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품에 안겨 우는 시장 할머니에 대통령은 마음이 무척 아팠을 것이다. 자신이 밑바닥 인생을 살아본 터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건넨 목도리는 국민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녹였다. 그런데 어느 누구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남자가 더 잘할까 아니면 여자가 더 잘할까.
1960~70년대 국민의 눈물을 닦아준 사람은 육영수 여사였다. 자신이 총에 맞아 죽은 74년 8월 15일, 육 여사는 남편에게 말했다. “왠지 오늘은 행사장에 가고 싶지 않네요.” 아내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은 무슨 소리냐며 등을 내리쳤다고 한다. 영부인이 죽은 후 언론엔 민초(民草)의 추억이 실렸다.
*** 육영수 여사에 대한 추억
“71년 초여름의 서울 명륜동 판자촌. 좁고 지저분한 골목을 끼고 비탈길을 30분이나 오르면 산중턱에 쓰러질 듯한 집 한 채가 있었다. 남편을 잃고 떡장수로 억척같이 살던 홍연례 할머니는 위장병으로 몇 해나 몸져 누웠다. 방 안엔 병자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곳을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 사람은 육 여사였다. 할머니는 북받치는 감격을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 여사는 반 시간을 머물렀다. ‘용기를 잃어서는 안 돼요. 꿋꿋하게 이겨나가야 해요’.”
“68년 여름은 호남 일대에 가뭄이 극심했다. 광주는 식수조차 마시기 어려웠다. 육 여사는 도지사 관저에 조석(朝夕)으로 전화, 마음이 불안하여 숭늉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없으며 세수도 못하겠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직접 광주로 나들이를 하였다. 지사 부인의 안내로 가장 한발이 심한 나주 공산면 화성리 마을로 갔다. 논바닥이 발이 빠질 정도로 쩡쩡 갈라져 있었다.
여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눈물을 글썽거리며 정부에서 굶기기야 하겠느냐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말라버린 웅덩이에 걸려 있는 양수기를 직접 돌려보며 혼자 울고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지사 부인에게서 나는 듣게 되었던 것이다.”
유신독재 시절이었으므로 언론에 육 여사의 미담만 다소 부풀려 실렸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육 여사가 사회의 그늘진 곳을 직접 찾았던 일에 대한 증언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인터넷포털이 육 여사를 ‘사회사업가’라고 묘사할 정도다. 육 여사는 64년 각료 부인들과 함께 양지회라는 봉사 모임을 만들었다.
어떤 부인은 모임을 남편을 위한 로비 창구로 활용한다는 얘기도 돌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작은 것이고, 양지회는 지도층 부인들이 공동체를 위해 일했던 기구로 기억되고 있다. 30~40여 년이 지난 지금 양지회 같은 단체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기부·자선·봉사의 형태도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조금의 연(緣)이라도 권력과 연결하려는 풍조가 있는 마당에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양지회가 있건 없건 중요한 인물은 영부인이다.
*** 희망 줄 수 있는 김윤옥 여사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그동안 불우한 국민을 찾는 여러 일을 했다. 장애아, 외국인 근로자와 가족을 청와대에 초청해 따뜻한 격려를 보냈다. 백혈병과 소아암을 앓는 아이들을 찾아 위로했고 정신지체아 학교를 방문해 격려했다. 불우 이웃을 위한 사랑의 선물 만들기 행사에도 여러 번 참석했다. 영부인이 참석하면 그런 행사는 힘을 받는다.
그런데 뭔가 영부인에게서 더 기대할 대목이 있는 느낌은 웬일일까. 밝고 따뜻한 미소를 지닌 김 여사가 정말로 가야 하는 곳은 다른 데 있지 않을까.
고문과도 같은 경제위기를 겪는 민초들의 가혹한 생활 현장…. 여사가 그곳에 좀 더 가까이 가면 많은 이들이 더 위로를 받지 않을까. 병든 독거 노인의 쓸쓸한 방을 찾아주고, ‘밥퍼’ 현장에서 국자로 국을 뜨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일용 노동자에게 국밥을 만들어 주고, 결식 아동에게 도시락을 전해주고….
주변에 총리나 각료, 대통령비서실장의 부인이 없어도 좋다. 그저 김 여사의 땀에 젖은 환한 미소만 있으면 국민의 저녁밥은 더 맛있지 않을까.
김 진 논설위원
[시시각각] 국민의 눈물과 영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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