당장 그에게 각을 세우기 어렵고, 정몽준 의원 등 잠재적인 경쟁자도 총선 승리의 지분을 논하기는 머쓱한 처지다. 박 위원장은 명실공히 독보적인 대선주자로 인증받았다.
박 위원장을 이렇게 만들어준 기반은 '집토끼'인 보수층과 '산토끼'인 중도층으로 나눠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장 방문이나 지역 유세에서 손 한 번만 흔들어줘도 수십 표가 몰려든다고 할 정도로 높은 그의 대중적 인기는 주로 보수층에서 비롯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이들은 박정희 향수가 강하다. 박정희 시대 고속성장의 신화를 그리워하고, 그가 독재라는 '약간의 잘못'은 했지만 국익을 위한 일만 했을 뿐 부정부패를 저지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보수층은 박 위원장이 자신의 아버지처럼 '좋았던 시절'을 재현하리라 기대한다. 새누리당이 이번 총선에서 이긴 건 이런 박 위원장을 살려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민심에 크게 힘입었다. 한편 그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점은 사리사욕을 채우려 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의 근거가 되고, 총탄에 부모를 잃은 불행한 가족사는 인간적인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된다. 보수층의 기대와 믿음, 지지를 떠받치고 증폭시키는 건 족벌 언론이다.
하지만 박 위원장의 진짜 훌륭함은 중도층을 지지자로 끌어왔다는 점이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4월12일 YTN 라디오 <강지원의 출발 새아침>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가장 잘한 점은 유권자들에게 쇄신하는 이미지를 주면서도, 현 정부와 전면적인 결별을 통해 전쟁으로 가지 않고 조화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천에서 이명박계를 대거 탈락시키면서도 이재오 의원 등 상징적인 인물은 살려둬 논란의 불씨를 제거했고, 이명박 대통령과 선긋기를 하면서도 탈당 요구를 하지 않은 것이 좋은 예다. 과격하다는 이미지를 주지 않으면서도 쇄신 노력을 보여줌으로써 기존 지지층 이탈을 막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 위원장이 새누리당을 쇄신했느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지지자를 끌어오는 데서 중요한 건 무엇을 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는 국기를 뒤흔든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두고선 '불법사찰 방지법'을 제정하겠다고 했다. 또한 새누리당은 동생 부인 성폭행 미수 의혹을 받는 김형태 당선인(경북 포항남·울릉)과 논문 표절 의혹을 산 문대성 당선인(부산 사하갑)의 경우 사실관계가 밝혀지는 대로 출당 등 조처를 취하겠다고 했다. 사실 불법사찰은 처벌할 법이 없어서 저질러진 게 아니므로 권력기관이 안 하면 되는 일이다. 논란을 빚는 당선인들도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공천을 취소하면 될 일이었다. 당명 교체, 경제민주화 약속 등도 꼼꼼하게 내용을 살피지 않는 이상 새누리당의 변화 노력으로 읽힌다. 그 결과 정권심판론과 '노무현'에 의존했던 민주당을 '과거회귀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정작 유신정권의 후예인 새누리당을 '미래지향 세력'으로 위치지우는 프레임이 먹혀든 것이다. 탁월한 이미지 정치다.
총선 뒤에도 평가가 다른 두 당
총선이 끝난 지 이틀째 되는 4월13일 민주당 원로들은 "의석수로는 졌지만 아깝게 떨어진 사람이 너무 많고, 특히 부산·경남에서는 득표율이 노무현 전 대통령 때보다 10%포인트 이상 늘어나 질적으로는 대약진했다. 우리 미래를 제시하는 민심의 바로미터인 수도권에서는 이기지 않았느냐"고 입을 모았다. 반면 새누리당에선 "'박근혜 대세론'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더 철저하게 대중이 살아가는 현장으로 가야 하고, 유권자가 우리 당에 과분한 의석을 줬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지금으로선 박 위원장의 독주가 지속될 분위기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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