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산업화 주역 아버지와 화해했어요”
박노해 시인의 아내 김진주씨
아버지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졌을 무렵, 딸은 “지난 일을 글로 옮겨 보시라”고 권한다. 2003년 말이었다. 그 뒤 1년 동안 부녀는 집필에 몰두했다. “매 주말 만나 같이 토론하는 시간을 아버지가 참 좋아하셨다”는 게 김씨의 기억이다. 김씨가 책을 낸 데는 “드라마틱했던 아버지의 삶을 옛이야기로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는 바람이 컸다. 아버지의 일생 중 가장 극적인 장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등장한다. 천신만고 끝에 개발한 국산라디오를 창고에 쌓아놓고 실의에 빠져 있었던 1961년.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이었던 박정희 장군이 부산 연지동 금성라디오 공장을 불쑥 방문한다. 그 자리에서 김씨의 아버지는 “일본처럼 전자공업이 크게 일어나려면 일제 밀수품과 미제 면세품 라디오의 유통을 막아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며칠 뒤 ‘밀수품 근절에 관한 최고회의 포고령’이 발표되고, 공보부 주관으로 ‘전국의 농어촌에 라디오 보내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돼 금성라디오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김씨는 “아버지는 박 전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봉자셨다”고 말한다. 박 전 대통령에게서 ‘대통령 산업포장’까지 받았던 아버지와 안정된 직업을 내던지고 구로공단의 보조미싱사가 돼 노동운동을 하는 딸. 부녀가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다. 아버지는 “너희가 전쟁을 아느냐”며 딸을 나무랐고, 딸은 아버지를 ‘군사독재와 자본가의 하수인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책 속에는 두 세대의 대립과 화해의 순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조국 근대화의 주역으로서 우리 세대는 위대했지만, 다음 세대에게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임무를 떠넘기게 됨으로써 우리 사회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는 아버지의 글에 딸은 “아버지가 우리 삶의 지평을 얼마나 밝게 열어 주었으며, 한 엔지니어로서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던가를 이해하게 됐다”고 화답한다. 김씨는 책 출간을 앞두고 아버지가 개발한 국산라디오 1호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일화를 전했다. 그의 가족도, 제조사인 LG그룹도 그 라디오를 갖고 있지 않았다. 전국에 서너 대뿐이라는데, 가격이 수천 만원을 호가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진밖에 찍을 수 없었다는 김씨는 “아버지 세대가 얼마나 바쁘게 앞길만 응시하며 달려왔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출처]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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