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인천 괭이부리 부두의 박 대통령 일화

여동활 2009. 2. 2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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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괭이부리 부두의 박 대통령 일화
<기고> 검은 안경 쓴 코로나 택시 손님
2009-02-22 김경만(대한싸이로 근무)

60년대 그 시절은 구경거리도 별로 없었다. 불 나면 불구경, 싸움 나면 싸움구경이고, 저녁 먹고 어느  집에 모여 텔레비전 보는 것이 영화구경 다음가는 즐거움이었다.
어느 극장에 쇼가 들어왔다 하면 혹시 영화배우라도 볼까 해서 극장 앞을 어슬렁거리는 것이 어지간히도 구경거리에 굶주렸던 시절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인천에서 살고 있다.

어느날 거짓말 같은 소문이 퍼졌다. 괭이부리에 대통령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니 박정희 대통령이 인천에, 그것도 하필이면 지저분하고 볼 것도 없는 괭이부리 바닷가에 뭐하러 왔단 말인가.
믿거나 말거나 소문이 삽시간에 쫙 퍼져 사람들이 우르르 괭이부리로 내려갔다. 박 대통령이 좋고 싫고는 문제가 아니다. 무조건 대단한 구경거리였다.
그러나 괭이부리에 사람들이 몰려갔을 때 박 대통령은 없었다. 벌써 떠났다고 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괭이부리 사람들이 전해주는 것이고, 또 박 대통령이 인천 국회의원 유승원씨(육사8기)와 만난 자리에서 껄껄 웃으면서 들려주었다고 한다. 괭이부리가 속해 있는 만석동에서 약방을 하시던 나의 부친은 공화당 당원이었는데, 괭이부리 사람들과 유승원 의원 양쪽으로부터 박 대통령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나도 알게 되었다.  

인천에 온 박 대통령은 점퍼를 입고 검은 안경을 썼는데 수행원도 없이 달랑 혼자 코로나 택시를 타고 왔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랄 노자’다. 대통령 승용차가 떴다 하면 길거리 교통순경들이 한눈에 알아보고 상부에 보고를 해 관계 기관장들이 잽싸게 달려나오기 때문에 택시를 탔다는 것이다.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서울에서 인천 바닷가를 왕복하자고 코로나 택시를 잡았던 것이다. 모처럼 장거리 손님을 만나 땡잡은 운전사는 경인국도를 신나게 달려왔다. 그런데 성미 급한 손님이 “빨리 가자”고 하는 바람에 가속기를 밟다가 인천 구시가지의 초입인 신흥동 로터리에서 차선위반으로 교통순경에게 걸리고 말았다.

운전사는 밖으로 나가더니 순경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장거리 손님을 태운 수입이 짭짤한지라 몇푼 적선하는 셈치고 그냥 빠져나갈 요량이었다.
그때부터 진풍경이 벌어졌다. 순경은 주머니의 돈을 꺼내 도로 위에 놓고 운전사에게 한참동안 일장 연설을 하는데, 차 안에서 박 대통령은 운전사가 고개 숙여 돈을 바라보면서 죄인처럼 두손을 앞에 모으고 연설을 듣는 것을 무척 재미있게 바라보았다고 한다.

교통순경의 연설이 끝나자 운전사는 도로 위에 놓인 돈을 주워갖고 부끄러운 얼굴로 돌아왔다.
박 대통령이 운전사에게 묻기를 “뭐라고 합디까? 왜 돈을 안받는 거요?”하니 “자기가 돈을 받으면 인천이 다 그런 곳으로 알 것 아니냐”면서 “타지방에서 왔으니 훈계하고 돌려보내는데 어디 가든지 법을 지키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박 대통령이 검은 안경을 벗고 “나 모르겠소?”하고 말하니 운전사가 꽥 비명을 지르고 졸도할 지경인지라 그저 덜덜덜 떨고만 있는데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으시오”하면서 뭐라고 뭐라고 당부를 하니 운전사는 “아 예예”하고 설설 기는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졸지에 ‘1호차’가 된 코로나 택시는 흥국상사 기름탱크가 있는 괭이부리 부두까지 왔다. 그런데 목적지에 거의 도착한 택시는 좁은 비포장 도로에서 탱크롤리 차를 피하다가 갯바닥에 바퀴가 빠져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밖으로 나가 여럿이 차를 밀어야 하는데, 어째 오가는 사람들을 보아하니 허름한 옷차림에 모두가 찌푸린 얼굴들이라 동네 인심이 곱지 않은 것 같았다.

