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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갈까 저리 갈까, 정처없는 대통령 유품

여동활 2009. 7. 1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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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갈까 저리 갈까, 정처없는 대통령 유품
박 대통령 유품 청와대→총무처→국립민속박물관→구미, 국가기록원으로 전전
2009-07-10

제대로 된 대통령 기념관 하나 없는 대한민국 정치사

대통령의 유품은 사유물이 아니다. 대통령이 재식시에 사용하던 집무실의 비품을 비롯, 각종 기록물은 당연히 국가 관리의 몫이고 역사의 한 부분으로 전해져야 할 유산이다.

서울 종로 이화장(梨花莊)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의 유품 2만여점이 있다. 화진포의 이승만 별장에도 이 대통령이 사용하던 놋그릇세트, 낚시도구, 두루마기 등의 유품 5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화장의 유품 전시실은 초라하기 이를데없고, 퍼스트레이디 프란체스카 여사가 기워입은 속치마에 눈길이 머물면 콧등이 시큰해진다. 이화장에 ‘건국대통령기념관’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그곳은 이승만 대통령의 사저(私邸)이지 기념관이라 할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의 신당동 사저를 박정희 기념관이라 한다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이승만 대통령과 그 시대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규모있는 기념관이 없는 것은 건국 대통령에 대한 대접이 아니며,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대통령이 남긴 메모 쪽지 한장이라도 알뜰히 보관할 만큼 대통령 유품 관리의 모범이 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역대 대통령의 유품을 보관할 기념관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는 파란과 굴곡의 정치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로되,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과거 정권을 부정하고 당대의 정치 목적 달성에만 골몰하는 정치 세력의 천박한 야욕과 빈곤한 역사의식 탓이다. 

전 대통령 김대중은 1998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동서화합, 정치적 화해 등을 명분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을 짓겠다고 선심 공약을 내놓더니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결국 대통령 당선을 위한 ‘정치 쇼’였다는 비난에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는 버젓이 자기 기념관(김대중도서관, 김대중컨벤션센터)만 지었다(미국은 도서관 명칭을 사용한 대통령 기념관이 적지 않다). 생전에 제 손으로 제 동상(銅像)을 세운 격이다. 어럿?그나마 유일하게 기념관다운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김대중도서관이다.

10월26일에 멈춘 일력(日曆)과 변기 물통의 벽돌 한장

지난 8일 행정안전부는 산하 국가기록원(원장 박상덕)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재식시에 받은 선물 14점과 박정희 대통령의 선물과 유품 487점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이관받아 일괄 관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는 박 대통령의 선물과 유품은 서거 후 “박근혜 의원 등 유가족이 1984년에 국가에 기증한 것”이라 했으나, 엄밀히 따지자면 기증이 아니라 국가기관에 이관한 것이다. 대통령 재임기간의 유품은 유가족이라고 해서 사유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유산으로 남겨져야 할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유품은 청와대로부터 어떤 곳으로 옮겨져 어떻게 보관 관리되어 왔을까.
10.26사건 후인 1979년 11월 중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대통령 유품을 정리하려고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 먼저 눈에 띈 것이 날마다 한장씩 뜯어내는 일력(日曆)이었다. 10월26일에 멈춰 있는 일력을 본 그들은 다시 한번 충격에 사로잡혔다. 집무실과 침실의 변기 물통 속에서 벽돌이 발견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그들은 벽돌 한장의 의미를 알고는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  
방에는 주인을 잃은 책상과 회의용 탁자, 소파, 책장, 한반도 지도가 걸린 이동식 궤도판 등이 있었고, 책상에는 육영수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유품에는 특히 국내외에서 받은 각종 선물들이 많았는데, 미국 존슨 대통령에게 받은 백동(白銅) 백마상(白馬像), 금제 대통령 문장(紋章)이 들어 있는 티파니 은제 탁자 1벌, 낚시 도구를 비롯하여 케네디, 닉슨, 포드, 카터 대통령 등으로부터 받은 선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서독 뤼프케 대통령에게 받은 망원경이 달린 엽총 외에 이란의 팔레비 국왕, 월남 티유 대통령, 자유중국 장졔스 총통, 뉴질랜드 홀리오크 수상, 태국 타놈 수상, 말레이시아 라만 수상, 세네갈 상고르 대통령, 이디오피아 셀라시에 황제 등으로부터 받은 각종 선물들도 있었다.
그리고 울산 현대조선소와 포항제철의 모형, 국내외 인사들이 대통령의 치적을 쓴 족자들과, 8.18 판문점도끼만행사건 때 미군이 잘라온 미루나무 토막도 있었다.
그들은 대통령의 유품들을 운반하기 편하도록 묶고 포장해서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재산인 신당동 집으로 나온 박근혜, 박근영, 박지만 3남매가 처음 한 일은 아버지의 유품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쓰던 이부자리며 유품을 신당동 집이 너무 작아 친척과 친지들에게 나눠 맡겨 보았지만, 녹슬거나 좀먹지 않도록 온도나 습도를 잘 맞추어 제대로 보관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3남매는 신당동 집으로부터 성북동 집으로 옮겨갔고, 거기서 다시 모은 유품들을 분류해서 사적으로 소유할 만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총무처에 보냈다.
당시 박근혜씨는 “세차례에 걸쳐 보낸 것이 6톤 트럭 한대 분량쯤 된다”며 “기념관을 지으면 찾아다 전시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념관 건립이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박 대통령 유품은 일부가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옮겨지고, 박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로도 내려갔다.

