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마을 운동 전도사가 된 콩고민주공화국의 은쿠무 프레이 롱굴라 박사. 한국유학 중 새마을 운동에 관심을 갖고 배운 후 한국과 콩고를 오가며 콩고의 18개 마을에서 새마을 운동을 전파하고 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국빈 방문 콩고 대통령과 함께 온 은쿠무 박사
'콩고 새마을운동의 선각자'
"비전·의지·행동 함께 제시 18개 마을에 희망을 일궜죠"
"새마을운동을 배우고 싶습니다. 내 조국을 가난에서 구하고 싶습니다."2003년 한국에서 유학 중이던 은쿠무 프레이 롱굴라(49) 박사는 114에 전화번호를 물어 새마을연수원을 찾았다. 그리고 엉겁결에 300명의 한국 농촌 아저씨, 아줌마와 섞여 2박 3일 동안 교육을 받았다. 그렇게 은쿠무 박사가 콩고민주공화국에 전파한 새마을운동은 현재 바콩고, 반둔두, 킨샤사 등 3개 시도 18개 마을에 1075명의 회원을 확보하며 결실을 보고 있다.
콩고 새마을운동의 선각자로 불리는 은쿠무 박사는 29일 "더는 미룰 시간이 없었다. 내 조국은 너무 가난했고, 한국이 너무 부러웠다"고 말했다. 식민지, 전쟁, 빈곤이라는 똑같은 경험을 가진 한국과 콩고였다. 그러나 한국은 빈곤에서 탈출했고, 공업용 다이아몬드 생산 세계 1위 콩고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71달러(2009년)에 불과했다. 발전 모델을 배우기 위해 유럽에도 가봤지만, 콩고에 적용할 수 없는 모델이었다.
"자원도 많고 땅도 넓은 콩고가 한국처럼 못하는 이유가 뭔가"라는 고민이 그를 감쌌고, 눈물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2000년 강릉에 갔던 은쿠무 박사는 60~70년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알게 됐고 "이것이 내가 찾던 정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004년 여름방학 때 콩고에 돌아간 은쿠무 박사는 시범마을 4~5곳을 정했다. 유엔, 유니세프, 세계식량기구 등 유수한 세계기구들이 빈곤 탈출을 지원했지만 모두 고개를 젓고 물러난 곳이었다. 원조용으로 일본이 준 밀가루는 빈곤민에게 지원되지 않고 공공연히 시장에서 거래되는 실정도 목격했다.
"원조로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새마을운동처럼 잘살겠다는 비전과 의지, 행동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며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 새마을운동을 설명했고, 3개년 계획으로 '농지 만들기(new farm)'→ '내 농지(my farm)'→ '내 집(my house)'이라는 계획을 전파했다. 콩고의 엘리트 청년들은 "해외 유학파면 장관이나 정치를 하지 무슨 새마을이냐"고 물었지만, 그런 질문을 했던 청년들이 이제 시골로 내려가 새마을 지도자로 성장했다.
2005년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이 방한(訪韓)했을 때, 그는 새마을운동을 설명하는 자료를 대통령 비서에게 건넸다. 콩고 정부도 새마을 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그의 활동을 측면에서 돕고 있다. 이날 은쿠무 박사는 국빈 방문 중인 카빌라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서울의 한 호텔 로비에서 설명 자료를 들고 서성거렸다.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적이 없다. 이번에는 꼭 제대로 설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50~60년대 외국에서 한국 대통령을 한번 만나려고 발 굴렀던 산업화 주역들의 모습이 이랬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아프리카 외교 강화 차원에서 콩고민주공화국을 새마을운동의 '아프리카 거점'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카빌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콩고의 재건사업 지원 문제 등을 논의했다. 은쿠무 박사는 "콩고뿐 아니라 이제는 우간다·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다른 나라에도 새마을운동을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작지만 큰 나라다. 무엇보다 이 새까만 사람을 믿어주고 도와줬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의 가슴에는 새마을운동 배지가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