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박정희대통령에대하여 모르면 배워라,,

여동활 2011. 9. 17. 12:06

요즘 새로 부상하는 안철수나 서울시장으로 부상하는 박원순, 그리고 대통령의 대망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은 미래학 또는 미래기술예측을 모르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오는 24일 지식경제부의 '융합기술 국제컨퍼런스'에 기조연설을 하러 방한하는 제롬 글렌 유엔미래포럼(Millennium Project) 회장이 늘 강조하는 말이다. 글로벌 미래예측 싱크탱크인 유엔미래포럼의 창시자는 1970년대 최대 줏가를 올렸고 시나리오기법을 만든 허만 칸 박사다.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과 허먼 칸 미래석학 사이엔 비사가 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혼자만의 아이디어가 아니고 미국의 미래석학 허만 칸 등 미래학자들의 조언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외국경험도 없고 세계화 글로벌화가 시작조차 않은 시점에 이미 외국의 미래석학을 자주 청와대로 불러 조언을 청하고 그들의 미래기술예측을 과감하게 받아들여 행동하였다는 사실이다.

유엔미래포럼의 창시자인 세계적인 석학 허먼 칸 박사는 사회학자며 미래학 최고석학(1922~1983)으로 1947~1961년 랜드코퍼레이션(RAND Corporation 미 국방성 산하 미래연구기관) 연구원, 1961년 허드슨 연구소를 차려 회장을 맡는다. 그때부터 그의 비밀스런 한국방문이 시작되었다. 1960년대 말 제롬 글렌 유엔미래포럼 회장이 당시 허드슨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방한 서류 준비와 지원을 한 것을 최근 고백하였다.

박정희의 업적 중 큰 정책은 1970년 포항제철 착공과 경부고속도로 개통, 1971년 2월 9일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발표 및 그린벨트 지정, 1972년 10월 25일 정부 새마을운동계획 발표 등 수도 없이 많다. 박정희대통령이 허먼 칸을 처음만났을 때 그는 배고픈 백성에게 배불리 먹일수있는 쌀개량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허만 칸은 한국의 노동력이 금과 같아 이들에게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케하여 수출을 하여 돈을 벌어 거의 값이 나가지 않는 쌀을 사서 먹이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제시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크게 환호하며 수출대국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고비 고비마다 허먼 칸이라는 미국의 미래석학을 한국으로 불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비사가 사라질 뻔 하다가 최근 칸이 쓴 책자 <1979년이후의 세계경제>(World Economic Development 1979 and Beyond)를 찾아낸 것이다.

여기에 보면, 허만 칸이 미래성장동력을 예측해 준 것이 한국 경제개발계획의 산업선택의 주된 역할이었고, 특히 전태일 서울평화시장 노동운동 분신사태 직후에 방한한 허먼은 미래사회는 노동자들이 권익을 주장하고 똑똑한 개개인이 주권을 가지는 사회가 되지만, 한국은 농촌인구가 많아 농촌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고, 노동착취라는 말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이런 운동을 ”그린 프로젝트“즉 환경운동이라고 하여 농촌 노동력을 우선 한가하게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 미래학 분야 석학인 허먼 칸 박사를 예방을 받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국가기록원

그래서 도랑치고 가재잡고 저탄소 에너지절약운동 환경운동을 벌이는 동시에 짚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고 흙집을 개량집으로 바꾸고 아낙네들이 물 길러가서 2시간 허비하던 시간을 부엌에 펌프를 설치 시간절약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하여 한가해진 농촌 노동력을 서서히 교육시켜 도시노동자로 변신시켰다. 이 '그린 프로젝트'는 나중에 '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1972년 10월 25일에 박정희에 의해 발표된다.

허먼 칸은 이 책에서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은 미국인들에 의해 외국 홍보용으로 우선 계획되었다. 한국 정부가 1962년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세계은행 등 원조금, 대외차관을 결정하는 미국인 자문위원들에게 우선 호감을 사기위해 결정되었다. 세계은행 등 외국투자전문가들이 개발 국가에 차관이나 금융지원을 하려면 자신의 정부에 한국개발청사진을 제시, 미래에 차관회수가 가능함을 보여주어야 했다. 경제개발계획은 또 한국정부를 강하게 보여주고,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시켜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국민들에게 몇 년 후 경제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비전을 제시, 국민지지 획득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시간이 지나다보니, 계획이나 약속이 실현되고 그 성과에 정부 자체도 놀랄 만큼 초과 달성하는 결과가 나왔다. 국민들에게는 단순히 살기가 더 좋아진다는 말보다, 계획표나 수치를 보여주어 정부의 목표가 생기고, 목표달성을 위해 ‘허리띠 졸라매기’를 하여 목적초과달성에 국민통합까지 가능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허먼 칸이 한 조언의 예로, “한국 등 개발도상국은 정권유지를 위해서도 미래비전을 보여주고, 국민들에게 목표를 만들어주어, 그 목적이 달성되면 잘 산다는 미래비전, 미래계획(Images of Future)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 즉 5개년 개발계획은 아주 중요하다” 고 말했다.

