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활 입니다

박근혜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한 여동활

여동활 2009. 2. 28. 00:44

 박근혜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한 여동활 작성자 : 진검승부 등록일 : 07-03-09 11:27
조회(201) 추천(3) 거부(0)
박근혜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한 여동활
"아직 박 대표의 손도 한번 잡지 못햇습니다"라며
허허 웃는 그는 주군을 위해 일하는것이 행복하다고..
2007-03-04 19:13:22  
◇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역사에서 또다시 한번 날까 말까 한 분이라고 주장하는 여동활씨 ⓒ
, 그의 시작은 이랬다. 지난 2004년 1월 2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극적 말로를 보여준 79년 10.26을 빗댄 “그때그사람들” 영화시사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고 박정희대통령 각하를 더 이상 매도하지말라”고 하는 피켓과 현수막을 온몸에 칭칭감고는 용산 CGV 시사회장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인 40대 후반의 남자가 있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역사에서 한번 만날까 말까 한 분으로 이만큼 먹고사는 것도 다 그분 덕분 아니냐”고 말했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쌀 밥에 고깃국을 먹여주신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눈먼 며느리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처럼 그는 “60~70년대 구로공단에서 힘들게 일하고, 최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하면서 갖은 고생을 할만큼 했지만 지금도 그분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2005년 5월에 그는 무엇보다도 이념적인 편향추세를 보이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오로지 구국으 일념으로 나라를 다스려 왔던 박정희정신을 전파하고 그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그들의 젊은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박정희를 사랑하는 단체(박애단)”란 카페를 개설해 카페지기로 활동을 시작했다.
◇ 그의 매장 앞 독특한 간판으로 일약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
,
8월에는 그의 화장품 가게 간판을 새로 달았다. 가로12M에 폭 1,7M의 대형 하얀간판에 검정 글씨로 “더이상 고 박정희대통령 각하를 매도하지 말자”였다.

자그마치 22자나 되는 긴 간판이름을 썼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뉴스감이겠지만 내용 또한 직선적이었고 대한민국에서는 제일 긴 간판이름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 간판을 보고 처음 찾은 기자가 오마이뉴스 기자였다. 그는 평소 오마이뉴스가 자신이 주장하는 보수적 지론과는 다른 논조를 펴는 매체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찾아온 기자에게도 분명한 어조로 주문하기도 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내가 주장한대로 정확하게만 써 달라고”

그는 그동안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해 왔지만 박정희시대때 많은 도움과 은혜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지금 비판받고 폄하되고 있는 박정희를 위해 누구하나 나서서 담대하고 대담하게 항변한번 하지 못하고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는것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일수 없어 이같은 간판을 달게 되었노라고 당당하게 설명했다.

그 기상천외한 이름의 간판을 달고나니 지역주민뿐만이 아니라 전국도처에서 다양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뭐 그따위 간판을” “간판 당장 내려라” “대단한 배짱이다” “할말을 대신했다”는 등 반응이 각양각색이었다.
◇ 국회앞에서 사학법 투쟁에 나선 여동활씨는 사학법이 통과되면 사실상의 적화라고 강경투쟁하기도 했다 ⓒ
,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한채 가게앞에 와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삿대질 하는 사람,옷을 벗어 제치며 스트립쇼를 하는 사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는 사람,사람들,

지나치는 학생들도 몇몇 와서 “독재자의 이름까지도 상술로 이용하느냐”며 거세게 항의하자 그도 지지 않고 항변에 나서기도 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전국주요매체부터 지방매체들까지 그 간판에 대한 논쟁들이 전국을 휩쓸기도 했다.

조선일보에 간판사진에 게재되고 몇줄 기사가 나가자 순식간에 누리꾼들이 500여개 가까운 댓글을 달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언제쯤 저 간판을 내릴거냐고 물었을때 당연하다는 듯이 그는 “그의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때...”라고 주저없이 대답했다.

그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박정희시대의 진정한 평가는 박근혜대통령이 탄생되는 순간이라고....그래서 그 이후 그는 박근혜 전 대표가 영남지역을 방문할때면 어김없이 현수막이나 피켓을 준비해 공항이나 역 또는 강연회장을 찾아 다니며 그의 방문을 환영했고 그가 던진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열성을 보였다.

2005년 10월 대구동구을과 영천 재,보선때는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자원해서 몇박몇일 밤을 새가며 선거운동을 은밀하게 돕기도 했다.
◇ 파월사령관 채명신장군 출판기념회에서 채장군과 만난 여동활씨 ⓒ
,
2006년 3월에는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이 총리에 지명되자 그의 총리지명의 부당함을 언론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평소 “특정인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한명숙 총리 내정자가 유독 박근혜 전 대표에게만은 비판적으로 유신공주,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난했는데 이렇게 편향적인 시각을 가진 여성이 국가의 총리 자리에 오를만한 인품과 자질이 되느냐”며 개탄하기도 했다.

2006년 5월 그는 1년전 자신이 직접 만든 “박애단”카페지기 자리를 홀연히 내놓았다. 카페 “박애단”은 1년만에 1,000명 이상의 카페회원들이 가입해 열성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고 박근혜 지원 카페규모면에서도 상위에 랭크될만한 수준의 카페였고 보훈병원에서의 봉사활동등을 통해 대외적 이미지가 한층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그는 “박애단”카페지기를 후임자에게 물려주면서 자신보다 더 유능하고 더 활동적이며 더 크게 외연을 넓힐수 있는 덕망있는 분을 영입하기 위해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자리를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임만은 분명했다.그를 잘 아는 지인은 “아름다운 퇴장”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난 5.31지방선거를 10여일 앞두고 초유의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서울시장 오세훈후보 지원유세차 서울방문에 나섰던 박근혜 대표가 의문의 사나이 지충호로부터 왼쪽 귀아래 10Cm가 난자되는 테러를 당했다.