이때 박 대통령이 운전사에게 “나는 괜찮으니 저 사람들 얘기 좀 들어보라”고 시켰다. 물론 검은 안경을 쓴 택시 손님이 누구인지 절대 말해선 안되는, 대통령과 운전사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운전사가 몇 사람에게 일일이 담배를 권하며 이런저런 말을 나누는 동안 박 대통령도 차 안에서 느긋하게 담배 한대를 피웠다.
잠시후 그 사람들이 운전사에게 담배 얻어 피운 값으로 차 꽁무니에 달라붙어 “영차”하고 차를 도로 위로 밀어올려주었다.

그런 다음 박 대통령은 운전사로부터 민심 동향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무엇인고 하니, 흥국상사의 탱크롤리 차가 동네를 왔다갔다 하는데 도로 포장을 안해줘서 진 날은 장화를 신어야 하고 마른 날은 흙먼지 때문에 빨래를 널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흥국상사 사장, 인천시장부터 나라 꼭대기(청와대)까지 싸잡아 욕사발을 퍼붓더라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고, ‘1호차’ 코로나 택시는 흥국상사 기름탱크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서 운전사는 박 대통령이 볼일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현장 확인을 하러 나온 대통령을 보고 흥국상사 현장 사람들이 깜짝 놀란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그 전에 택시가 갯바닥에 빠졌을 때 박 대통령을 눈치챈 사람이 있었다.
여럿이 차를 밀면 손님도 밖에 나와 힘을 보태야 하거늘 택시 안에서 꼼짝하지 않는 남자가 되게 건방지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택시를 밀었던 삼미사(목재회사) 잡부 한사람이 택시 손님을 유심히 살펴보니 “어랍쇼? 아니 이게 웬일인가…” 긴가민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동네 식당 주인에게 택시 손님의 인상착의를 말하니, 내 부친의 친구분인 식당 주인 김대홍씨가 “틀림없다”하고, 그 소식은 담박에 인천시청으로 들어갔다. 그랬는데 시청에서는 “각하가 오시면 청와대와 중앙정보부에서 연락이 온다. 그럴 리가 없다”하다가 아무래도 찜찜해서 청와대에 알아보니 “각하는 부재중인데 행선지는 말해줄 수 없다”하는 게 아닌가.

인천시장이 흥국상사에서 진짜 비상이 걸린 것을 확인하고 달려가려는데 “각하는 벌써 시청으로 떠나셨다. 타고 오신 차는 전용차가 아니고 코로나 택시 ○○○○번”이라는 긴급 첩보가 관계기관이 쫙 전달되니, 곳곳의 교통순경들이 코로나 택시를 향해 경례를 올려붙이고 시청으로 들어갈 때는 기관장들이 일제히 허리 굽혀 인사를 하는데 택시 운전사는 그야말로 덩달아 구름 위를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시정보고를 듣고 나서 경기도경 국장에게(경기도경찰국이 인천시청 아래에 있었다. 지금의 중구청 건물이 그때 인천시청이다) “경찰 교육을 아주 잘 시켰더라”며 신흥동 로터리의 교통순경을 극구 칭찬했다. 그러자 경찰에서는 “신흥동 로터리에 나갔던 놈이 누구냐. 그놈한테 밥 사주고 술 사줘라”는 소리가 나오고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흥국상사 탱크롤리 차가 지나다니던 길은 얼마 후 도로포장을 했는데 경인고속도로보다 두껍고 튼튼하다고 해서 또한번 화제가 되었었다.

대통령이 괭이부리에 나타난 것은 공장 연료난 때문이었다고 한다. 벙커C유를 공급한다고 해서 공장들이 보일러를 바꾸었는데 제대로 공급이 안돼 애로가 많다는 민원이 여러 차례 청와대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흥국상사에서 대체 뭣 때문에 꾸물거리는지 공급 현황과 문제점을 알아보기 위해 왔던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이 불시에 나타나는 것은 “준비된 보고는 필요없다”며 현장 보고를 중시하는 스타일 때문일 것이다.

박 대통령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괭이부리에 몰려간 것은 정치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好不好)에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60년대는 배도 무척 고팠지만 구경거리에도 굶주렸던 시절이었다. 먹을거리, 구경거리 모두가 모자라는 것뿐이었다.
그 시절 우리 동네 여관집은 천정 아래 벽을 뚫어 전등 하나에 방 두개를 밝혔는데 손님들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할 여유가 없을 만큼 전력난, 에너지난이 심각했었다.
그런 때에 연료난 때문에 박 대통령이 괭이부리에 왔고, 그것도 코로나 택시를 타고 왔더라는 이야기는 산업화 세대인 오늘의 6070 인생들에게 즐겁고 가슴 한구석이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의 괭이부리를 가보면 거기는 세월의 흐름이 멈춘 듯 낙후지역으로 남아 있어 가슴이 아프다. ◎

[김경만 구술 / 좋아하는 사람들 편집국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