또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1962~1966) 때는 한국이 ①자원도 없고 가난한 한국에서 경제발전계획이 쌀 생산 증가, 농업증진에 주력했지만 ②1964년에 계획 전면 수정, 수출주도 경제로 섬유수출 시작, 투자는 산업투자로 선회하였고, ③경제개발5개년 첫 번째 목표수정 가능한 것은, 유연한 경제 즉 flexibility를 강조하여 필요시 과감히 수정, 농산물에서 공산품으로 전환한 것이 주된 이유라고 분석하였다.

요약하면, 농업 생산력을 확대로 소득 증대, 전력·석탄의 에너지원을 확충, 유휴자원의 활용, 고용의 증대와 국토의 보전·개발, 수출을 증대하여 국제수지를 균형화, 기술예측을 통해 부상기술을 미리 파악하여 국가를 재건한 점이 장점이라고 분석하였다. 특히 제조업에서 수입대체산업과 수출산업 확충, 석유정제·비료·화학섬유·전기기계, 전력·수송·항만·창고의 확충을 조언하였다고 했다.

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7~1972) 말기에 ①수출위주 경제로 변환, 1차 계획에서 이미 2배로 초과달성에 고무. 미래학자 조언 따라 그 다음 사회 인프라 깔기, 도로, 철로, 항만, 통신시설 시설에 투자할 것을 조언하였고, ②인플레 등을 막기 위해 국영금융기관이 나서고, 20% 화폐평가절하 등을 과감히 밀고 가는 힘이 있는 한국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하였고, ③국민들의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 즉 허리띠를 졸라매는 국민통합이 가능한 문화(good culture), 개발을 선호하는 강한 국민의지, 대통령의 리더십(독재 또는 정치적 결정 혹은 특혜를 준다는 반대에 신경 쓸 필요 없음)은 역사가 판단한다고 조언하였다. 한국의 자유신경제학자 등장이 박정희를 지원하므로 박정희 정권은 성공할 것이라고 해외 만방에 강의를 하면서 천명하기도 하였다.

허먼 칸은 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2~1977)을 세울 때는 ①노동인권 이슈 시작으로 도시 산업개발에서 새마을운동으로 전환, 농촌개발로 선회하라고 조언하였고, ②미래산업 예측 조언에 따라 중공업, 화학공업 투자를 시작하라고 조언하였고, ③정부가 은행 금융을 국영화시켜 조절 가능한 투자자본 보유, 중공업드라이브 정책이 중요하다고 조언하였다.

허먼 칸은 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7~1982) 때 가장 많이 방한하였는데 이 때는 ①산업 중점이 전자, 기계, 조선 등으로 옮겨간 이유는 미래석학의 자문으로 외국자본, 차관 투여 없이 할 수 있는 산업이었기 때문이라고 조언하였고, ②한국은 노동단가가 높아지고 제조업이 동남아로 이전 시 미래전략은 인적자원개발(human)이 산업(business)보다 훨씬 중요한 시기를 맞으므로 교육에 집중투자를 조언. 특히 과학기술발전의 급속한 변화가 오므로 기술에 집중 투자할 것을 건의하였다.

박정희는 70년대 후반에 '80년대 고도성장을 위한 전략', '2000년대의 국토구상'이라는 미래예측 구상을 하여 정책을 수립하였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경제사회면에서 '보릿고개'로 표현되는 기아선상에서 정신면에서는 패잔병과 같은 패배감과 절망감이 팽배하였다. 1964년에 우리나라는 천신만고 끝에 수출 1억불을 달성한 이래 매년 40%의 성장률을 유지하여 1970년도에는 10억 달러의 수출 성공은“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박정희의 지도력이었고 특히 70년대의 국가최고정책인 중화학공업화 정책, 대망의 수출100억불, 1인당 GNP 1,000불 달성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데 미래학자의 조언이 있었다.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에 나올 후보는 반드시 급변하는 사회에서 미래기술예측을 통해, 10~20년후에 부상할 융합기술들이 무엇인지 파악을 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미래비전 작업을 하는 사람만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

글/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