국가기록원의 대통령 유품

이번에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이 관리하게 된 유품 487점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있던 것이다.
국기기록원으로 간 유품은 육영수 여사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과 행정지도 등이 유리와 함께 깔려 있는 손때 묻은 책상, 집무실에 있었던 대형 지구의, 결재용 받침대 등 당시 박 대통령의 숨결이 배어 있던 행정박물과, 친필 휘호인 ‘有備無患’, 그리고 육 여사가 사용하던 안락장의자, 병풍, 문갑 등 생활 소품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외국을 방문하거나 우리나라를 방문한 각국 원수와 주요 인사들로부터 받은 선물은 미국 존슨, 포드 대통령의 친필이 있는 사진,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백마 조각상, 자유중국 장졔스 총통이 증정한 쌍사자 조각상, 태국 타놈 수상의 상아로 만든 승전고, 인도네시아 목각탁자, 아폴로 11호 월석(月石), 이밖에 조각품, 그림, 의복, 가죽신 등 각국의 문화예술적 가치가 높은 진귀한 것들이 많다.


▲1965년 미국방문시, 한미 양국 대통령 내외의 기념사진. ⓒ 행정안전부


▲미국 제36대 존슨대통령의 친필이 있는 사진. ⓒ 행정안전부


▲인도네시아의 순목각품인 기념조각탁자. ⓒ 행정안전부


▲자유중국 장졔스 총통의 대리석으로 만든 쌍사자 조각상. ⓒ 행정안전부


▲태국 타놈 수상이 증정한 승전고는 상아 기둥에 금속재의 북과 북채로 되어 있다. ⓒ 행정안전부


▲목재 받침대가 있는 대형 지구의. ⓒ 행정안전부


▲위 지구의는 1971년 10월 17일에 찍은 대통령 가족 사진에도 나와 있다. ⓒ 정부기록사진집


▲1972년까지 사용하던 결재용 받침대. ⓒ 행정안전부


▲유??밑에 대통령 내외의 사진과 행정지도가 있는 책상. ⓒ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의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는 이같은 대통령의 유품과 선물은 아주 중요한 대통령 기록물로서, 서고에 안전하게 보존함과 동시에 복원 처리 등을 거쳐 후대의 기록 유산으로 전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의 유품과 선물이 박정희 시대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미의 선산출장소에 보관돼 있는 박 대통령의 유품은 5천800점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5.16 그날의 검은 안경은 어디 있을까

이밖에도 박 대통령의 유품은 정부 기관 여러 곳에 있고, 연고 있는 개개인이 친서와 금일봉 봉투 등을 소장하고 있거나 또는 경매시장에서 매매되는 것도 있다.
박 대통령의 휘호나 친서 등이 경매시장에서 강한 구매력으로 인기 상한가를 치닫고 있음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2002년에는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보낸 경고 친서가 242만원에, 2003년에는 휘호 ‘자조정신’이 4000만원에, 2004년에는 육필 원고와 70년대의 흑백 사진 세트, 그리고 ‘國民總和 總和前進’이라는 휘호가 1억50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소장품 중에는 그가 부인 육영수 여사에게 선물했던 만년필이 있었다. 그는 부인의 손길이 묻어 있는 그 만년필의 내부를 깨끗이 비우고 소중히 간직했었다.
또 청와대를 예방했던 많은 사람들은 박 대통령의 지포라이터를 알고 있다. 청와대 내방객과 자리를 마주하면 으레 담배를 권하고 딸깍 소리가 나는 지포라이터 뚜껑을 열어 불을 붙여주곤 했다. 박 대통령은 군시절 미군에게서 얻은 지포라이터를 청와대에서도 칠이 벗겨질 정도로 오랜 동안 애용했다.
그의 오래된 손목시계와 낡은 혁대 또한 널리 알려진 유품이다.
박 대통령은 그림 소품들을 적지 않게 남겼는데, 경부고속도로상의 육교를 구상해서 그린 스케치 소품은 유품전시회를 통해 공개돼 국가경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관람객의 눈길을 모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유명한 것은 5.16혁명의 그날에 썼던 검은 안경일 것이다. 박근혜 의원도 아버지의 안경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소지품이나 남에게서 받은 선물들을 곧잘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다는데, 레이밴이라는 5.16 그날의 이 안경은 행방이 묘연하다.
위에서 언급한 대통령 사후 청와대 변기 물통 속에서 발견된 벽돌도 결코 무심히 보아넘길 것이 아닌데 그후로 벽돌에 관한 기록이 없어 그냥 버려졌을 것만 같은 느낌이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구상 시인에게 보낸 편지. ⓒ 구상문학관


▲1965년 12월 17일 한일협정 비준시 박 대통령의 서명 만년필. ⓒ 외교통상부 외교사전시실


▲1968년 호주 및 뉴질랜드 방문 관계재료함. ⓒ 국가기록원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테이프커팅에 사용했던 가위. ⓒ 독립기념관


▲1970년 당시의 청와대 비품. ⓒ 정부기록사진집


▲1973년 7월 포항제철 준공식 때 포철 임직원들이 증정한 대형 감사패. ⓒ 국가기록원


▲1978년 박 대통령의 스케치 소품. ⓒ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위와 같은 유품들은 공사(公私) 구분과 역사 기록물로서의 가치 판단 기준에 따라 유가족이나 개인이 소장해도 되는 것들도 있지만, 국가와 역사의 몫으로 넘겨질 것들이 훨씬 많게 마련이다.

대통령 유품의 본거지는 기념관이다. 기념관이 없는 박 대통령의 유품은 총무처, 국립민속박물관, 국가기록원, 구미 등지로 옮겨다니고 있다. 정처없는 유랑의 신세에 다름 아니다.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것도 문제려니와 철저하지 못한 관리로 훼손될 우려도 크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의 건립이 시급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

[좋아하는 사람들 편집국]