박 대표가 백주의 테러를 당한지 불과 몇분후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와 “큰일났다”는 소식을 다급하게 전하면서 “도대체 한나라당내 박대표 경호원들이나 비서들은 뭐하는 사람들이냐”면서 분개했지만 그의 몸은 이미 세브란스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 새시대새물결 운동본부 전국조직 창립을 주도한 여동활씨는 제2의 새마을운동을 계승,발전,승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
그는 5일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병원과 경찰서,검찰등을 드나들며 박 전 대표 신변보호와 범인 지충호의 범죄행각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자신이 할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대표가 생명이 위협당하는 테러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기적 상황을 의연히 대처하므로서 국민들은 가녀린 여자가 아닌 위대한 지도자다움을 보여줬다는 평가와 함께 국민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5.31지방선거도 한나라당의 압승을 이끌어낼수 있게 되었다.

그는 5.31지방선거에서 압승의 일등공신은 박근혜대표라고 내게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는데 지난 2006년 12월 26일에는 한나라당이 한해동안 가장 이슈가 된 당내 7대뉴스를 정하면서 박근혜 대표의 테러사건을 언급하지 않자 분노를 터트렸고 “한나라당도 모래알처럼 붕괴될수 있다”는 칼럼을 써서 그간 한나라당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성토하기도 했다.

그는 10월 어느날 함께 서울로 가 보자고 해서 무작정 따라 나섰다. 서부역 근처에 있는 임시사무실에 몇몇 준비위원들이 모여 “제2의 새마을운동”이라고 주장하며 “새시대새물결운동” 본부결성을 위한 발기인 모임을 가졌다. 나는 그가 이 정도로 많은 준비를 내밀하게 하고 있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타에 시민들이 입장하는 장면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다. ⓒ
,
이어 12월 16일에는 전국각지에서 400여명이 모인 “새시대새물결 발기인총회”에서 그는 이 운동본부 의 추진위원장을 맡기로 했고 평소 그가 가진 지론대로 한강의 기적을 견인해낸 새마을운동을 계승하여 “가장 민족적인 범국민운동으로 승화시키자”고 주장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해가 바뀐 2007년 2월 중순, 그는 평소처럼 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모든 준비가 잘 되어 간다는 낭보와 함께 “이번 광주에서 열리는 전국창립대회에서 박정희와 새마을운동을 사랑하는 국민들은 돌팔매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모두 광주로 총집결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광주에서는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박정희정신을 이어가는 새시대새물결운동 전국대회가 열린다는 보도가 나오자 “웬 김대중컨벤션에서 박정희찬양이냐”고 항변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2월27일 오후 1시즈음 나 역시 영남토종으로서 처음으로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김대중의 흔적과 만날 수 있었다.

DJ센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수가 되었을때 입었던 죄수복이며 깨알같은 글씨로 써서 가족에게 보낸 서신들이 전시되어 있어 이것저것 살펴봤다.
◇ 여동활씨는 박근혜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했다 ⓒ
,
호남인들이 느꼈을 법한 영남인에 대한 반감과 지역차별,그리고 그간 겪어야 했던 갖가지 애환들이 진하게 와 닿았다.

이날 오후2시가 되자 새시대새물결 운동본부 전국창립대회에 참석하기 위한 시민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2,000석이나 되는 센타에는 3,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발 디딜틈이 없었고 일찌감치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메이저언론은 물론 인터넷기자들이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을 기다렸다.

그는 박 전 대표의 입장과 동시에 2부행사를 시작하면서 중앙본부장으로서 그간 경과보고서를 차분하게 읽어나갔다. 마지막 부분을 읽어가면서 그는 “ 박근혜 전 대표는 참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레같은 박수가 터졌다.

천하를 논하는 젊은이라면 삼국지를 읽어라고 했다. 삼국지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옛 중국의 후한 말에 십상시가 조정을 휩쓸고, 황건적이 이리저리 누비고 있을때 조자룡 즉, 조운이라고 불리우는 사내의 무용담을 접할수 있다.

이 조운이 유명해진 이유는 장판파에서 조조의 백만대군 사이를 휘젓고 다니면서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해낸 일 때문에 유명해졌는데 유비가 구해낸 아들보다도 조자룡의 목숨을 더 염려한 유비의 인품에 반해 조자룡은 충과 의를 다해 유비를 주군으로 섬겼다.
◇ 주군 박근혜를 위해 일하는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여동활씨. ⓒ
,
이야기 말미에 뜽금없이 조자룡을 들먹이는것은 충과 의를 중시하고 과도한 욕심이 없었고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하고자 했던 조자룡의 얼굴에 여동활씨 얼굴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유독 더 빛이 나는 사람. 여동활씨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그토록 많은 물질적인 것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그 진심을 알고 싶어 여러번 물어 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편집장님,저는 아직 박근혜 전 대표의 손도 한번 잡지 못했습니다"라고 허허 웃으면서 그저 주군 박근혜를 위해 일하는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그가 순진한건지 그걸 믿는 내가 순진한건지..........

[이종납 대구 데일리안 편집장]
이종납 대구 데일리안 편집장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