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총상 <하> 배려도 대책도 없다
http://news.joins.com/general/200602/21/200602210501291171110011401152.html
서해교전(2002년)에서 부상한 김택중(26.당시 소총수)씨는 교전 이후 어처구니없는 명령에 따라야 했다.
북 경비정의 포격으로 침몰했다가 인양한 함정(참수리 357호)의 선체를 청소하라는 '명'이었다. 자신이 죽을 뻔하고 동료들이 죽어간 선체를 닦아 내야 했던 김씨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털어놨다.
"한 달가량 펄 제거 작업과 수리를 했죠. 포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죠. 마음이 아팠습니다. 심리 상담은 못해 줄망정 또다시 고통을 주다니…." 역시 참수리 함정에 탔다가 목숨을 잃을 뻔한 이모(25)씨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29명이 타는 작은 배여서 동료들이 가족같이 지냈죠. 펄 청소하느라 조타실.식당 등을 다시 보니 숨져 간 동료들이 생각나
괴로웠습니다."
이처럼 우리 군에는 전투.참사를 경험한 장병들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가 거의 없다. 끔찍한 상황을 겪으면서 생긴
마음의 총상,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예방.치료할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 허술한 초기 대처=지난해 6월
발생한 연천 GP 총기 난사 사고의 수습 과정도 주먹구구식이었다는 게 생존자들의 주장이다. 사고 직후 생존 장병들은 인근 헌병수사대에서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아야 했다. 사고의 전말을 조속히 파악하기 위해 조사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조사 과정.방식이었다.
"참사의 기억을 계속 떠올리며 수사관이 원하는 대로 자술서를 수십 번씩 써야 했어요. 처음엔 총기를 난사한 김동민 일병을 괴롭힌
가해자로 취급하며 욕설까지 하더군요."(생존자 신재희씨)
현장검증을 한다며 핏자국이 채 가시지 않은 사고 현장에 30분 이상 서
있기도 했다고 한다. "사고가 난 내무실에서 수사관의 요구로 피를 뒤집어썼던 상황을 재연할 수밖에 없었어요. 끝나고 나서도 코에서 계속
피비린내가 진동했죠."(익명을 요구한 생존자)
"거리에서 우연히 수사관을 봤는데, '죽이고 싶다'는 생각에 뒤따라가다 '이러면 안
되지'하며 돌아온 적이 있었어요."(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생존자)
가톨릭대 전태연(정신과) 교수는 "사고 직후 참사의 기억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게 하면 거의 동일한 수준의 충격을 다시 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우리는 방치됐다"="사고 직후,
군의관은 진찰도 없이 무조건 약만 줬어요. '머리 아픈 사람 손들어' 하더니 두통약을 주고, '잠 안 오는 사람' 하더니 수면제를 줬습니다."
연천 사고 생존자인 신재희씨의 증언이다. 사고 10여 일 뒤에야 2주간의 집단치료가 실시됐다. 하지만 이 기간에도 생존자들은 수사관이 부르면
치료를 중단하고 조사에 응해야 했다. 집단치료가 끝난 뒤 이들은 국군 양주병원으로 통원 치료를 받으러 다니기만 했다. "입원이 필요하다"는
가족들의 요구로 사고 발생 5개월이 지나서야 생존 장병 중 15명이 입원할 수 있었다. "입원해 뇌파검사 등을 했는데 결과를 설명해 주지
않았어요. 기록을 남기기 위한 형식적 조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총기사고 생존자 정은총씨)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게 되자
민간요법에 의지하는 사람도 있다. 베트남전 참전자인 김모(59)씨는 '영혼을 볼 줄 안다'는 이로부터 구입한 약을 먹고 있다. 본지가 베트남전
참전자 205명을 조사한 결과, '전쟁 후유증에 대해 군.정부로부터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는 답변이 92%나 됐다.
◆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은='마음의 총상'을 가진 이 중에는 거창한 보상보다 사회의 편견이라도 고쳐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라의 명을
받고 간 건데, 용병이라고들 하니…." 베트남전 참전자 박형원(62)씨는 "우리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의미를 사회가 인정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호주에는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제1차 세계대전)의 날'에 참전자들이 인근 학교를 방문, 학생들에게 전쟁 경험담을 들려
주는 국가 프로그램이 있다. 사회가 참전자의 희생을 존중해 주고 참전자들이 이를 통해 존재감을 갖게 하자는 취지에서다. "전우들과 만나 서로
위로하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모일 수 있는 변변한 공간이라도 국가가 마련해 줬으면…."(베트남전 참전자 이용웅씨)
연천 총기사고
생존자(24명)의 부모들은 최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아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고 집단으로 요구했다. 가족들의 요구가
계속되자 지금까지 이들 중 8명이 최근 가장 낮은 등급의 유공자로 선정됐다.
참사 목격자 등에게 무료 상담 치료를 해 주는
임상심리학 박사 조용범씨는 "이 장애의 실태를 조사하고 전문인력을 키우며 체계적 치유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사회 적응과 재활을
돕는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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